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당하는 환난, 연단을 성경에서는 십자가라고 부른다.
루터는 그의 십자가 이해를 시편강의 다음에 이어진 로마서 강의(1515-1516)에서 좀 더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롬 5:3-5에 대한 주석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의인을 다루시는 행동방식을 또 한 번 꺼내면서 의인의 삶에 왜 십자가가 필요한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신자에게 십자가가 필요한 것은 신자의 신분에 기인한다. 신자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 으로 살아간다. 루터에 의하면, 신자는 하나님이 의를 전가시켜 주심을 통하여서 그리고 그가 이 의를 믿음으로 의로워졌다. 그럼에도 그는 “의롭다”기 보다는 “의롭게 되어졌다”고 칭해져야 한다. 그리고 “의”라기 보다는 “칭의”라고 칭해져야 한다. 신자는 “항상”의로워져야 하는 칭의의 과정 속에 있다. 오직 그리스도 자신만이 이미 의로우시고 완성된 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자의 신분 상태로 인하여 의인의 현재의 삶은 필연적으로 모순적인 삶이다. 신자들은 양심 안에서와 영 안에서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가지고 있지만, 육체와 세상과 악마와는 불화를 가지고 있다.
루터는, 롬 5:3-6에 대한 주석에서, 문장론의 저자인 롬바르트의 소망을 이루는 방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비판하면서, 그의 십자가 이해를 계속 드러낸다. 그는 여기에서 신자가 칭의 후에 당하는 환난을 믿음, 소망, 사랑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로 이해하고 이 환난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바울이 말하는 이런 환난은 하나님의 자비의 증거로 본다. 그는 자비로 말미암은 환난과 심판으로 말미암은 환난을 구분한다. 이런 하나님이 주시는 환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자체와 같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십자가의 유물을 흠모하면서도 환난과 역경을 피하는 자는 위선자라고 비난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환난들이 성경에서는 본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칭해진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환난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들이다. 그는 계속하여 환난의 목적은 신자로 하여금 인내를 배우도록 하기 위함임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연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받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이런 연단이 필요한 것은 이간 안에 남아 있는 원죄 때문으로 본다. 하나님은 자신이 받으시는 아들 마다 이런 연단을 허락하신다고 마한다. 이런 환난만이 참된 소망으로 이끈다고 본다. 소망은 롬바르드가 말하는 것처럼 공적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망은 환난과 연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환난이 참된 사랑으로 이끈다. 그는 이런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Caritas Dei)”이라고 부르고 “인간의 사랑(Amor Homini)”과 구별시킨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어지나 인간의 사랑은 반복되는 행동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덕이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인간의 연민을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연님으로 바꾸고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감정(purissima affectio on Deum)을 갖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올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창조하고 그들로부터 불의를 제하고 자신의 의에 대한 향유를 없애준다. 그는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과 같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교만하지도 부서지지도 않는다. 루터는 이런 사랑을 로마서 8장 28절에 대한 해석에서 “십자가”라 부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Deus iustificans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다.
-루터 신학은 바울 신학이다. 바울을 통해서 성경 전체를 보려했다.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성토하며 살아야 하겠다고 마음을 다짐했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임하여야 한다. 목회의 최고의 무기.
-끌어 오름이 있어야 한다.
*iustifacatio(칭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십자가 없이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없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포해야 한다. 8:2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ex fide(믿음으로)
-개신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믿음이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고, 우리의 자력적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믿음을 갖게 해달라고 늘 기도해야 한다.
-약속의 핵심은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주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하나님과 화목 되는 것이 복이다.
-당시에는 믿음보다 사랑이 강조되던 시대이다.
-사랑은 믿음의 열매인 것이지 사랑 때문에 믿음이 오는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신득의는 있을 수 없다.
*Sanctifatio(거룩) 하게 만드심(성화)
-의롭게 된 자들을 가만히 두면 성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닮기까지 이끄신다.
-구원은 하나님의 열심이다.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이루어가시고, 완성시키는 것이다(박영선 목사).
-신앙인의 상태가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이기 때문에.
-항상 머리 속에 넣고 목회를 해야 한다.
-인간된 우리는 자기 영광을 구하려 하고, 안주에 빠지고, 게을러지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율법(처서 굴복시키는)이 필요하다.
신자의 십자가
*tribolatio(환난, 고난)
-처음에는 감당할 수 있다고 느끼지만, 계속되는 고난으로 시험이 들어 버린다.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한 분이신가? 믿음이 없는, 경험이 없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금식기도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시험에 들 수 있다.
*tentatio(시험)
*oratio(기도)
-울부짖는 기도, 간절한 기도. 가슴을 찢는 기도, 통회하는 마음, 쏟아놓는 기도.
-환란과 시험을 거친 신앙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이것이 없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하나님은 의롭게 만든 다음에 가만히 두지 않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에까지 이끄시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신자의 십자가를 모두 설파해야 한다.
-해방신학, 민중신학 정치신학에서는 대속의 십자가를 전하지 않는다. 인간의 원제와 대속이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아이러니이고 하나님이 싫어하신다.
*루터정통주의, 칼빈정통주의 -> 화란 개혁주의
-정통주의가 제일 강조하는 것은 어떤 것이 정통 교리인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에 대해서는 흠 없이 전하지만, 신자에게 임하는 십자가를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여러분에게도 십자가가 왔다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한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신다.
*대속의 십자가를 전하는 사람은
-마귀가 제일 싫어한다.
-온갖 방법으로 방해한다.
-행위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비판을 받는다.
-반드시 안팎으로 핍박을 각오해야 한다.
-올바른 목회를 하면 사탄과의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세상이 하는 말을 교회에서 똑같이 하게 된다면 교회는 텅텅 비게 된다.
-복음은 칼 막스 이후에 사회 경제의 문제로 세상을 보는 잘못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이다.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아무런 핍박이 없다는 것은 복음을 잘 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님의 도우심
-신자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을 성령이 도우시고 영화에 이르게 하신다.
-성화되어가며 마지막 날에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가 영광의 자리이다.
-뽑고, 뽑은 자리가 나의 자리이다.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다. 함부로 건딜수 없게 하라.
*glorificatio(영화)
-마지막 날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나를 쓰시는 그 자리
-나는 부족하지만 나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전할 것이다.
-영적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아무도 날 건딜지 못하게 되어 있다.
*단회적 사건-의롭게 되는데 까지
*반복적 사건-성화(환난, 시험, 기도), 성령의 도우심, 영화
*찬송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예베소서 1:3 고전 1장 벧전 1장 “찬송하리로다”
-칭의론의 꽃은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는 것이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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