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제로 풀어쓴 기독교 강요
본문 요약:
제 1권 성부, 스스로 계신 창조주 하나님
제 1주제 생명의 지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1.1.1-1.5.15)
지식의 첫째 부분으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구속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부성적인 사랑을 베푸셔서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보존하시고, 운행하시는 섭리를 대상으로 한다. 둘째 부분으로서 우리를 아는 지식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이 함께 역사하기 때문에 참 경건이 없는 곳에는 참 지식도 없다.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할 뿐만 아니라 그분의 은혜를 깨달아 그분의 사랑을 감사하고 흠모하는 것이다. 경건은 위로부터 하나님의 계시를 내려 받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과 교제하며 교통하고 아래로부터 “합당한 예배”를 올려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제 2주제 성경: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특별한 학교(1.6.1-1.7.5)
하나님은 중생의 은총을 베푸실 때만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셔서 자신의 존재와 어떠하심에 대한 지식을 친히 우리 심령 가운데 새겨주신다. 말씀으로서, 말씀으로써, 하나님은 어떤 외부적 매개와 협력 없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이 택하신 인간 저자들이 기록한 기록물이다. 성경의 원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성경의 권위는 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있다. 성경은 성령의 내적이며 은밀한 증거에 의해서 우리에게 진리로서 확증된다. 성령의 내적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한 진리임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진리가 참되다는 주관적 확신에 이르게 한다.
제 3주제 말씀과 성령: 친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1.8.1-1.9.3)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함은 하나님이 성경 기록자들을 감화시켜 말씀을 정확무오하게 기록하게 하셨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들의 입에 말씀 자체를 불어 넣어 주셨다는 사실까지도 포함한다. 진리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가 위에서 부어주시는 영으로서 오직 그분이 가르치시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며 알게 하신다. 성령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들은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써 장래의 일을 알리신다.
제 4주제 삼위일체 하나님: 한 본질 안에서 세 위격이 세 인격으로 계심(1.13.1-1.13.29)
무한하고 영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다.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시다. 즉 한 실체이시다. 즉 한 실체이시다. 하나님은 한 분으로 존재하신다. 그런데 한 분 하나님은 세 위격적 존재로 존재하신다. 그리하여 세 위격으로 세 인격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은 위격에 있어서 구별되시나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시다. 각각의 위격은 고유한 특성에 따라서 서로 구별되나 불리 되지는 않는다. 세 위격은 고유한 특성에 따라 고유한 일을 감당하신다. 성자의 위격을 제시하는 사역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나심, 하나님의 아들로서 창조와 섭리의 중보자가 되심, 구원의 주시오 모든 은사의 조성자가 되신다. 성령은 말씀하시는 분이시고, 창조와 섭리의 영으로서 역사하시며, 중생의 조성자로서 생명을 살리는 능력을 지니신다. 삼위일체의 경륜에 있어서 성자와 성령은 함께 일하신다.
제 5주제 피조물: 하나님의 영광의 눈부신 극장(1.10.1-12.3, 1.14.1-22)
하나님은 자신이 기뻐하시는 대로 만물을 지으셨다. 하나님은 창조와 구속에 있어서 어떠한 외부적 필연성에도 매이지 않는 무조건적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드러낸다. 시간과 공간을 지으신 분은 시간과 공간에 갇히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토록 유려한 아름다움과 위대하고 다양한 은사들로 사람을 장식하셔서 자신의 작품 중에서 최고의 표본을 삼으셨다. 하나님은 이 우주의 모든 좋은 것을 다 지으신 후 사람을 창조하셔서 그것들을 누리게 하셨다. 천지를 지으실 때 하나님은 사람의 복리를 특히 귀하게 여기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가진 인류로부터 합당한 영광을 받기 위해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예견하신 대로 모든 것을 미리 창조하셨다.
