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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하교회는 순교로 지탱

예림의집 2017. 8. 16. 17:57

북한 지하교회는 순교로 지탱


성난 군중들이 발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서 있다. 그들을 향해 담대하게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핍박지 아니한 선지자가 없다.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죽였던 조상과 같이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이고 살인한 자이다.’

성령이 충만하여 외치는 스데반을 향해 이스라엘 군중들은 이를 갈며 달려들어 돌로 쳐 죽였다. 이렇듯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피로 쓰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가 서 있는 한반도의 반쪽인 북한 땅에서 순교의 피가 흘려지고 있다. 그들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순교의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영광과 상급은 고사하고 멸시와 천대 가운데서도 순교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가능한 것일까?

참새 한 마리도 주님이 허락하지 아니하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하물며 너희들을 내가 돌보지 않겠느냐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안전함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머리털 하나까지 세시기까지 섬세하게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서 믿음을 지켜가는 북한성도들 가운데 순교의 피가 흘려지도록 허용하시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다고 본다.

 

순교는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증거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분단이후 63년이 지나기까지 북한은 외부세계에 대하여 어떠한 개방이나 문을 열어본 적 없이 철저하게 폐쇄된 국가로 일관해 오고 있다. 그뿐 아니라 종교에 관한 기독교 말살정책은 세계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고도 조직적으로 주도면밀하게 실시해 오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상황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북한에 지하교회는 없다. 아니 있을 수 없는 구조이다.’라는 논란을 오늘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북한에서의 기독교탄압은 몇 단계에 걸쳐 실시되었다.1945년~50년까지, 해방과 함께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게 된 북한은 이념의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면서 기독교 신앙이 민족주의적인 특성이 강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순교자들이 발생하였다.

다음은 6·25 전쟁시기인 1950년~53년까지로 반공산주의자들을 학살하는 과정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하였다. 그리고 1953년~72년까지는 1만 명이 넘는 순교자들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북한당국이 종교말살정책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면서 엄청난 탄압과 박해를 시도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1958년은 가장 핍박이 극심했던 시기이다. 그 결과 1972년~88년까지 핍박을 받게 된 성도들은 지하로 숨어들어가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1987년 만났던 북한성도들의 이야기다.

“북한에 들어가 언니와 다섯 조카들을 만났을 때는 어머니가 저를 애타게 기다리다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어머니의 묘를 찾아가 통곡하며 울다가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부르는 중에 따라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조카였습니다. 조카아이는 한 절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따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할머니가 가르쳐 주었습네다’라고 대답하여, 몇 곡이나 아느냐고 했더니 13살의 조카는 300곡쯤 된다고 했습니다. 언니를 만나 그 동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무엇보다 형부의 이야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형부는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강제로 끌려가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예수를 모른다는 말 한마디만 하라고 그들은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형부는 ‘나는 예수 앞에서 여러 번 실수하고, 하나님을 여러 번 잊어 버렸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잊어버린 적이 없는데 내가 지금 어떻게 변할 수가 있는가?’라고 대답하여 총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언니는 뱃속의 아이까지 포함해 다섯 아이와 함께 멀리 탄광으로 유배당해 13년을 일했습니다. 하루에 2.5톤씩 석탄을 캤습니다. 햇볕이 그립고 유혹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양심은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13년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으나 모든 것을 빼앗아 가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것이 성경책 한 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성경은 이불 속에 감추어 두었는데 집을 조사하러 온 자들 중의 한 사람이 ‘추우니까 그래도 저 이불만은 그냥 두자’라고 해서 성경은 빼앗기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성경을 보니 다 헤어져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다 떨어졌고 마태복음도 다 떨어져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계속 그렇게 숨어서 보았다고 했습니다. 손으로 베껴 쓴 찬송가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언니의 소개로 몇 분의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의 각오로 믿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양식이 없어도 산에 올라가 기도하고, 들에 나가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또 그들은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기도하고, 낮 12시가 되면 각자 일터에서, 학습장에서 그냥 하늘을 바라다 보고 기도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식사 후에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한 가정이 어려움에 처해 숙청을 당하게 되면 50~60리 먼 길을 걸어 다른 사람에게 기도제목을 나누며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기독교 박해로 많은 성도들이 순교의 피를 흘려야만 했다. 어디 그 뿐인가 감옥에서도 수용소에도 끌려가 죽음 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이 있다. 이러한 순교자 혹은 순교의 삶을 사는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북한 땅에 상상을 초월하는 핍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키는 백성들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계신다.

