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란 무엇인가?
손종국1)
1. 연재를 시작하면서
개빈 프레터 피니(Gavin Pretor-Pinney)는 구름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해서 '구름 감상 협회' 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어, 전 세계 사람들과 아름다운 구름 사진을 찍어 공유하고 있습니다.2)
여러분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곧 보게 되실 겁니다. 이렇게 극적인 것은 아니지만 구름을 보게 될 거에요. 여러분이 사는 곳 둘레에서 보게 될 겁니다. 구름은 자연이 보여주는 최고의 평등주의자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늘을 보는 멋진 전망을 가졌으니까요. 그리고 이 구름들, 보기 드문 구름들은 이국적인 풍경을 날마다 볼 수 있음을 우리한테 일깨워줍니다. 활발하고 호기심에 찬 마음에는 놀랍고 경이롭게 느끼는 것보다 더 영양가 있고 더 자극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놀라기 위해 익숙한 곳을 떠나 세상 저 편으로 달려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밖으로 나가 날마다 흔히 일어나는 일에서 너무나 일상적이라 모두가 놓쳐버리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보세요. ....
구름찾기란 뚜렷한 목적이 없는 활동임을 일깨워줍니다. 얼마나 목표가 없는 활동입니까. 드러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그렇죠?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없는 활동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디지털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바쁜 것처럼, 끊임없이 바쁜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여러분이 돈을 벌거나 음식을 상위에 놓거나, 가족을 보살피거나 고맙다는 편지를 쓰지 않을 때는 산더미처럼 쌓인 이메일에 답을 하거나 페이스북에 새로운 내용을 올리거나 트위터에 글을 올리거나 하면서 바쁘게 지내야 합니다. 구름찾기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 시켜줍니다. 3)
한국교회의 교회교육이 심각한 상황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이유들이 아주 많이 있는데 그 해결책도 다양하겠지만 저는 교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사들과 기독교교육의 허와 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마치 산책을 하듯이, 산책을 하다가 언덕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듯이 호기심을 지나 경이로움을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편안한 맘으로 기독교교육을 바라보면서 호기심으로 질문을 하고 경이로움은 아니어도 “아하, 그것이었구나!”하는 답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 교육의 실제
제가 강의하면서 즐겨 서론으로 사용하는 예화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발을 씻긴 아들”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어느 일류대 졸업생이 한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사장이 면접 자리에서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유수한 회사에 입사시험을 치르기 위해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면접 도중에 사장인 듯한 분이 물었습니다.
“부모님을 목욕시켜드리거나 씻겨드린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없습니다.”
청년은 정직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부모님의 등을 긁어드린 적은 있나요?”
청년은 잠시 생각했습니다.
“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등을 긁어드리면 어머니께서 용돈을 주셨죠.”
청년은 혹시 입사를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데 사장은 청년의 마음을 읽은 듯 ‘실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고 위로했습니다.
정해진 면접 시간이 끝나고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자, 사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세요.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한 번도 부모님을 씻겨드린 적이 없다고 했죠? 내일 여기 오기 전에 꼭 한번 씻겨드렸으면 좋겠네요, 할 수 있겠어요?”
청년은 꼭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반드시 취업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지요.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품을 팔아 그의 학비를 댔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그는 도쿄의 명문대학에 합격했습니다. 학비가 어마어마했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가 돈을 벌어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해야 할 차례였습니다.
청년이 집에 갔을 때, 어머니는 일터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청년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시니까 틀림없이 발이 가장 더러우실거야. 그러니 발을 씻겨드리는 게 좋을 거야.’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아들이 발을 씻겨드리겠다고 하자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발은 왜 씻겨준다는 거니? 마음은 고맙지만 내가 씻으마!”
어머니는 한사코 발을 내밀지 않았고 청년은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씻겨드려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오늘 입사 면접을 봤는데요, 사장님이 어머니를 씻겨드리고 다시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발을 꼭 씻겨드려야 해요.”
그러자 어머니의 태도가 금세 바뀌었습니다. 두말없이 문턱에 걸터앉아 세숫대야에 발을 담갔습니다. 청년은 오른손으로 조심스레 어머니의 발등을 잡았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까이서 살펴보는 어머니의 발이었습니다. 자신의 하얀 발과는 너무나 다르게 느껴졌다. 앙상한 발등이 나무껍질처럼 보였습니다.