제 6주제 사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격적 찬미의 도구(1.15.1-8)
하나님은 사람을 영혼과 육체로 지으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 중에서 의와 지혜와 인제하심을 드러내는 가장 고상하고 놀라운 표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 본성의 온전한 탁월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의 모든 부분에서 본성의 온전한 탁월함을 의미한다. 영혼은 불멸하나 창조된 실체로서 사람의 보다 고상한 부분이다.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는 본질적인 무엇이다. 하나님이 주신 여러 은사를 통해서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것이 신적인 무엇을 지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혼은 불멸하는 본질이며 육체 밖에서도 영원히 사는 실체이다.
제 7주제 섭리: 영원히 현존하는 하나님의 손(1.16.1-18.4)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친히 만물의 통치자시며 보존자가 되신다. 지으신 분이 지키고, 보호하고, 양육하신다. 지으신 분의 뜻이 없으면 참새 한 마리도 그저 떨어지지 않는다. 성령의 역사는 만물의 창조와 운행에 모두 미친다. 하나님의 섭리는 특별히 인생에 미치니 사람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그분 자신이시다. 하나님은 자신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일하시되 사람의 보이는 손을 사용하신다. 모든 것을 정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와 열심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여 자신의 일을 이루신다. 하나님의 뜻이 제1 원인이고, 사람을 이차적 원인으로 사용하신다.
제 2권 성자, 우리를 위하신 구속주 하나님
제 8주제 원죄: 죄책과 오염의 전가 일반은총: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은혜
모든 사람에게는 맹목적인 자기애가 있어서 자신이 옳으며 유능하다고 여긴다.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망상적인 자기도취에 빠져서 최초의 죄를 범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도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바에 따라서 매사에 실족하게 되었다. 죄는 본질상 불충과 배은망덕에서 기인한다. 여호와의 말씀을 떠난 일체의 야심이 모두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영의 선물을 더하셔서 학술과 기예와 사회적인 삶 등에 있어서 윤택함을 누리게 하셨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초자연적인 본성은 아예 제거되었으며, 비록 자연적인 본성이 조금 남아 있다고 하나 그것마저도 심히 부패하여서 그러한 기형적인 자해로는 영적인 분별력을 전혀 발휘할 수 없다. 하나님은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양심에 자연법을 새겨주셔서 그들이 무지하므로 죄를 짓게 되었다고 변명할 수 없게 하셨다.
제 9주제 율법: 경건하고 올바른 삶의 규범(2.7.1-2.8.59)
율법은 삶의 규범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율법에는 자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다. 율법에는 또한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계시되어 있다. 율법은 가장 고상하고 유익하게 삶을 정돈하여 세우는 방식을 알려준다. 참 경건의 도를 배운다. 정직하고 올바른 삶을 사는 영원한 규범, 완전한 의의 모법이 제시되어 있다. 율법의 제 1용법은 율법을 통하여 우리는 율법의 의와 우리 삶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깨닫는다. 율법은 우리의 무능과 악함을 동시에 들춰내기 때문이다. 제 2용법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죄를 억제하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제 3용법은 거듭난 사람들 가운데 작용하는 용법을 지칭하는데, 가르치는 사역과 권고하는 사역이다.
제 10주제 복음, 신구약: 언약 가운데 약속하시고 이루심(2.9.1-2.11.14)
신약과 구약은 그 자체 혹은 실체에 있어서는 하나이며 동일하나 경륜에 있어서는 다양하다. 신구약 공히 중보자의 은총에 의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됨을 계시하기 때문이다. 구약의 조상들은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믿되 아직 육체로 오신 그분을 직접 보지는 못하였으나 중보자 없는 언약의 은총은 기대할 수 없다. 복음은 진리의 말씀이며 구원의 말씀이다. 복음에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복음은 이 땅에 선포되는 천국의 복된 소식이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은총을 선포한다. 복음의 시작은 주님이시다. 그분이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그분 안에서 예가 된다. 그러므로 복음은 예수의, 예수에 관한, 예수로부터의 복된 소식이다.
