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관점에서 본 중국 기독교인의 특성
싱푸쩡(邢福增)
최초의 중국 개신교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이 1807년 중국에 온 때부터 시작하여, 기독교가 중국에 전파된지 193년이 흘렀다. 2007년은 중국의 기독교 200주년을 경축하는 역사적인 해가 될 것이다. 오래 전, 천 리 길을 멀다 않고 중국에 온 외국 선교사들은 복음이 이 이교(異敎) 국가를 구원하기를 기대하고 소망하였다. 그렇지만 중국에서 기독교는 계속적으로 수많은 난관을 통과해야만 했다. 한 때 여러 사람들은 중국 땅에 뿌려진 복음이 뿌리채 뽑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오늘날 이처럼 중국 교회가 발전할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의 중국 교회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과거 백여 년 동안 기독교는 중국에서 큰 격변을 겪어왔다. 이제 새로운 세기를 맞아, 중국 교회의 각 영역에서의 발전을 검토해봄으로써, 21세기 중국 사회에서 교회의 면모와 전망에 대하여 넓은 시각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중국 사회의 소수집단
비록 오늘날 중국 기독교인들의 수가 1천만명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그래도 중국 사회에서 기독교인은 소수집단임에 틀림없다. 모리슨이 1807년 중국에 온 지 7년 만에 한 사람의 중국인 신도를 얻을 수 있었고, 1833년에 이르러 10명의 신도가 생겨났다. 보다 적극적으로 선교자원을 투입한 결과, 1900년에 신도 수는 9만 5천여 명에 달했고, 1950년대 초 기독교인 통계는 70만명에 이르렀다. 물론 당시 중국의 인구가 4억이었던 것에 비하면 기독교인 수는 겨우 0.15%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중국에는 얼마만큼의 기독교인들이 있는가? 전국 양회(兩會: 삼자애국운동위원회와 기독교협회)에서 발표한 숫자는 약 1,400만 명 가량이다. 그러나 해외 선교단체 등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중국 기독교인은 7,000만 이상이라고 한다. 물론 전자의 통계는 모든 기독교인 수로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삼자는 비등록 교회(가정교회)를 이 숫자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등록 교회들이 등록 교회의 6~7배가 넘는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역시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어떤 가정교회 계파에 수백만의 신도가 있다는 말이 있지만 실증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엄격한 학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중국에는 현재 최소 2천 만 명 이상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인구가 12억이라고 했을 때, 기독교인의 비율은 2%도 되지 않는다.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19세기에는 기독교의 발전이 비교적 완만하였고 20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빠른 발전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1950년에는 1900년보다 기독교인 수가 무려 7배에 달하였다. 그러나 50년대, 60년대의 정치운동을 겪으면서 교회는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모든 공개적인 종교활동이 완전히 정지되었다. 그러나 이 때에도 성도들은 여전히 위험을 무릅쓰고 모임을 가졌고, 복음의 씨앗은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자랄 수 있었다. 80년대에 와서 종교정책이 실시되자 신도 수는 점차 증가했다. 그라나 개혁개방 20년 동안의 기독교 발전을 분석해볼 때, 90년대 들어서 기독교가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 현저한 약진 현상을 보임을 알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더욱 유의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사다(四多)’ 경향
이 2천만 명의 중국 신도들의 상황을 보다 자세히 분성해보면, ‘사다(四多)’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신도 중 농촌 출신이 많고, 교육수준이 낮은 자가 많고, 노인이 많고, 여성이 많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농촌 국가였던 중국에서 농촌 인구는 전체 인구의 8할 정도를 차지해왔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일부 농촌은 향진기업화 되었으며, 호적통계상으로 농민이라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개념이 되었다. 중국 학자들의 지적에 의하면, 농촌의 사회분화는 향촌 인구를 농민, 농촌사람(村裡人), 농촌에 호적을 가진 도시인(村籍城裡人) 등으로 분화시켰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농민(즉 시간적으로 농촌에서 주로 거주하고 농업생산을 주요 노동과 수입으로 삼는 사람)은 여전히 중국에서 매우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기독교인 중 80% 이상은 농촌 배경(호적)을 가졌고, 그 중 농민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농촌 출신 신도들은 전반적으로 교육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이것은 최근 9년간 보급된 의무교육의 실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96년 말, 9년 의무교육이 보급된 지역에서 조사를 한 결과 청장년의 문맹율은 6.1%에 달했다. 전국적으로 73%의 현이 기본적인 문맹타파 목표를 실현하였으나, 청장년의 문맹을 깨우친 비율은 11%밖에 되지 않았다. 농촌에서 교육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는 주요 원인은, 많은 가난한 농민들이 각종 명목의 잡부금과 기부금 등을 부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다수 농촌 지역 기독교인들은 문맹이거나 초등학교 수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푸젠(福建)성 푸칭(福淸)현에서 문맹 신도의 비율은 65.1%, 초등학교 수준은 23.5%이다. 상하이의 어떤 통계에 의하면 1980년에서 1990년 11월 사이에 시구 5개
교회당에서 세례받은 1만 2천 명의 신도 중 문맹이 32%,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자는 각각 26%와 15%라고 하였다.