“어머니, 그동안 저를 키우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이제 제가 은혜를 갚을게요.”
“아니다. 고생은 무슨.......”
“오늘 면접을 본 회사가 유명한 곳이거든요. 제가 취직이 되면 더 이상 고된 일은 하지 마시고 집에서 편히 쉬세요.”
손에 발바닥이 닿았습니다. 그 순간 청년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말문이 막혔습니다. 어머니의 발바닥은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도저히 사람의 피부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이 발바닥에 닿았는지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발바닥의 굳은살 때문에 아무런 감각도 없었던 것입니다. 청년의 손길이 가늘게 떨렸습니다. 그는 고개를 더 숙였습니다. 그리고 울음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새어나오려는 울음소리를 간신히 삼키고 또 삼켰습니다. 하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한 쪽 어깨에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지자 청년은 어머니의 발을 끌어안고 목을 놓아 구슬피 울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청년은 다시 만난 회사 사장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저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사장님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만약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어머니의 발을 살펴보거나 만질 생각을 평생 하지 못했을 거예요. 저에게는 어머니 한 분 밖에 안계십니다. 이제 정말 어머니를 자 모실 겁니다.”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인사부로 가서 입사 수속을 밟도록 하게.”
한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그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은 참으로 귀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육이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3. 어원으로 살펴보는 교육의 정의
기독교교육을 정의내리기에 앞서 먼저 ‘교육’ 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지요. 우리말의 “교육” 이라는 단어는 한자 “敎育”에서 온 단어인데,문헌상에서 이 단어가 처음을 나타난 것은 맹자의『진심편j 儘心編)이라고 합니다. 이 문헌에서 맹자는 군자가 취할 수 있는 즐거움이 셋이 있는데,그 하나가 부모,형제가 건강한 것이고,다른 하나는 하늘과 땅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는 것이며,마지막 하나가 세상의 인재를 모아 ‘교육’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 번째의 즐거움에 바로 가르칠 敎’와 ‘기를 育’의 합성어 ‘敎育’이라는 단어가 나타난다.
가르칠 敎와 기를 育의 합성어로서의 교육은 이미 교육이 갖는 중요한 두 측면을 나타내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敎)란 피교육자의 외부로부터 피교육자에게 문화와 전통, 생활기술, 풍습,언어 둥을 가르쳐 주는 것을 말하고 반대로 ‘육’(育) 은 피교육자 안에서부터 그가 생득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질과 성품과 성장의 잠재 능력들을 바르고 순조롭게 자라날 수 있도록 보호 육성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 둘의 합성어로서의 교육이란 피교육자의 외부에서부터 일정한 가르침을 통하여 피교육자 안으로 영향을 미쳐 들어가는 것과,피교육자 내부에서부터 그의 잠재력을 끄집어내어 길러주는 것 간의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 이라는 단어의 순수 우리말 ‘가르치다’도 그와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가르치다’ 의 어원은 ‘가ᄅᆞ치다’ 인데,이는 ‘가ᄅᆞ’ 와 ‘치다’의 합성어입니다. ‘가ᄅᆞ’는 ‘가ᄅᆞ다’에서 온 말로,‘교훈을 주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자 가라사대’는 ‘공자가 가르치시기를’ 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가ᄅᆞ다’는 말은 한자의 ‘가르칠 교’에 해당하는 뜻,즉 학습자의 외부에서 필요한 것들을 학습자에게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치다’는 단어는 ‘동물을 사육하다’, ‘식물의 가지나 잎을 베어내다’, 혹은 ‘철을 달구어 칼 같은 것을 만들다’와 같은 경우에 사용되며,‘경작’,‘연마’ , ‘사육’,‘제거’, ‘성장’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자어 ‘敎育’의 ‘기를 育’에 해당하는 것으로 피교육자의 성장잠재력을 끄집어내어 바르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가르치다’는 한자의 ‘敎育’과 같이 피교육자의 외부에서 피교육자에게 영향을 미쳐 들어가는 것과,피교육자의 잠재력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기르는 것 사이의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의 Education은 라틴어인 educare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기르다', '살찌게 하다' '육성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교육에서는 '양육하다', '~에게 영향을 주다'는 'nurture'를 많이 사용하며, 이상적인 지도자를 뜻하는 말로는 guide(안내자, 길잡이), train(가르치다, 훈련하다)을 거론하기도 합니다. 또한 educare의 본질을 나타내는 말로는 expression(사상, 감정의 표현, 표시)과 impression(인상, 감명, 영향, 효과)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의미의 교육이란 expression과 impression이 동시에 갖춰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어원적 설명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교육’ 이란 교육자가 피교육자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의 것들을 가르쳐 주고 사회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 가는 것 뿐만 아니라,피교육자의 내부에 들어있는 잠재적인 성장의 가능성이 올바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활동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르치고 키우는 일인 ‘교’와 ‘육’이 어느 한 측면도 간과되지 않고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이루어지는 활동 그것이 교육인 것이지요.