제 11주제 그리스도의 중보의 필연성: 성육신(2.6.1-4; 2.12.1-2.13.4)
기독론의 의의는 인간론에 의해서 제기되며 기독론의 가치는 구원론에 의해서 실현된다. 인간론의 핵심 논제인 전적 타락의 교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총의 필연성을 직시하게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식을 아는 지식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통하여 교호적으로 작용한다. 주님의 성육신이 계시의 정점이다. 성자 하나님은 타락 전에도 천사와 사람들의 머리가 되셨고, 그분이 사람이 되셔서 대제사장이자 제물로서 죄의 값을 치르고자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영원한 생명의 지혜가 되었다.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로 나셨고, 영원한 왕좌가 약속되었다.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 우리의 본성을 지니심으로 자비하고 충성스러운 중제자가 되셨다. 그리스도께 주신 모든 것이 우리에게 속하였다.
제 12주제 위격적 연합을 통한 양성의 교통: 그리스도의 선지자, 왕, 제사장 직분
성육신은 그 무엇으로도 비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신비이다. 신성과 인성 각각은 위격 안에 있으나 위격은 아니다. 칼뱅은 양성을 분리하는 것과 혼합하는 것 모두를 거부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앙양성의 한 분이시므로, 인성에 속한 품성이나 신성에 속한 품성이 모두 주님께로 돌려진다. 그러므로 성경이 인성에 다른 품성과 사역을 참 하나님이신 주님께 돌리거나 신성에 따른 품성과 사역을 참 사람이신 주님께 돌리는 것은 지급히 합당하다.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신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리고 죽으셨다. 고난은 인성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위격적 연합에 따른 양성의 교통으로 신성에도 돌려진다. 왜냐하면 고난을 느끼는 성은 인성이나 고난당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그 안에는 신성이 인성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 13주제 그리스도의 구속자 신분: 비하(卑下)와 승귀(昇貴)(2.16.1-18)
구속자의 직분이 예수 그리스도께 맡겨졌다. 주께서 자기 백성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이 우리를 구원의 종점까지 줄곧 이끄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방식 혹은 질서로서 주님의 무름이 요구된다.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기꺼이 또 거저 베푸시는 자신의 관용, 즉 거저 베푸시는 호의로 우리의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 중보자 그리스도의 승귀, 즉 높아지심은 부활, 승천, 보좌 우편에이 재위, 재림을 포함한다. 우리의 믿음이 죽음을 이기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신 승리의 선포이다. 주께서 승천하심으로 닫힌 문을 여셨고, 중보자로서 하늘 성소에 계시며, 자신을 주심으로 다스리신다.
제 14주제 그리스도의 대리적 무름: 사랑의 시작은 의(義)(2.16.19-2.17.6)
속죄는 죄의 값을 치르고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무름은 중보자 그리스도의 대속적 공로의 가치를 표현한다. 그것은 배상과 보상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리스도의 무름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의의 전가로 열매를 맺는다. 그것은 대리적이며,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하여 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신 그 사랑의 방식에 상응한다. 그리스도가 우리가 빚진 형벌을 대신 무르셨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공로로 여겨졌다. 아들의 순종으로 우리를 의인 삼으신 일로 아버지의 호의가 나타났다. 그의 순종으로 우리가 의인으로 인정되었다.
제 3권 성령, 우리 안에 오신 보혜사 하나님
제 15주제 성령: 성도와 그리스도의 연합의 띠(3.1.1-3.1.4)
성령의 우주적 역사는 창조와 섭리에 미친다. 성령의 일반은총적 역사는 일류 창조와 섭리와 관련된다. 성령의 특별은총적 역사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시는 구원의 은총과 관련된다. 성령은 그 구원 역사를 표상하는 각각의 이름에 따라 다양한 속성을 가진다. 양자의 영, 우리의 기업에 대한 보증과 인,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 물, 기름 혹은 기름 부음, 불, 샘, 주의 손 등으로 칭해진다.
제 16주제 믿음: 감화와 확신(3.2.1-3.2.43)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다. 구원의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시다. 믿음이란 교회를 맹목적으로 높이면서 그것의 권위와 판단에 무모하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믿음의 근거는 지식이다.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아는 생명의 지식이다. 그리스도가 의와 성결과 화평으로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으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 진정한 성도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견고한 감화로 흔들림 없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깨닫고 그분의 사랑과 관용을 확신하다. 믿음은 여호와를 온전히 바라며 그분의 말씀 가운데 요동치 않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선한 것들과 그분 자신께 동참한다.