또한 중국 교회 신도들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계층은 노인과 여성들이다. 1997년 전국 양회의 보고자료에 따르면, 전국 신도 중 70%가 여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상하이의 통계에 따르면, 80년대에서 90년대 세례받은 신도 가운데 남녀 비율이 2:8이고, 그 중 60세 이상이 63%로 나타났다. 40세 이하는 겨우 17%에 머물렀다. 전국 각 지역교회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사다’ 현상은 중국 교회의 ‘주변성(邊緣性)’ 으로 설명되어진다. 농촌 배경, 낮은 문화 수준, 노인과 여성 다수 등으로 대변되는 중국 기독교의 특징은, 사실 급변하는 오늘날의 중국 사회와 어느 정도 괴리감이 있다. 도시의 교육 수준이 비교적 높은 젊은이들이 기독교인이 되는 경우는 왜 그렇게 드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사회경제적 격차
중국은 매우 넓고, 각 지역 간 발전에도 큰 차이가 있다. 개혁개방 이래로 동부 연해지역의 성(省)들은 가장 먼저 경제개혁의 성과를 누릴 수 있었다. 중부와 서부 등 내륙지역과는 도무지 비교가 안 될 정도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연해와 중부지역은 각각 전국 면적의 15%와 30%를 차지하지만, 이 지역들이 전국 약 75%의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다. 이외에도 1996년 광둥(廣東)성 소도시 주민들의 생활 수입은 간쑤(甘肅)성의 2.41배였다. 그리고 저장(浙江)성의 농민 1인당 평균 수입 또한 간쑤성의 3.15배였다. 지역 간 격차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연해와 내륙의 차이 외에 도시와 농촌의 큰 격차 또한 중국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수입면에서 말하자면 1997년 1월에서 9월까지 도시 거주민들의 평균 수입합계는 평균 3,850위안(元)인데 비해, 농촌 거주인구의 평균 현금 수입은 1,445위안밖에 되지 않았다. 더욱이 산간지역 농민들의 경우는 1년 수입이 200위안도 채 못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지역적 격차와 도농 격차는 빈부의 격차라는 사회문제 뿐 아니라, 불균등한 발전이라는 중국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연해 도시와 시근교, 현, 향, 진에서부터 내륙도시, 내륙의 소도시, 가난한 산골마을을 포함한 농촌에 이르기까지 각각 상이한 발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마치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차이와 동일하다. 대도시의 경우에도 역시 빈부격차의 문제가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가 중국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이미지를 인식하려면, 반드시 지역과 도시, 농촌 격차의 배경을 잘 살펴보아야만 한다. 신도들의 생활 또는 신앙의 형태 등도 도시와 농촌, 각 지역에 따라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어떤 기업가 성도들은 기꺼이 수만 위안의 헌금을 교회에 낼 수 있지만, 생계를 잇기조차 어려운 산간 지역 신도들의 헌금은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과부의 렙돈’이다. 신앙은 비록 하나이지만 그 의미와 표현은 결코 같지 않다.
지금까지 사회적 맥락에서 중국 기독교인들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우선 이러한 상황을 알아야만 각 영역에서의 중국 교회의 상황을 더 깊이 알 수 있고, 그들의 발전 전망을 예측할 수 있으리라 필자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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