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로 재어주신 구역 (시 16:1-1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세상 것을 사랑하지 않는 성도)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 시간에 “줄로 재어주신 구역”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주신 구역에서만 사는 가장 복된 자들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통계여론조사법의 창시자인 조지 갤럽이 “어떤 사람이 가장 행복할까요?.”라는 내용으로 여론조사를 했을 때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생생한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경험한 자가 가장 행복하다.”라는 답변이 1위였습니다. 반면에 가장 불행한 사람은 “밤낮 술집에서 보내는 사람”이라는 통계였습니다. 미국 사회여서인지 설교를 방불케 하는 결과였습니다. 여기서 주는 교훈은 성도는 세상의 향락을 버렸지만 가장 행복했고, 그렇지 않고 세상의 즐거움을 다 누린 자들은 가장 불행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삶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도의 삶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구역 안에서만 살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구역을 지키지 않고 벗어나서 산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좋을까요? 이 질문은 마치 천국이 더 행복하냐? 지옥이 더 행복하냐 묻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구역을 벗어나서 사는 것이 행복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9절에서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 하다고 하면서,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 준 구역에서만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즐겁고 안전합니다.
1. 그럼 줄로 재어 주신 구역이란 무엇일까요?
그 답은 2절에 나타납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주 밖에" 그러니까 오직 주님만 섬기는 것입니다. 십계명 제 1계명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하셨습니다. 그것이 구역입니다. 그런데 줄로 재어 주셨다. 줄은 경계를 정하는 측량줄이요, 경계선입니다. 그러니까 명확하다는 말인데 이 줄은 우리 삶을 명확히 제시해 주는 성경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딤후3:16-17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신22:8의 율법에 보면 “네가 새 집을 지을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 했습니다. 위험한 곳에는 반드시 난간대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치하지 않아서 사고가 나면 그 사고를 유도한 간접살인이 됩니다. 성경에도 난간이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금기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규제라. 율법이라. 자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렇게 비쳐질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답답하지 않고 가장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 안에서 생명과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성도는 예수 안에서 참된 생명과 행복을 누립니다.
본문의 나오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이 구역에서 큰 복을 받았습니다. 소년시절, 그가 블레셋의 거장 골리앗을 죽인 이후 온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때부터 그는 사울의 시기를 받아 쫒기는 신세가 됩니다. 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 변치 않았습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포기합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그 구역을 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죄란 '하말티아'라는 말로서 과녁을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벗어나는 것이 죄입니다. 이처럼 성도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 할 말과 하지 못할 말, 구역을 잘 알아야 합니다. 구역을 벗어나면 그때부터 불안이 시작됩니다. 문제가 생깁니다. 괴로운 일이 발생합니다. 내 영혼이 죽습니다.
자연의 질서도 정해주신 구역을 넘어서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다와 육지의 한계를 정하셨는데, 만약 이 한계를 넘어서면 물에 빠져 죽든지 아니면 바닷물이 해일이 되고 쓰나미가 되어 다가와 삼킵니다. 도로의 중앙 황색선을 넘어가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금지된 구역을 넘다 죽은 사람이 시므이였습니다. 사울가의 한 사람으로 피난 길의 다윗을 저주하다 마땅히 죽을 사람이지만 살려주었는데 그 후 솔로몬에 의해 예루살렘에 감금되었습니다. 알고 보면 큰 특권입니다. 아무나 예루살렘 시민이 됩니까? 그러면서 준 규정이 “죽이지 않을 테니 다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그러나 떠나면 내가 너를 죽일 것이다.” 그런데 시므이가 3년 만에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도망친 종을 잡으려고 떠난 것이 비극이 되었습니다.
구역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습니까! 시므이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살고 말씀 떠나면 죽습니다. 속박이 아니라 특권이요, 보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줄로 그어준 신앙 안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구역은 심히 아름다운 곳이고 그 안의 우리 기업 역시 실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2. 그럼 구역 안에 살려면 어떻게 할까요?
그 답이 7절에 있습니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개역성경에서는 내 심장이라 했는데 개정역에서는 원문에 가깝게 양심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과 양심이 두려운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심장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뜁니다. 이처럼 한순간도 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도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밤마다" 그랬는데 밤에 무엇을 했을까요? 시199:147-148에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말씀의 교훈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삶입니다.
그래서 신17:18-20에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했습니다.
북이스라엘에 선지자가 나타나고 개혁자가 나타나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회개치 못한 것은 성경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요시아 왕 때 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을 고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왕에게 읽어줄 때 왕은 통회하면서 제단을 훼파하고 제도를 고치는 등 개혁을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 멀리 하면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보에 이단 관련 글이 나가는데 그들 얼마나 엉터리입니까?
그래서 시119:9,11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했고, 시119:165에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했습니다. 장애물이 사라집니다.
다윗도 하나님 앞에 범죄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암몬과 전쟁하고 있을 때에 다윗은 한가로이 궁에서 거닐다 충신 우리아의 부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의 부인을 범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가 임신 사실을 은폐하려고 전쟁터에 나가있는 우리아를 불러들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전쟁터에 내몰아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중 삼중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나중에 나단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지만 그 일로 얼마나 다윗의 집에 재앙이 많았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시119:71-72에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했습니다. 값비싼 수험료를 지불했으니 속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물질의 손해 정도면 가볍습니다. 룻기서의 엘리멜렉가처럼 약속의 땅 떠나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께서 거하라는 곳을 떠나지 않고 거한 결과 농사하여 100배나 얻었고 소와 양이 떼를 이루고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심히 아름다운 그 구역을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 영육이 사는 것입니다.
3. 그럼 구역 안에서 사는 행복은 무엇일까요?
9-11절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아버지 떠나 살면 자유로울 것 같지요? 그것은 착각입니다. 탕자가 아버지 떠나 살려다가 얼마나 혼났습니까? 거지가 되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 건진 것만도 다행입니다. 눅15:17에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탄식했습니다. 8절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랬습니다. 그만큼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천국 생활하려면 천국에서 할 일을 여기서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마음을 씻고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늘 찬송하세요. 기도하세요. 말씀을 외우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딴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걱정 근심 유혹 다 본질을 떠나서 생긴 것입니다. 찬송 많이 하세요. 그러면 부부 간에도 다툴 일이 없습니다.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줄로 재어 준 구역 안에서 받는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 주신 구역은 바로 예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더욱 복이 있다(눅11:28)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못해 구역 안에서 사는 자가 아니라 최고의 행복인 줄 알고 최고의 모범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구역 밖은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믿고 세상 동경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 구역 안에서 살다가 가장 큰 평안과 기쁨과 행복 속에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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