제 17주제 중생으로서의 회개: 옛 사람의 죽음과 새 사람의 삶(3.3.1-3.5.10)
회개는 죽음과 삶의 두 요소가 있다. 자신과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과 의에 대해서는 사는 것이다. 참 회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사심에 연합함으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사는 회심과 다르지 않다. 회개는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회심이고, 하나님을 진지하게 두려워하는 데서 생긴다. 회개는 육에 대해서는 죽고 영에 대해서는 사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은 회개가 마음의 통회, 입의 고백, 행위의 보속으로 이루어진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들의 주장은 회개 자체를 선행의 의로 여기는 공로주의로부터 기인한다. 그러나 마음의 통회 자체가 회개의 은총을 받기 위한 공로가 되지 못하며, 죄를 제사장 앞에서 고백할 필요가 없고, 죄 사함에 이르는 회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분의 의를 전가 받아서 구원에 이르게 되는 생명의 능력이 있다.
제 18주제 그리스도인의 삶: 미래를 묵상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삶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의를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의 규범으로 우리 안에 수립되었다. 우리는 그 규범을 지키는 데 열심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거룩함이라는 끝으로 하나님께 묶여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거룩하시므로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신과 화목하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육체의 장막을 벗고 나면 우리가 하늘의 영광으로 빛날 것이다. 죽음은 벗어나고자 함이 아니요 완전한 것을 입고자 함이다. 오직 부활의 권세를 믿고 의지하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모든 것을 이기는 은혜를 체험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되 언젠가는 청산해야 할 것으로서 위탁하셨다.
제 19주제 이신칭의(以信稱義): 죄 사함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3.11.1-3.13.5)
성도의 구원에는 이중적인 은혜가 있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회복하게 되어 그분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는 은혜이고, 둘째로,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서 거룩하게 됨으로써 흠 없고 순결한 삶으로 나아가는 은혜이다. 칭의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이신칭의의 교리는 구원진리의 정수이다의 전가의 상태, 즉 성도가 전가 받은 의를 누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그 본질이 있다. 칭의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법정적으로 선포하심에 있다. 칭의는 인간의 법정이 아니라 하늘 심판대에서 옳다 함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나타내려 하신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주 안에 있다. 자신에 대한 자랑을 완전히 버릴 때에만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다.
제 20주제 성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계속적 중보로 거룩해짐(3.14.1-3.18.10)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값없이 우리를 부르셨듯이 그 부르심에 따라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는 것도 오직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우리는 모든 일을 다 행한 후에도 단지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우리가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다 행했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해야 할 것을 행한 것에 불과하다. 성도의 선행조차도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믿음과 선행은 굳게 결합되어 있지만 칭의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새 생명의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거룩함의 최고 열매는 자기 자신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로 가장 아름답게 맺힌다. 거듭난 사람 자체가 그러하듯 거듭난 사람의 행위도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제 21주제 그리스도인의 자유: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유(3.19.1-3.19.16)
그리스도의 삶의 교리는 칭의의 부록이라 불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교리에 절정에 이른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영적이다. 육적인 자유는 육체에 속한 것을 추구하므로 방종이나 영적인 자유는 영생의 순종에 이른다. 성도의 참된 자유는 수고하고 무거운 세상의 짐을 주님께 다 내려놓고 그분의 멍에를 메고 그분께 배우며, 그분의 짐을 지고, 그분을 좇는 삶을 사는데 있다. 양심은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사리를 분변하는 지각이다. 양심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숨은 속을 드러내는 일천 명의 증인들과 같다. 양심이 증인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송사하거나 변명하게 되므로 일종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간자이다.
