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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열병 (눅 4:38-39)

예림의집 2017. 12. 1. 14:23

마음의 열병 (눅 4:38-39)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이 시간에 “마음의 열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날에도 열병은 무섭지만 세균에 대한 관념이 없던 옛날에는 참으로 두려운 병이었습니다. 기원전 430년, 이 돌림병으로 인해 아테네가 무너졌는가 하면, 14세기 유럽에 유행한 흑사병 즉 페스트로 인해 약 2,000만 명 이상 당시 유럽 인구의 1/3이 죽어나갔습니다. 19세기까지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을 모두 합치면 1~2억 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독감도 맹위를 떨쳤는데, 비교적 근세인 1918년부터 1919년까지 스페인독감에 걸려 사망한 사람은 전세계 인구의 3~6%에 달하는 5,000만명~1억 명에 달했습니다.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제 1차 세계대전 사망자보다 최소 3배 이상 많았고, 특히 젊은이들의 희생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천연두로 인해 아즈텍 제국이 멸망을 당하고, 잉카제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본문에도 그런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께 고침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왜 성경기자가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의 치유를 언급하면서 “그들에게 수종드니라”(39절)고 기록했을까요? 성경기자가 그냥 사실대로만 기록한 것이라고만 해석한다면 더 깊이 보지 못한 것입니다.

수제자 베드로의 장모 정도라면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집에 있었고 곁에 사람들이 있는 걸 보니 격리 관념도 없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장모 정도라면 질병이 나았든 안 나았든 예수님이 자기 집에 왔다면 누구를 시켜서든지 누구보다 맨 앞장을 서서 예수님께 수종 들어야 할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별 뉴스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마치 목회자의 어머니나 장모와 같은 위치입니다. 이 분들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들의 기도는 거의 본능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구태여 수종 들었다고 기록한 것은 육신의 열병 이외에도 마음의 열병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는 예수님의 사역의 초창기입니다. 그 때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모를 때이고, 소문이 나서 구름처럼 예수님을 따르던 때도 아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예수님 사역의 초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형제들도 예수님이 미쳤다고 잡으러 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제자로 배와 그물 다 버리고 아버지까지 버리고 부름 받은 지도 얼마나 되지 않은 때입니다. 삼십 대 초반으로 아이들도 있을 텐데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시대,  갈릴리 어부로 그 성실하던 사위가 직장 사표내고 신학교 입학했으니 마음의 열병이란 보통이 아닐 것입니다. 혼자만 아니고 동생 안드레까지 끌어들였으니 충분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배경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육신의 열병만이 아니라 마음의 열병에 깊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직접 만나보니 뭔가 표현할 수는 없지만 사랑의 인품이며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와 생명이 넘쳐 흐르며, 육신의 병까지 고침 받고 보니 사기꾼이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시름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쁨으로 수종들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잘 섬기고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려면 마음의 열병에서 치료되어야 합니다.


치료받아야 할 마음의 열병은 무엇일까요?


1. 세속의 열병입니다.

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처럼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면 하나님의 일에 수종들 수 없습니다. 당시 유대 지도자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세상 영광을 더 좋아하고 돈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요5:44에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책망하셨습니다.

눅16:14에도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눅20:46에는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는 서기관들”이라고 했습니다. 세속의 열병에 걸린 자들입니다. 그랬기에 쓸데없는 일만 하다가 예수님을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주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유대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두렵습니다. 최후의 희망의 보루는 신앙인데 예수님 시대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동일한 건 아니지만 머리 위에서 핵탄두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대에 하는 일을 보면 희망이 매우 어둡습니다. 우리의 기도 부족이었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기타 일이나 오락이나 취미보다 하나님 사랑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정당한 노동이지만 지나쳐서 일에 중독이 되면 하나님께 수종들 수 없습니다. 좋은 일도 절제할 줄 알고 적당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실망의 열병입니다.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둘러싸인 환경이 너무나 악해서 잠시 실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이 비록 작지 않았지만 환경이 너무나 악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결과가 없거나 혹은 무슨 일로 실망하여 머리 싸매고 누워있지는 않습니까? 눅 24장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된 것만 생각하고 부활을 믿지 못하고 실망하며 예루살렘을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크게 실망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도 동일합니다. 그래서 눅24:38-39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심는 대로 거둔다는 믿음 가지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갈6:7-9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계속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 잘못은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지상의 상보다 하늘의 상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마6:1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 않고 칭찬하지도 않고 속만 아프게 할 때도 하나님께서 상 주시려고 그러신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절대 실망시키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서서 날마다 하나님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이 실망의 열병을 극복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성도도 참된 종도 될 수 없습니다.


