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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한 제사장(레 21:16-21)

예림의집 2016. 11. 5. 23:50

신령한 제사장(레 21:16-21)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7.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너의 자손 중 대대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니라 18. 누구든지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곧 맹인이나 다리 저는 자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19.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20. 등 굽은 자나 키 못 자란 자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습진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고환 상한 자나 21.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와서 그의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이 시간에 “신령한 제사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신약시대는 만인제사장 시대입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밖에 할 수 없는 것을 신약시대에는 모두가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를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 혹은 신령한 제사장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1520년에 마틴 루터가 쓴 ‘독일 귀족에게 고함’이라는 책에 보면 1. 모든 성도는 세례 받는 순간에 사제의 소명을 받았다. 2. 성도와 사제의 계급이 있을 수 없다. 3. 신부에게 죄를 고해성사할 필요가 없이 직접 하나님께 고백하면 된다. 4. 기능면에서 구별이 될 뿐이다. 즉 사제는 성례 집행과 말씀 선포에서 그리고 평신도들은 세속 직업에서 소명을 감당해야 한다. 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에서 모두가 다 교직자가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만인제사직이란 우리가 직접 하나님 앞에 죄를 고하여 죄사함을 받거나 타인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지 아무나 교회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 앞에 합당한 신령한 제사장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 말을 보면 "누구든지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곧 맹인이나 다리 저는 자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등 굽은 자나 키 못 자란 자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습진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고환 상한 자나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와서 그의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흠 없는 제사장이어야 한단 말입니다.

1. 제사장은 먼저 신령한 눈을 가진 자여야 합니다.
제사장의 무흠의 첫째는 맹인이어서는 안 됩니다. 제사장이 눈이 밝아야 하는 것은 질병을 진단하거나 성막에서 흠 없는 짐승을 골라, 칼을 가지고 짐승을 잡아 각을 뜨고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제육을 불사르는 등 밝은 눈이 아니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려면 신령한 눈을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바로 눈이 멀었다는 것입니다. 사42:18-19에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 맹인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내가 보내는 내 사자 같이 못 듣는 자겠느냐 누가 내게 충성된 자 같이 맹인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맹인이겠느냐" 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신령한 눈은 바로 성경을 잘 알 때 뜨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지안도 열리게 하고 영안도 열리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무엇이 참되고 거짓이며, 거룩하고 불결하며, 어떻게 주님을 믿고 섬겨야 하는지 잘 알게 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랬습니다.
계3:17-18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책망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눈이 열립니다. 그래서 딤후3:15에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회개의 영도 신령한 눈이 열릴 때 가능합니다. 자기 죄가 깨달아져야 가슴 치며 회개합니다. 신령한 눈이 열릴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 말씀이 믿어지게 됩니다. 신령한 눈이 열리도록 늘 말씀과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2. 제사장은 말씀 안에서 바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제사장은 다리가 건강해야 합니다. 성막 안에는 의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제사장은 서서 혹은 움직이며 분주히 봉사했습니다. 봉사하는 동안에는 앉아서 쉬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옮길 때도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에 모두들 신중하게 임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다리란 무얼 말할까요? 바른 행함을 말합니다. 히12:12-13에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했듯이 말씀대로 바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잘못된 길로 행하지 말고 올바르게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리는 힘을 말합니다. 주님의 다리는 빛난 주석 같았습니다. 왜 강하십니까? 악의 세력을 밟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잠26:7에는 “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뿐 아니라 마음의 악을 용납하지 않고 짓밟아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유혹과 시험이 와도 악인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신 것처럼 바로 그리고 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잘못할 때 엘리가 그들의 잘못을 말하지만 절대 용납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죄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자기에게 대하여 강하시기 바랍니다. 강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제사장은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제사장은 코가 불완전하면 안 됩니다. 코가 불완전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히룸’인데 이그러졌다는 뜻입니다. 코가 없다든지 비뚤어졌다든지 찌그러져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코를 만드실 때 코를 우뚝 세우시고 콧구멍이 아래를 향하고 있게 하신 것은 참 지혜로우신 것입니다.
아래로 향하기 있기 때문에 떨어지는 비나 먼지를 피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대인관계에서도 콧바람이 나지 않고 음식물의 냄새를 잘 맡을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성막에서 불완전한 코를 가진 제사장이 있다면 그 바람 때문에 촛대의 불도 꺼질 것이고 진열해 놓은 떡도 불결해지고 다른 제사장들에게도 불쾌감을 줄 것입니다.
이처럼 바른 코의 중요한 기능은 바로 후각기능입니다. 그래서 아7:4에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한 대로 솔로몬의 아내 술람미의 코를 레바논의 망대에 비유한 것은 그 코가 높았다는 것을 말할 뿐 아니라, 적을 감시하는 다메섹 망대처럼 잘 분별했기 때문입니다. 북쪽에서 침략이 많았으므로 북방 다메섹에 망대를 높이 세웠습니다.
이처럼 영적 분별력이 우수해야 합니다. 공항에서 검색할 때 개를 쓰는 것은 후각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단이 와서 꾀더라도 몇 마디 들으면 냄새로 판단해야 합니다. 간첩이 와서 꾀더라도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판단하지 못하고 미혹 당하면 믿음은 끝납니다.
신川지에서 돌아온 추수꾼의 간증인데 경기도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교회가 바로 S교회였다고 합니다. 이 교회는 신川지의 활동상에 대해 주보 한 면에 아예 기재를 하여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본 추수꾼들이 그 교회 들어가려고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또 한 번은 어느 교회의 한 자매를 포섭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알아내기 위하여 전화를 빌리고 그 다음날 그 자매를 포섭하기 위하여 고마움을 표시하며 신랑이 밥 산다고 했을 때 그 이 문자에 대한 그 자매의 답변은 “당신, 혹시 신川지?”였습니다. 이 문자를 보고 대원들 전체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간증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척 하면 벌써 누군지 무엇을 하러 왔는지 분별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자기를 지킬 수 없습니다.

4. 제사장은 진리를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넷째로 제사장은 지체가 더해서는 안 됩니다. 더한 자란 히브리어로 ‘사루아’, 이 말은 쓸 데 없는 것이 더 붙어 있는 사람입니다. 손가락이 하나 더한 육손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신체가 더하면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떤 교훈입니까? 온전한 신앙을 위해서는 진리를 가감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예수님께서 마5:19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 중 어느 것이라도 소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잘해도 말씀 빼면 그 믿음은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다 잘하는데 기도가 부족해도 그렇습니다. 봉사 전도 헌금 다 그래요. 한 가지라도 소홀하면 믿음이 크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다 잘할 수 없으니 우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따르는 은혜로 다른 것들도 잘하게 될 것입니다. 찬송 좋아하면 찬송 열심히 하시면 기도도 하게 되고 말씀도 더 가까이하게 될 것입니다. 봉사 좋아하면 그 봉사로 은혜 받아 다른 것도 잘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 열심히 하면 다른 것도 잘하게 됩니다. 말씀을 가감하면 그 믿음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벧전2:4-5에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셨으니 말씀과 성령 안에서 신령한 눈을 뜨고, 바로 힘껏 행하고, 분별하며, 성경의 진리를 가감하지 않고 행함으로 더욱 온전하고 신령한 제사장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