제 22주제 기도: 믿음의 주요한 훈련
우리 자신에게 없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풍성하게 넘치며 그것이 샘물과 같이 우리에게 부어진다. 기도는 우리에게 유익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기도를 통해 성도는 하나님께 구하여 얻는 법을 깨닫고 날마다 그분을 더욱 의뢰하게 한다. 우리는 자신의 무능함을 절감하고 진지하나 강령한 간구를 드려야 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고 자신의 가치는 일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기도하는 자는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부성적 사랑에 소망을 두고 그분을 굳게 믿어야 한다.
제 23주제 예정: 하나님이 기뻐하신 뜻에 따른 영원한 작정
예정의 교리를 알기 전에는 영원한 선택이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시는 자비임을 알지 못한다. 이 가르침으로 인하여 값없는 선택에 따라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예정의 교리를 통해 구원의 비밀을 맛본 사람만이 진정한 겸손에 이르게 된다. 선택은 우리의 공로 때문에 차르는 값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공로를 미리 아시고 자신의 은혜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예지하신 사람들을 자녀로 선택했다는 예지예정론은 성경이 가르치는 건전한 교리를 사악하게 왜곡한다. 예정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절대적 은혜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미리 자질을 헤아리고 그 예지에 따라서 작정하셨다는 주장은 자체로 모순된다.
제 24주제 최후의 부활: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음(3.25.1-3.25.12)
육신의 감옥에 갇힌 우리가 지상의 삶을 사는 동안에도 오히려 담대한 것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부활의 권능으로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키었으므로 우리는 잠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고 믿으며 지금의 몸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쓴다. 믿음은 소망의 실상이며 소망과 함께 역사한다. 주님은 자신의 몸을 성전에 비유하면서 부활을 말씀하심으로 몸의 부활이 있을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셨다. 세례와 성찬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의 미래부활의 표가 된다. 이 몸은 죽을 것이나 다시 살리심을 받는다. 그리하여 주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된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는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제 4권 교회,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자라가는 한 몸
제 25주제 참 교회: 건전한 교리의 일치와 형제적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교회
교회는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연합체로서 유일하고, 보편적이며, 거룩하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지 않으면 한 몸의 지체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그분의 의를 전가 받는 성도만이 미래의 기업을 분깃으로 받는다. 교회가 보편적, 우주적이라고 불리는 것은 한 성령을 받아서 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하나 된 성도들이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함께 자라가기 때문이다. 하님은 교회에 복음의 보물을 맡기셔서 말씀을 통해 성도들이 참 경건에 이르는 외적인 도움을 받도록 하셨다. 그들은 유아기와 아동기를 지나는 동안 교회의 도움과 섬김, 보호와 지도를 받아 성인이 되고 궁극적으로 믿음의 목표에 이르게 된다.
제 26주제 교회의 직분: 머리이신 주님께로 자라감(4.3.1-4.7.30)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으로 교회를 다스리실 때 자신의 가시적 현존은 드러내지 아니하시고 사람들을 도구로 사용하신다. 사람에게 맞추어 자신의 음성을 들려주기 위해서 이고, 겸손에 이르는 훈련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며, 교회 지체들 간의 사랑이 자라게 하심이다. 교회의 직분은 성도가 누리는 최고의 영예이다. 하나님을 가르치는 자들을 세우셔서 자신의 교리를 해석하고 선포하게 하신다. 복음의 사역은 그것이 성령과 의와 영생의 경륜을 이루기 때문에 가장 뛰어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제 27주제 교회의 권세: 교리권, 입법권, 사법권(권징)(4.8.1-4.13.21)
교리권은 교리를 전하는 권한과 그것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분 자신으로부터 배우지 않은 것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교회는 무어하지 않다. 지상의 성도가 그러하듯이 교회도 아직 완전하지 않다. 성경은 교회의 인정에 따라서 비로소 권위를 갖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성경은 교회의 해석에 따라서 비로소 그 내용이 확정되는 것도 아니다. 성경의 진리는 사람의 모임이나 의견에 따라서 결정되지 않는다. 모든 판단은 오직 성경 자체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아무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할 수 없다. 교회의 재판권은 세속적 사법이 아니라 영적인 제도로서 도덕적 권징을 그 요체로 한다. 교회의 권징은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주신 열쇠의 권한에 부합한다. 교회의 사법권은 세상의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검을 사용하여 성도를 돌이키는데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성령의 능력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제 28주제 성례, 세례(4.14.1-4.16.32)
성례는 복음 선포와 함께 우리의 믿음을 돕는 은혜의 방편이다. 성례는 이중적 의의가 있다. 첫째, 성례로써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신 인자하심에 대한 약속들을 우리의 양심에 인 치신다. 그리하여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지켜주신다. 둘째, 성례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 자신의 경건을 확증한다. 유아세례는 세례의 부록으로 교리의 순수성과 교회의 평화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신약의 유아세례는 할례라는 구약의 신비한 예표에 의해서 그 성례적 의의와 가치가 이미 두드러졌다. 할례와 세례는 그 실체나 진리에 있어서 동일하다. 할례와 세례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동일한 언약의 약속을 확증한다. 유아세례는 사도시대 때부터 시작되었다.
