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신약신학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예림의집 2016. 12. 9. 16:45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누가복음 18:31-33에는 이 땅에서의 공생애를 십자가로 끝내시며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가르치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알려주셨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다. 왜냐하면 감추었기 때문, 비밀이었기 때문이라고 누가는 덧붙인다. 그런데 이 가르침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길에서 처음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이전에도 두 번이나 말씀하셨고 본문까지 세 번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세 번 알리셨다. 첫 번째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들이신 후(마 16:20-21, 막 8:30-32) 말씀하셨고, 두 번째 변화산에서 모세, 엘리야와 변모하신 모습을 보여주신 후 산 밑에 내려와 귀신을 내 쫓지 못하는 믿음 없는 제자들을 책망하신 후(마 17:9, 22-23, 막 9:9, 눅 9:44-45) 말씀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공생애 마지막 유월절 여행길에(마 20:17-19, 막 10:32-34, 눅 18:31-34) 말씀하셨다. 세 번씩이나 동일한 말씀을 하셨지만 깨닫지 못한 이유를 누가는 이 가르침이 아직 12제자에게도 감추였다고, 비밀이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1년 전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 지역에 머무시며 오병이어를 행하셨고 6개월 전 초막절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으려 하시다가 명절 중간에 올라가셔서 가르치셨던 적이 있는데 이러한 행동은 당시 갈릴리에 살았던 경건한 유대인들은 절기가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던 것과는 다른 행동이셨다. 12제자들은 절기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얼굴을 보여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다른 행동을 보이시던 이전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눅 18:31)”고 말씀하시며 유월절이 되기 전 미리 올라가고 계시는 이번 유월절에 대한 예수님의 의도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예수님과 따르는 많은 무리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을 뿐 왜 이번 유월절에 때에 맞추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계시는지, 선지자의 예언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는데 왜 인자가 죽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하시는지 관심이 없었다.

갈릴리에 계실 때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두었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와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선지자가 예루살렘 박에서는 죽는 일이 없다”는 말씀을 갈릴리에서 하시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중이다. 아마도 제자들은 바리새인들과 나누는 대화를 다 들었을 것이다(눅 13:31-35). 십자가가 준비되었고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으며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시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세 번 가르치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관심이 없었기에 깨닫지 못했고 비밀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비밀에 제자들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목적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과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마 6:30, 14:31, 16:8, 막9:19, 요 6:26).

예수님께서 죽으시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는 것을 12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말씀하셨던 것을 언급했는데 아마도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는 다른 많은 무리들에게도 이 사실이 전해졌던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 편에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사흘 만에 다시 사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인자가 사흘 후 살아나리라’는 것을 기억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잡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한 사람들이었다. 마태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마 27:63-64).”라고 말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눅 18:32-33)”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다려야 할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사사건건 방해하며 대립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병사들이 지키게 하였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시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예수님께서 말씀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이 땅에 40일을 계시며 믿지 못했던 사람들을 믿게 하셨다.

이제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대해 시간적으로 따져보겠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오후 3시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안식 후 첫 날 곧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시간을 새벽 6시로 생각하더라도 39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금요일 오후 3시-밤 12시 9시간 + 토요일 24시간 + 주일 새벽까지 6시간). 4시간, 만 이틀도 되지 않는 시간인데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근거일까? 이것은 현대인들의 시간 계산법과 당시 유대인들의 시간 계산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날자 계산법은 하루가 지나도 일주일로, 한 달로 계산한다. 한 달이 지나면 일 년으로 계산한다. 그렇다면 1시간이 지나도 하루로 계산하는 것은 같은 이치일 것이다. 한 가지 더 다른 점은 현대인들은 자정부터 다음날 까지(편의상 0시-24시)를 하루로 생각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해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까지를 하루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계산법대로 날 수를 계산해 생각해 보면 금요일 오후 3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부터 금요일 해지기 전까지가 하루이고 안식일(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이하루가 지났고 안식 후 첫날 12시간(새벽6시에 부활하신 것으로 가정한다면) 정도가 지나 부활하셨기에 정확히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이 맞다. 이 시대의 시간법이 아닌 성경시대의 시간 법에 의해 예수님께서는 정확하게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러나 문제는 말씀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셨지만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못했고 믿어야 할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말씀대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했다는 것이다.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믿고 따르며 전파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