 

순교는 하나님의 교회를 강하게 만든다

얼마 전 인도의 오릿사에 있는 선교사들로부터 긴급하게 보내온 기도제목에 잠을 깬 적이 있다. 그것은 극단주의 힌두교도들이 교회를 불태우고 현지목회자들과 성도들을 무차별하게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24시간 내에 2백여 명의 인도 목회자들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는 기도요청이었다. 그 뒤에 쓰인 내용을 읽으며 온 몸을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의 사역자들은 ‘우리가 죽게 된다 해도 상관없다. 박해는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오릿사에서의  교인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지 그들(박해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 같은 성령의 역사가 많은 이들을 교회로 인도하리라 믿는다.”

이러한 역사는 초대교회부터 그러하였다. 사도들이 죽임을 당하고, 교회가 핍박을 받으며 흩어지는 과정에서 엄청난 교회의 성장을 가져왔다. 이러한 역사들이 오늘 북한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 끊임 없는 박해와 탄압가운데 북한교회는 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근래에 북한에 다녀온 현지사역자를 만나서 듣게 된 이야기다. “북한에 돌아간 성도가 한 번씩 올 때마다 ‘1명 전도했슴다. 2명 전도했슴다.’라고 하는데 이 말이 정말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사실 반신반의 했다 말입니다. 아~아~ 그런데 이번에 가서 보니 그 말이 사실이더라 말입니다. 이 분이 전도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동안 개인적으로 은밀히 모였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그 자리에서 10명이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총 12명이 예배를 드렸고, 멀리 출타하여 예배하지 못한 사람이 6명 있습니다. 그 동안 가져갔던 요한복음 쪽복음과 작은 성경들을 읽으면서 궁금한 것을 ‘?’라고 표시 해 놓았더라구요. 그리고 규칙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북한을 함락하라고 하시면서 행해가시는 것이 바로 북한교회개척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북한의 교회만도 벌써 1,000여개가 넘었다. 이것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교자들의 피 흘림과 오늘도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북한성도들의 강한 믿음에 의해 강한 교회가 태동하고 있는 것이다.

 