3. 불신의 열병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왜 사람들이 세상 살면서 힘들어 할까요?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힘들었던 것도 믿음이 없어서였습니다. 홍해를 건너 한 번 밝게 웃었을 뿐 40년간 얼굴 한 번 펴보지 못하고 불평했습니다. 불평했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노래하며 가는 인생길인데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고 슬프고 힘이 듭니다. 참으로 불행한 인생길입니다. 그러므로 늘 성경 보면서 하나님과 그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꾸만 하나님께 증거만 구했습니다. 기록된 말씀을 제쳐놓고 음성을 들려주시든지 표적을 봐야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 안전한 기록된 말씀을 제쳐두고 표적만 구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81:10-12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했습니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납득이 가야 믿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머리로 하나님을 제한하는 이것도 무서운 불신앙입니다. 이건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존재하는 약점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나에게 상관된 말씀임을 믿고 그대로 믿고 그대로 행하면 될 텐데 불신앙 때문에 방황하는 인생길을 갑니다. 그나마 정직하면 좋겠는데 답도 찾지 못한 주제에 떠벌립니다. 물만 흐릴 뿐입니다.

 

4. 상관 없는 열병이 있습니다.

행1:6-8에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 중에 열심당이 있었고 그들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칼을 품고 다녔습니다. 국가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크면 이랬을까요? 마사다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이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결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라는 곧 신앙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다행히 로마가 최소한의 종교의 자유는 주었지만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존심과 영광은 완전히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관심은 독립이었고,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해주시기를 원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불필요한 열병을 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 받고 예수 증인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면 무엇이라 하실까요? 이 문제 가지고 날마다 고민했습니다.

지금 나라가 급속히 좌경화되어 가고 있는데 그냥 좌가 아니라 모든 것이 북한의 적화통일에 맞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저는 국가에 대해서 보여준 것이 많고 그대로 된 적이 자주 있기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정치에 관여 안 할 수도 없고 하면 답답하고, 국민으로서 외면할 수 없는 주제인데다, 우리 신앙과 직결되어 있고, 정의는 땅에 떨어지고 온갖 모략과 공작이 활개치는 일들을 보면 목사로서 가만 있을 수 없고,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고 의분 때문에 기도하게 되지만 반대로 이 일로 기도가 막히기도 합니다. 이 일로 스트레스 받아서 죽게 아프기도 여러 번 했습니다.

평안은 없고 옳은 건지 그른 건지, 머물러야 할 것인지 벗어나야 할 것인지, 신앙 안에서 어떻게 해야 옳은 건지 정말 쉽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 깨달았습니다. 이건 사탄의 시험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이다. 사회는 소돔과 고모라로 변해가고 있고, 교회마저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면서 다 영적으로 잠자고 있습니다. 기도운동이 사라졌습니다. 성령의 불 받은 일군들이 별로 없습니다. 총회 높은 어른들의 부정부패는 하늘을 찌릅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채찍을 막을 방법은 회개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엎드려 "하나님 이 백성들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잠자는 한국교회를 깨워주세요."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니까 평안이 오는 것 같아요. 회개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인 것 같아요. 우리라도 바로 서고 한국교회라도 바로 서면 하나님께서 이 땅을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이 감당할 수 없는 열병에서 어떻게 해방됩니까?

주님은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강하게 잡고 일으키셨습니다. 이처럼 꾸짖으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책망하세요. 아무개아 이게 뭐냐? 너 지금 뭐하고 있느냐? 그것보다 더 급한게 이거야. 이거. 회개운동이고, 성령의 부흥운동이야. 꾸짖어야 합니다. 구국기도와 함께 회개운동 성령운동에 힘 쓰십시다. 시편 기자도 꾸짖었습니다. 시42:5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가만 두면 안 됩니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는 계속되는 신변의 위협과 역경에 극도로 지쳐 있었다. 이런 어려움이 극에 달해 루터가 용기를 상실하고 식음을 전폐한 채 누워 있을 때 부인이 상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누가 죽었오? 루터가 묻자 부인은 "하나님이 죽었어요." "아니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하시오." 루터가 화를 내자 부인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당신이 이토록 좌절할 리 없잖아요. 믿음 갖고 다시 일어나세요." 이 말에 루터는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눅4:38을 개역성경으로 보면 “중한 열병에 붙들”렸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열병도 너무 습관이 깊어 스스로 안정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꾸짖은 후에 막1:31에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여기 잡는다는 말이 '크라테시스'라인데 '움켜쥔다'는 의미입니다. 가볍게 잡은 것이 아닙니다. 강하게 움켜쥐시고 일으키셨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듣고도 꼼짝도 하지 않는 나를 향해 책망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받으세요. 강한 주님의 도우심은 부르짖는 것입니다. 시50:15에 "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셨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책망하면서 믿음으로 결단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쉽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우리가 강하게 움켜쥐지 않으면 내 것 삼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반대 세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중한 열병에 붙들려 있습니까? 세속의 열병입니까? 실망의 열병입니까? 불신의 열병입니까? 불평의 열병입니까? 어떤 일로 염려하며 골몰하고 있습니까? 이 열병 치료 받지 않으면 주님을 섬길 수도 없고 수종 들 수도 없고 불행한 인생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주의 말씀으로 치료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의지하는 자의 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용기를 다하여 열병을 꾸짖고 부르짖어 믿음 소망 사랑 가지고 마음의 열병에서 일어나 베드로의 장모와 같이 주님께 수종 들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