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후원 사역†/복음 이야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림의집 2017. 9. 22. 13:30

예수님의 이름으로

 

근래 인류는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현시대 문명은 기적이 더 이상 기적이 아닙니다.사람의 생각대로 뭐든지 되는 세상입니다. 이제 물질적인 것은 더 편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이제는 물질적으로 충분히 편하니 여기저기 눈을 돌립니다. 건강이 최고라며 건강에 눈을 돌립니다.어떤이는 즐기면서 스트레스 푸는게 최고라며 육신의 정욕을 풀로 충족시키고 과시하며 살아갑니다.

돈만 있으면 안되는게 없는 세상입니다. 때문에 돈만 많이 벌면 성공자로 취급받는 시대입니다.내 물질, 권력, 품위, 건강 등등 육신의 욕구가 필요로 하는 것만이 진리라고 착각하는 세상입니다.철저한 자기 중심의 시대입니다. 돈 때문에 보이는 것도 못 믿으며 의심하는 사랑없는 시대입니다.때문인지 취미도 사이버, 애완동물도 사이버, 인맥도 사이버 심지어 사랑도 사이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뭔가 잘못되도 크게 잘못되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려고 발전했지만 오히려 외롭고 불행해져 갑니다.

이런 세상이 사람들이 그토록 원했던 세상일까요. 이렇게 불행한 세상이 진리일까요. 아닙니다.돈을 위해 건강을 갉아먹고 건강을 위해 생명을 갉아먹고 행복을 위해 행복을 버리고 있습니다.진실한 사람은 점점 이 세상에서 살기가 힘들고 불의의 사람만이 살기 편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교활한 사람들은 사람의 불안함과 걱정과 욕심을 이용해 수많은 돈을 벌고 있으며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때문에 믿는 사람들 마저 고통에 이기지 못해 불의에 타협하는 삶을 살고 있으며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문제는 이렇게 어두운 비정상의 삶이 습관이 되어 당연한듯 정상으로 인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 여기까지는 좋다고 칩시다. 하지만 사단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타락한 세상을 사람들에게 폭로합니다.우리는 다 평등하니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합니다. 저들은 다 도둑놈이니 그대로 갚아주자 합니다.여기에 사람들은 분노하고 모여 시위하며 세상을 바꾸자 합니다. TV와 인터넷을 보니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사단이 사람들에게 지식에 집착하도록 유도한 이유를 알것 같습니다. 우리는 충만한 지식의 잣대로 서로 심판하고 있습니다.

교계도 똑같습니다. 성경을 말씀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닌 지식으로 읽혀졌기 때문에 서로 싸우며 정죄하고 있습니다.올바른 처사가 아닙니다. 불의를 불의로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범죄에는 크기가 없고 불의에도 크기가 없습니다.사단은 치밀하게 미래를 계획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었으며 욕심에 사로잡히게 해 그가 원하는 의도대로 만들고 있습니다.

 

예로 스마트폰이 어떻습니까. 육신의 욕구에 취한 사람들에게 세상을 폭로하여 시위를 유발하고 폭력을 조장하고 있습니다.그 전송속도도 눈이 부실정도로 빠릅니다. 그 전송속도 덕분인지 사람들의 폭력도 점점 빠르게 전송되고 있습니다.카메라, 동영상 등으로 우리의 행동은 자연히 통제되고 있으며 우리의 개인정보는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습니다.이제 CCTV도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모든 사람이 심판자의 위치에 올랐으며 편집기술은 다들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좋은 물건을 선하게 이용하면 더 좋은 물건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악하게 이용하는 사람이 더 많음이 문제입니다.그 결과 남을 괴롭히기 좋아하고 남이 무너지는 것을 즐기며 남이 고통당하는 일을 보는 것은 더 이상 힘든일이 아닙니다.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자,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하고 수군수군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이렇듯 정확하게 시대를 꿰뚫는 말씀을 우리는 가벼이 여길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가벼이 여겼습니다.

말씀을 모르는 불신자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법은 몰라도 양심은 아마 악한길을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이렇듯 신자도 불신자도 전부 사단의 계책에 빠져 양심이 무뎌졌으며 이웃의 고통은 더 이상 나의 고통이 아닙니다.상대방을 때려야 폭력이고 죽여야 살인일까요. 아닙니다. 말로 그 사람의 영에 상처를 입히고 죽일수도 있습니다.

남 탓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정죄하는 그들이 깨끗하기를 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깨끗했어야 했습니다.우리는 겉만 가꿀줄 알았지 속을 가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육신만 챙겼지 마음은 챙기지 않았습니다.그 결과 세상의 어두움은 깊어만 갑니다. 이 깊은 어두움을 소수의 사람들에게 돌리기엔 그 어두움이 너무 깊습니다.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수만가지 탐욕이 있으며 타락한것은 피차 마찬가지 입니다.그들이 우리를 못살게 군다고 하는데 우리도 이익을 위해 이웃을 충분히 못살게 굴고 있습니다.