순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준다

북한성도들을 만날 때마다 특별히 죽음의 그림자가 정말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기에 돌아가야 한다는 고백을 들을 때 내 안에서 자동녹음 된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스스로 묻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저렇게 담대할 수 있을까? 어떻게 죽더라도 가겠다고 할 수 있을까?’ 많은 북한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정말 잊을 수 없고 생각할 때마다 마음을 꿈틀거리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깊은 밤이 되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호음이 일정하게 오고가더니 물결을 헤치면서 조그만 배 한 척이 북한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할아버지!” 나지막한 소리였다. 배를 타고 건너간 젊은이는 나무 밑에 앉아 있는 물체를 향해 가서는 꼭 껴안더니 한참 동안을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젊은이를 향해 노인이 입을 열었다. “선생, 1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구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내가 하는 일이야 늘 사람들을 키우고 그들로 일하도록 돕는 것이지, 이제는 그들이 일을 하고 이 늙은이는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지…” “할아버지, 무슨 기도를 그렇게 하시는데요?” “빨리 회복해 달라고 기도하지요, 너무 힘드니까…” 짧은 한숨을 내쉬는 노인의 말속에서 깊은 아픔이 묻어났다. “하나님이 북조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아세요?” “왜 모르갔니, 내래 다 알지… 우리가 얼마나 죄를 지었는지, 해방이후 이 땅에서 저질러지는 우상숭배와 기독교인들을 처형하는 죄악을 왜 모르갔니. 내래 이 땅에 50년이 넘게 갇혀 살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처형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지. 고문에 시달려 죽어가는 성도들을 볼 때마다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어린 양 예수의 마음을 느끼곤 했지. 소원이 있다면 살아서 남조선과 같이 예배드리면 좋갔어”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남한과 북한의 성도들이 함께 예배하기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할아버지를 향하여 일꾼이 말했다. “할아버지, 요즈음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북조선 사람들이 중국으로 많이 넘어옵니다. 남한까지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는데, 할아버지께서 원하시면 북한 땅을 벗어날 수 있도록 제가 노력해 보겠습니다. 외부 사람들에게 북한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데, 그 일을 할아버지가 하시면 어떨런지요?” “젊은 선생, 말은 고맙지만 내래 하나님께서 여기에 남겨 놓으신 그 목적을 이루기까지는 움직일 수가 없소, 그것이 죽는 자리라 할지라도…” “무슨 말씀인지…” “해방 이후 북조선에 남아 신앙을 지켜온 성도들이 많이 죽어갔고, 오늘도 죽어가고 있소. 이들을 보며 기도할 책임을 느낀다오. 그래서 매월 셋째 주일을 금식하는 날로 정해 기도하고 있소. 이 땅에서 환난의 때가 속히 끝나고 이 땅이 주께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할아버지의 말에 놀란 일꾼이 “언제부터 그런 기도를 하셨나요?” “이미 오래되었소.”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형국에 어떻게 금식기도를 하십니까?” “선생, 이것보다 더한 것이라도 이 땅이 하나님께 돌이킬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할 것이오.” ‘우리’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일꾼이 다시 물었다. “그럼, 할아버지 외에도 금식하며 기도하는 분들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껏 살려 놓으신 목적이 있다면 첫째는 이 땅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고, 다음은 사람들을 키우는 일이었소. 내가 양육한 240명의 지도자들이 함께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소” “240명이라고 하셨나요?”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의 말에 놀란 일꾼이 되물었다. “나는 지금껏 많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처참한 가운데 죽어가는 것을 보았소,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내게 말씀을 가르칠 사람들을 붙여주시고 그들로 훈련을 받고 일하도록 힘을 주셨소, 이 일은 오직 하나님의 능으로만이 가능한 일들이오. 그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바로 우리가 핍박을 견디며 믿음을 지키게 하는 힘이라오.” 조용하지만 힘을 주어 말하는 노인의 고백을 들으며 뒤돌아서는데 “선생,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오.”라고 간곡한 부탁을 하신다.


이 이야기를 듣고 누군들 감동을 받지 않으며 도전을 받지 않을까? 어떻게 이들을 갇힌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은 필시 갇혀 있으나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으로 자유하는 성도들이다. 무엇이 이들로 순교자적인 성도의 삶을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일까? 바로 그들이 하나님과 하나된 삶을 살아가기에 가능한 것이다.

수많은 이스라엘의 성난 군중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어가던 스데반이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중보하며 죽어갔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셨던 말씀이다. 스데반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스데반은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한 세계를 본 것이다. 그러하기에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할 수 있었다.

북한에서 모진 핍박가운데 신앙을 지키며 때로는 죽음으로, 때로는 감옥에 갇힘으로, 때로는 아오지와 같은 탄광으로 쫓겨나 처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들 가운데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과 하나된 믿음과 영원한 세계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순교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순교는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순교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워주시고, 또 감당케 하실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갈 수는 있다.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이 다가온다 하여도 스데반과 같이 성령이 충만하여 고통 너머에 있는 영원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지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하나님과 하나된 사랑으로 충만하다면 무엇을 두려워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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