제 29주제 성찬, 로마 가톨릭 미사와 거짓 성례들(4.17.1-4.19.37)
세례의 표징인 물에는 씻음이, 성찬의 표징인 떡과 잔에는 그리스도의 무름이 표상된다. 표상의 실체는 주께서 십자가상에서 찢기신 살과 흘리신 물과 피였다.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단지 외면적, 형상적 차원의 것이 아니며 내면적, 영적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성도 안에 사시고 성도는 그분 안에 산다. 성찬은 연합을 통한 교제와 교통을 확증한다. 로마 가톨릭은 미사를 죄를 보속하기 위한 공로를 쌓는 희생제사로 여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공로를 불완전한 것으로 여기므로 그 죽음을 기념하는 성찬의 의의가 필히 곡해되었다. 견진성사는 세례 받은 성도들이 거룩한 영적 싸움 능력을 주는 성례로 여겨진다. 고해성사는 사제의 중보를 통한 죄 사함을 외형적으로 선포하는 표로 여겨진다. 종부성사는 임종을 맞이한 성도에게 기름을 부음으로써 질병의 치유와 영혼 구원을 구하는 예식이다. 신품성사는 일곱 가지 직분에 나아가는 서품 예식이다. 혼인성사는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는 연합의 신비를 기념하는 예식이다. 이러한 거짓 성례들은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무화시키고 단지 인간의 공로만 부각시킬 뿐이다. 성례는 보이지 않는 은혜의 보이는 표이므로 말씀으로 제정되지 않는 예식은 오직 헛되고 참람할 뿐이다.
제 30주제 국가: 하나님의 일반은총적 다스림(4.20.1-32)
국가 통치는 우리가 사람들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에 대한 외적인 예배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건전한 교리와 교회의 지위를 수호하고, 우리의 삶을 사회의 연합체에 적응시키며, 우리의 도덕을 시민 정의에 부합하도록 형성시키고, 서로 간에 화해하게 하며, 공공의 안온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국민에게는 공적인 직분 혹은 직무가 있다. 국민은 위정자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집권자는 하나님의 일꾼이자 사자이다. 시민은 국가의 공직자를 공경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위정자를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시행하는 국정에 대해 참여하고 협조할 의무가 있다. 국가의 시민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음성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한다. 경건으로부터 멀어지느니 차라리 고통을 받은 편이 낫다.