4. 교육의 특성
다음 4가지의 특성을 이해하면 교육하기가 참 쉬워집니다.
(1) 의도성
교육은 인간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행위인 이상 의도적으로 이루어지지요. 교육이 이렇게 의도성을 가진다고 전제할 때 다음의 몇 가지 개념적 의미를 내포합니다.
하나, 무엇을 이루려는 동기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둘, 그 동기를 의식하는 행위 주체자가 자신의 행동이 그 동기를 실현하기 위한 효율적 수단임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셋, 수단적 행동을 선택할 때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 선택하고 실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의도적 행동인 교육은 하나의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그 동기와 목적을 실현시켜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행동이 적합성과 효율성을 가지며, 그리고 그 행위가 행위 주체자의 자율적인 의지와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교육을 의도적 행동 과정으로 규정할 때 자연발생적이거나 우연적인 것들은 교육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어떤 동기나 목적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지 않고, 행동의 효율성이나 타당성이 검토될 수 없으며, 의지적이거나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닌 만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목적 없이 이루어지는 행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부여할 수 없는 행위는 교육이라 할 수 없습니다.
(2) 가치 지향성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육이 의도적 행위라 할 때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목적은 반드시 그 사회의 바람직한 가치가 투영되어야하지요. 그 사회가 바람직하지 못하게 생각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인간행동을 교육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육이 가치 중립적인 단지 서술적인 인간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이렇게 교육이 그 사회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가치를 지향한다고 할 때 교육은 개념적으로 규범성을 추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육의 과정은 이와 같은 규범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치 판단과 선택의 과정이라는 사실, 그러한 가치 판단과 선택의 결과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수반된다는 사실, 또한 이런 까닭에 교육에 대한 규범적인 논의가 요구된다는 사실이 자명해집니다.
(3) 인간변화성
교육이 의도성을 가지며 가치 지향적인 인간 행위라는 점과 아울러, 교육은 인간 변화를 추구하는 해동이라는 사실도 중요한 개념적 특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육이 인간의 변화를 도모한다고 할 때 변화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신념, 가치관, 지식, 경험, 행동, 성격, 그리고 신앙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를 포괄적으로 성향이라는 말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성향이란 인간의 삶을 가능케 하는 내적 조건이라 할 수 있지요. 따라서 교육은 인간 성향의 변화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 성향의 특정한 부분을 변화시키는 것도 교육이겠으나 오늘날 교육의 기본적이고 가장 포괄적인 목표는 인간을 전인적으로 성장, 변화시키는 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 성향의 특정한 부분의 변화만 꾀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훈련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하기도 합니다.
(4) 상호 작용성
교육은 피교육자와 교육자 또는 교육 공동체를 전제합니다. 피교육자 혼자 자기 개발을 해 가는 작업을 교육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의도성의 주체로서 교육자 또는 교육공동체가 전제되고, 교육받고자 하는 욕구를 갖는 피교육자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의도성의 주체로서 교육자 또는 교육공동체는 피교육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하면서 그의 바람직한 행동 변화를 추구하는 존재들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교육은 하나의 사건인데, 교육자와 피교육자, 교육공동체와 피교육자 사이의 상호 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가치 지향적 인간 변화의 사건인 것입니다. 여기서 상호작용이란 인격적 만남을 바탕으로 하여 상호 교감, 연대의식, 관심과 배려, 가치의 공유, 존경과 사랑의 느낌 등과 같은 심리적 교류가 일어나는 관계를 말합니다.
주)
1) 손종국은 청소년교육선교회 대표이며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한 철학박사이다. 1973년에 유년주일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1975년부터 2014년까지 중고등부 교역자로 일을 하였고 1987년부터 청소년교육전문가로, 청소년집회 설교자와 청소년사역자훈련, 교사교육, 부모교육을 위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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