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
전제라고 할 때 어떤 닫힌 시스템(system)을 연상할 수 있다. 열린 시스템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제를 불합리하고 독선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불신자들이 열린 시스템을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받고 싶지 않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역할을 하고 싶어서이다. 하나님이 완전하신 하나님이라고 할 때는 그의 시스템은 생명과 같음을 의미한다. 물고기에게 물과 같은 것이다 닫힌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열린 것이다. 자율적 인간에게는 닫힌 것처럼 느끼겠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는 생명처럼 느낄 것이다. 하나님과 그의 계시가 우리의 출발점이요 근거라는 것보다 더 자유롭고 의미 있는 것은 없다. 진리가 자유하게 하는 것이지 마음대로 히는 것이 자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불신자에게 기독교를 변증할 때 이러한 전제를 제쳐 두고 피상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혹 생각하기를 이런 전제는 믿지 않는자와 논쟁할 때는 배제되어야하고 어떤 논리나 사실, 경험, 증거, 이성 등을 근거로 중립적 입장에서 논해야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립적 사실, 중립적 증거, 중립적 경험, 중립적 논리, 중립적 이성은 없다. 혹 그러한 것들이 중립적이라 믿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갖고 있는 전제들의 시스템에서 그런 신념을 갖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제를 말할 때 단순히 어떤 초월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을 믿는 것이 아니다. 모든 자들이 세계관이나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우리의 전제를 부끄러워하거나 우리의 지식, 논리, 경험, 증명과는 거리가 먼 어떤
신앙적인 것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불신자의 세계관은 달리 기독교 세계관에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바로 하나님의 계시이다 또한 우리가 믿는 전제는 어떤 가설과 같은 것도 아니요, 시간적으로 앞서는 것도 아니다. 반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신교의 원리에 따르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또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는 인간의 인식 작용은 하나님의 자의식적(自意識的. self-conscious) 인식 작용을 전제하였을 때에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리를 주장함에 있어서 우리가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바는 단지 하나님의 자의식적 인식 작용이 인간의 인식 작용보다 심리학적으로 또는 시간적으로 앞선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숙고하는 바는 사물을 해석함에 있어서 궁극적인 열쇠를 쥔 궁극적 참조 근거가 도대체 무엇이냐 히는 문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 있다. 단지 긍정적으로 알고 있느냐 부정적으로 알고 있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전제(presupposition)를 내세운다고 해서 이성이나 경험이나 증거를 무시한 채 맹목적 믿음을 내세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제라는 것은 이성, 경험, 논리, 증거, 역사, 철학, 과학 등 모든 인간의 활동을 의미 있게 하고 이치에 맞도록 해주는 틀(frame-work)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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