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 대한 일반적 이해
몽골인 이주 노동자 선교에 대한 현황과 전략을 살펴 보기 앞서 먼저 몽골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부분만 아주 간략히 살펴보고, 이주노동자 선교에 보다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제, 종교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몽골의 일반적 이해
학자들은 기원전 2-3세기에 등장한 흉노족을 몽고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당시 흉노는 몽골고원 지역을 침범하여 몽골족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흉노 이후로는 타타르가 등장하였다. 본래 테무진이 속한 몽골 부 키야트 보르지긴은 지극히 작은 씨족 집단에 불과했는데 약 12세기경 이 약소집단인 몽골부가 역사의 표면에 등장하였다.
몽골 이란 본래 '용감한'이란 뜻을 지닌 부족어였으나, 징기스칸에 의해 통솔된 몽골부의 발전에 따라 민족과 나라의 이름이 되었다. 몽고(蒙古)라는 이름은 중국식 표기로, ‘예로부터 우매한 민족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북방 민족을 비하하기 위해 붙여졌다. 보통 우리가 몽골이라고 부르는 지역도, 중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외몽고라 불리고, 중국 영토 내에 있는 몽골은 내몽고(內蒙古)라고 불리고 있다. 이것은 원나라 이후 고비사막을 중심으로 내외 몽골로 구분된 이후에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몽골의 공식 국호는 Republic of Mongolia이며, 러시아와 중국 국경 사이의 평균 해발 1580m의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수도 울란바타르 외에 모두 21개의 아이막(우리나라 도에 해당하는 몽골의 행정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는 1998년 말 현재 242만 명으로 국토에 비해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나라이다. 몽골의 인구 분포에서 특이한 점은 몽골 전체 인구 중 4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19%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젊은 사람이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이다.
몽골의 민족은 크게 할카 몽골, 카자흐, 브리야트, 기타 민족으로 나누어진다. 할카 몽골은 전체의 77.5%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17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몽골은 다른 다민족 국가와는 달리 민족적인 갈등이나 구별이 매우 희박하다. 언어는 할카 몽골이 90%의 사용 분포를 가지고 있고, 다른 민족들도 대부분 할카 몽골어를 구사할 수 있다. 문자는 ‘호칭 비치크’라 불리는 몽골의 고유 문자가 있었으나 국민들이 너무 배우기 어려운데다 구소련의 영향력으로 인해, 1941~1946사이에 실시된 문자 개혁을 통해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차용해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몽골은 징키스칸을 통해 세계사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징기스칸은 유사이래 가장 큰 세계 제국을 건설하였고, 이 후 그의 아들 쿠빌라이 칸이 1279년 원(元) 나라를 세워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나라는 이후 한족 계통의 명(明) 나라에 의해 멸망했고, 그 후 몽골은 고비 사막 너머로 쫓겨가서 고립된 국가로 남게 되었다. 1616년에는 새로이 성립된 만주계의 청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청나라는 비옥한 땅을 모두 빼앗아버리고 몽골인들은 황폐한 초원지대로 밀려나 유목민으로서의 삶이 더욱 고착화되었다. 1911년 한족계통의 사람들이 청을 타도하고 중화민국을 세웠을 때 외몽골은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중국이 자신의 영토임을 주장하며 몽골을 침공하였고 결국 독립을 포기하게 되었다. 동시에 러시아의 반혁명 세력도 몽골에 침입해 와서 라마교의 활불(달라이라마)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를 수립시켰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러시아 혁명 세력의 원조를 받아 중국군과 활불 정부군을 몰아내었고, 1924년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 완전 독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후 약 70년간 구 소련의 영향력 아래 사회주의 국가로 지내다, 80년대 말 민주화 운동을 통해 1990년 최초의 자유 선거가 실시되면서 사회주의를 완전히 포기하고 ‘몽골 공화국’으로 새롭게 시작하였다.
현재 몽골의 정치 형태는 의원 내각제에 대통령제를 가미한 형태로, 모두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현재는 구 공산당의 후신인 인민 혁명당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
몽골은 유난히도 외부와의 관계가 국내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나라이다. 몽골의 정치는 그 나라의 내부적 사정보다 국제관계와 국제정세에 의하여 좌우되어왔다. 징기스칸 시대 외에는 늘 주변강대국의 정세를 살펴야만 하는 수동적인 자세가 되었다. 중국의 몽골에 대한 적극적인 견제로 늘 고통을 당했다. 청은 남하하는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라마교를 권장하여 몽골족의 사상을 부드럽게 개조하며 장남 이외의 아들들을 라마승으로 보낼 것을 강요하여 인구를 감소시킴으로 북방의 안정을 도모하기도 했다. 몽골은 근대에 와서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근대에 민족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고,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소련은 몽골을 완충국의 역할로서 전략적 안보에 긴요한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으며, 몽골지식인의 대학살을 단행한 쵸이발산이나 체뎅발은 소련의 힘에 의지해서 자신의 정권과 몽골의 독립을 유지했다. 또한 현재도 미국, 러시아, 일본, 한국, 중국의 원조나 투자에 크게 의존하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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