내가 쓰는 기독론
30주제로 풀어쓴 기독교 강요를 정리하면서 탁월한 주제설정과 분류와 종합을 통해 방대한 기독교 강요를 탁월하게 정리하여 앞으로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설교의 기준을 세워주는 책임을 느꼈다. 본 책에 배어있는 기독론의 관점에서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기독론은 예수님을 알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에 영원 전부터 계셨고, 말씀으로, 육신으로, 영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기독론은 성령론의 기본을 이룬다. 기독론은 계시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구원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보여주는 것이다.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성취를 다루는 것이고 구원론은 예수를 믿는 것임으로 그 구속사적 성취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론을 공부하게 되면 기독론을 바로 이해하게 된다. 교회론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인 모임을 다룬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행해지는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시작의 표이고, 성찬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계속의 표인 것이다. 나아가 종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한다.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것이 종말을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제 2위의 하나님이시다. 한 인격 양성 즉, 인성과 신성의 위격적 연합으로 계신다. 만세 전 즉, 천지가 창조되기 전에, 세상이 타락하기 전에 예수께서 오실 것이 삼위 하나님간의 약속이 되어 있었다. 이를 구원협약이라 한다. 구속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구속 방식은 십자가의 대속이며 구속 백성은 선택과 유기를 통하여 이루신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필요성(대속의 원리)은 첫째, 인간의 죄의 값을 대속하기 위해 인간으로 오셔야 했다. 둘째, 모태의 죄부터 가져가시려고 모태에서부터 오셨다. 셋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인간의 가장 큰 고통가운데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적 연합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성육신으로 예수님의 인성은 신성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 형성이 연합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인 것이다. 예수님은 인성에 따라 걸어 다니시고 사셨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예수님의 신성에 근거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셋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이시다. 예수님은 중계자가 아니라 중보자이시다. 중보자는 예수님 외에는 없다. 새 언약이란, 제 2위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위격적 연합을 통해 신성과 인성을 입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만세 전에 작정 된 것이 역사상 우리에게 성취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 역사적 성취는 첫째, 구속사적 성취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속사적으로 단번에 다 이루시고, 그리스도의 계속적 중보자가 되시며, 의와 공로를 다 이루신 단일한 사건을 말한다. 둘째, 구원론적 적용으로 의의 전가(내 것이 아닌데 내 것 삼아 주심)를 통하여 지금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적용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비하와 승귀를 이루셨다. 비하에는 허기와 비기가 있는데 허기는 자기를 비우심이고, 비기는 자기를 낮추심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비하의 시작이다. 또한 주님은 고난의 생을 통하여 의의를 성취하셨다. 우리는 인성만 가지고는 비하라 하지 않는다. 참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인성으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이것을 신성의 “참으심과 인성의 당하심”이라 한다. 예수님이 걸어 다니는 것조차 비하이다. 나심과 사심과 고난당하심과 죽으심과 장사되심이 다 비하다. 그리스도의 삶이 전부 다 비하다. 한 마디로 정의하면 “참 하나님이시자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성에 따라 고난을 받으시고, 신성에 따라 기적을 행하신다.”
그리스도의 승귀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재위와 재림을 말한다. 승귀 또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계속적인 중보를 재위(하나님 우편에)서 하신다. 비하(성육신, 수난, 죽으심, 장사되심)가 선행되어야 승귀가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의)의 범위를 말하자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모든 법을 지키심으로 거룩하게 되심을 말한다. 주님의 공로의 범위는 완전하고 확실하며 충분하다. 우리의 칭의, 성화, 영화의 모든 범위를 말한다. 이것이 견인이다.
소죄란 satisfaction(배상, 보상, 속상)으로 갚는다는 의미이다. 무름이란 단어가 그 의미를 잘 드러낸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값을 치루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값을 치르기 위해 오셨다. 의를 전가 받으시고, 의를 다 이루셨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는 예수님의 의의 전가 가치와 그가 우리의 값을 치루셨고, 예수님은 우리의 모범임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다 이루신 것이 우리에게 전가가 되어 구원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삼중직은 첫째, 선지자직으로, 선지자의 역할을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이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셨다. 둘째, 제사장직으로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하나님께 아뢰는 역할을 한다. 셋째, 왕직으로 그리스도가 모든 피조물의 통치자임을 이야기 한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근거하고 있으며, 영적인 왕국이다. 이 왕국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 땅에 먼저 시작되어 있고, 지금도 진행단계에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된다.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분은 분리되지 않는다.
기독론을 정리하면서 나의 부족함과 게으름을 반성한다. 주님의 일꾼으로 기독론을 바로 정립하여 나의 삶과 전도와 설교와 목회 사역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흠 없이 전파되어지기를 소망한다. 더욱 정진하여 바른 기독론을 정립해 나아갈 것이다.
2013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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