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후원 사역†/선교이야기

독신 여성 선교사들의 헌신

예림의집 2017. 7. 6. 08:54

독신 여성 선교사들의 헌신


일찍부터 여성들은 세계복음화에 막대한 공헌을 해왔다. 신약교회의 시작에서부터 초기교회 시대와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선교사역에서 이룬 업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19세기 동안에는 독신 여성이 선교사가 된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꺼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20년대 초에 독신 여성 선교사가 해외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미국 최초의 독신 여성 선교사 베씨 스톡튼(Betsy Stockton)은 전에 흑인 노예였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해외 선교사로 불러주셨다는 것을 확신하여 미국 선교회(American Board)에 지원하였고, 선교사로 발탁되어 1823년 하와이로 파송되었다. 그러나 단지 다른 선교사 부부의 하녀로서 파송된 것이었다. 그녀는 이런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가르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인정을 받아 학교를 운영할 수 있었다. 1820년 말, 독신 여성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은 뉴햄프셔 토박이인 신시아 패러(Cynthia Farrar)가 지원하여 봄베이로 파송되었다. 그녀는 거기서 34년 동안 마라디 선교회(Marathi Mission) 소속으로 사역하였다.


19세기 초기 여성 선교사들의 활동은 시작하였지만, 수십 년 동안 독신 여성 선교사는 일반 선교회의 재정 후원을 거의 받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여성 선교사들만 후원하는 '여성 지원 단체(Female Agency)'가 발족되었다. 이런 단체가 처음 시작된 곳은 영국이었으며, 곧 이어 미국에서도 이런 유의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1900년 무렵에는 미국에만 여성만을 위한 선교단체가 40개를 넘어섰다. 이런 여성 선교단체의 후원에 힘입어 독신 여성 선교사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하였으며, 20세기 첫 10년 동안 그 수는 개신교 역사상 처음으로 남자 선교사의 수를 능가하였다.


무엇이 그렇게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선교사가 되게 하였는가? 여성들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본국에서 전임 사역자로 일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 사역자는 전통적으로 남자의 직업이었다. 19세기 여성 중에서 캐서린 부스(Catherine Booth)처럼 대담하게 이 남성 우월의 분야에 뛰어든 여성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많은 반대와 저항을 받았다. 여성들에게 있어 선교사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 봉사하는 기회 이외에도 해외에서의 모험과 흥미를 주었다. 남성들은 군인, 뱃사람, 탐험가 등이 되어 자신들의 영웅적 기질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으나 여성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해외선교는 여성들에게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모험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여성들이 해외선교사역에 헌신하게 된 또 다른 큰 배경은 여성해방론(Feminism)이었다. 대부분의 여성 선교사들은 노골적인 여성해방론자들은 아니었지만,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 들어가 남성들과 동등한 사역을 하려는 것은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런 경향은 특히 '여성 지원 단체'들에 의해 크게 고무되었다. 그리고 독신 여성 선교사는 가정의 의무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기에 마음껏 사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자유스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때로 외로움과 침체, 질병 등이 독신 여성 선교사들에게 닥칠 때 이를 이겨내기 힘들다는 면이 있었다.


여성 선교사들은 모든 방면에서 뛰어났지만 특히 의료, 교육, 번역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들에 의해 세워진 병원과 의과대학들도 많았고, 처음으로 수백 가지의 언어들로 성경이 번역된 것도 이들 여성 선교사들의 끈질긴 노력 때문이었다. 여성 선교사들은 주로 어려운 개척사역에 뛰어들어 선교사역의 큰 진보를 이루는 결과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