그들만 좋은것 다 가지려고 한다는데 우리도 마찬가지로 좋은것만 보면 다 가지려고 눈에 불을 켭니다.그들이 우리를 기만한다고 하는데 우리도 삶속에서 수만가지 기만을 하며 이익을 챙기고 있습니다.그들이 우리를 위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바로 옆의 가족과 친구조차 온전히 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미소에서 행복을 누리는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너무 안타깝습니다.우리는 가진것 다 갖고 먹는 것 잘 먹으며 가질 것 다 가질 수 있지만 오히려 불행한 삶을 택하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단 하나 내 안을 욕심으로 채우기 바빠 내 마음을 바꿔주실 예수님이 계실 자리가 없었습니다.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소유로 잠시 동안 행복의 미소를 찾겠지만 그것은 잠시 갈증을 해소하는 물과 같습니다.때문에 소유의 욕심이 끝이 없고 그 무게가 점점 무거워져서 사람들은 지쳐가고 있으며 서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무게도 벅차서 힘든데 어떻게 사람들을 신경 쓸 수 있고 믿을 수 있으며 사랑할 수 있을까요. 할수 없습니다.그렇다고 이 무거운 짐인 소유를 누구에게 내놓을수 있느냐. 전혀 티끌만큼도 누구에게 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나누고 베푸는 선행조차 소유하려하는 욕심많은 사람이란 존재는 절대로 누구에게 온전히 베풀수 없습니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육신의 행위로 외식하며 이중적인 인생을 살았던 날들을 회개해야 합니다.정말 안타까운 것은 지금 우리는 만취 상태라는 것입니다. 육신에 짓눌려 죄악에 완전히 정복당해 버렸습니다.우리가 욥과 같이 믿음으로 육신의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훈련이 되어있을까요? 아닙니다. 이 상태로는 힘듭니다.사단은 세상을 삼킬 날을 오랫동안 고대했으며 우리는 직감적으로 이 시대가 그러할 것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사단은 세상의 사람들이 욕심에 완전히 만취할 날을 기다리며 조금씩 물질과 권력등 육신이 필요한 것들을 공급했습니다.결과 우리는 육신의 편안함을 인생의 최고의 목표로 삼고 취해버려 육신의 고통을 주는 사단에게 무릅꿇고 있었습니다.죽음의 본질인 죄악에 빠져 육신의 편안함에 취한 우리는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는 훈련이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사단과 그의 졸개들의 작전에 완전히 휘말려 버렸으며 우리는 바로 앞도 보지 못할 정도로 만취상태 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이 어떻습니까. 전 인류를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강압으로 하나되게 하는 것들입니다.그들은 종교의 교리를 앞세우고 사람들을 핍박하거나 죽이는 일을 명예롭게 생각하며 그들의 교리는 끝까지 유효합니다.분별은 달리 분별이 아닙니다. 그들의 정체만을 아는것은 불신자도 합니다. 분별이란 끝까지 담대한 것입니다.우리는 분별이란 말도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을 안다고 입으로만 말했지 아무 준비도 없었습니다.배도하는 것이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요. 육신에 못이겨 그들에게 무릅꿇는다면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중에 닥치는 작은 고통도 분별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큰 고통을 분별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까요.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분별이 가능 할까요? 우리의 빛되시는 예수님이 안계시면 모두 소경으로 분별하지 못합니다.우리가 아무런 단련없이 그들을 분별한다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단련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이 단련이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그렇게 못합니다. 성령의 의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합니다.

이런 가득한 죄악의 무게, 죽음에 종노릇하며 상처받은 영혼들 이제 모두 다 주님 앞에 돌아가야 합니다.모든것을 내 이름으로 소유하고 높아지려고 했던 욕심과 교만함의 짐을 내려주시고 쉼을 주실 분은 한분입니다.만약 제 말이 틀렸거나 아니라면 제가 돌을 맞고 많은 욕설과 비방 다 받고 저주를 받아도 좋습니다.예수님을 믿어 보세요. 회개함으로 내 몸과 내 눈앞의 모든 소유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의를 바꿔보세요.그분은 세상에 없는 믿을만한 우리의 주님이시며 아버지시며 친구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셨습니다.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회개하십시요. 그분의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선한 새것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소유와 욕심의 짐을 풀게 될 것이며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믿고 구하기만 한다면 보혈의 능력으로 더러운 죄악들을 씻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성령으로 채우실 것입니다.메마른 이 시대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음을 깨끗케 하여 소망을 다시 찾고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사랑은 언제나 담대합니다. 두려움은 담대함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철저한 자기 보호일 뿐 담대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모든 육신의 죄악은 그 중심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극단적인 범죄인 살인도 결국은 철저한 자기보호의 한가지 일 뿐입니다.반면 모든 하나님의 계명은 그 중심에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은 자녀로의 특권이 아니라 전 인류에 대한 사랑입니다.우리가 서로 비교하며 계속 특권을 고집한다면 기독교는 더 이상 타종교와 다를점이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기독교는 강압의 종교가 아닙니다. 참 그리스도의 교회는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입니다. 증거하려면 필히 사랑해야 합니다.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됩시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거듭나 사랑을 회복해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폭력은 자신의 의지인 육신에 속한 범죄입니다. 같은 사람들끼리 악행을 멈추고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을 회복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사단과 그의 자식들은 목적을 위해 모든 악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인류가 사랑으로 하나되지 못하게 열심히 방해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끝까지 육신의 욕구를 주님의 십자가에 못박지 못한다면 서로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단은 이점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폭력적인 사람은 보기엔 강해 보이지만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욕심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에 정복당한 자기보호에 취한 사람입니다.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사단을 닮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약자를 굴복시키고 살인하며 범죄하고 결국 강자에게 무릎 꿇습니다.이렇듯 미래의 결과를 미리 짐작하고 싸우는 것은 결국 우리가 사단에게 패배를 시인하고 무릎 꿇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밖에 안됩니다.

사단은 너희 미래는 너희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속여 사람들에게 너는 너 자신이 보호하라고 미혹합니다. 절대로 진리가 아닙니다.미래의 모습을 사회에 폭로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하여 서로 미워하게 만든 후 강압으로 자신에게 대항할 힘인 사랑을 소멸시킵니다.우리는 사단을 당해낼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회개하고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것 외에는 우리 힘으로 당할 수 없습니다.내일일은 주님에게 철저히 맡기고 오늘 회개하며 주님의 사랑을 행합시다. 사단의 능력은 하나님에 비할 바가 먼지 만큼도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