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밥그릇
해마다 맞는 스승의 날을 훌쩍 보내고 다시금 강습회에서 만난 선생님들의 눈망울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더욱 절실한 것은 이번 8월 4일-6일에 하는 선교회 여름캠프에서 청소년들의 마음에 도전과 감동을 주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 잡아보려고 합니다. 참 재미있는 그렇지만 가슴 찡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37년 전의 담임 선생님을 모신 저녁 회식 자리는 이 날의 주빈인 노진 선생님의 옛 기억에 대한 추억으로 처음엔 분위기가 그저 유쾌하기만 했다.
노진 선생님은 50년대 초중반 전란의 혼란과 궁핍 속에 살던 지방 도시 중학교의 1학년 3반 담임 선생님이었다. 어렵사리 공부를 하던 중학교 초년 시절이었다.
그 남녘 도시의 노진 선생님은 새 교풍과 근엄한 표정의 선생님들 앞에 어딘지 기가 조금씩 움츠러든 반 아이들, 특히 이곳 저곳 벽지 시골에서 올라와 낯선 도시 생활을 갓 시작한 심약한 지방 출신 아이들을 또래 친구처럼 즐겁게 잘 보살펴 주신 분이었다. 한 예로, 방과 후 남아서 교실을 정리해야 하는 청소 당번을 몹시 싫어한 우리들에게 선생님은 그날 그날 종례 시간에 갑작스런 벌칙을 마련하여 거기에 해당하는 아이들로 하여금 그 날의 청소 인원을 충당하는 식이었다.
“오늘 아침 운동장 조회 때 줄 똑바로 서지 않았다가 나한테 호명당한 일곱 명 일어서 봐. 너희가 오늘 청소 당번이다.”
“오늘 체육 시간에 체육복 안 입고 나간 사람 몇 명 있었다는데, 누구 누군가? 너희들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 녀석인 줄 알고 있겠지?”
항상 그런 식이었다. 어떤 때에는 갑자기 책가방 속을 검사하여 놀이용 구슬을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을 골라 내시기도 하였고, 어떤 땐 저고리 단추나 이름표가 조금 비뚤어진 아이들을 억울하게 골탕먹이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선생님이 종례 들어오시는 걸 모르고 미처 자리에 앉지 못한 아이들의 이름이 줄줄이 불리게 될 때도 있었고, 그게 그 날의 청소 당번이 될 줄 알고 미리 선수쳐 “너희들 오늘 청소 당번!”하고 말했다가 오히려 ‘교편을 모독한 죄’나 ‘남의 불행을 악용하려는 죄’로 먼저 걸린 아이들을 대신해 엉뚱한 고역을 떠맡게 되는 수도 있었다. 또 책가방 속에 만화책을 숨겼다가 들통이 난 아이는 그 허물로 공부를 소홀히 한 죄, 중학생의 품위를 떨어뜨린 죄, 선생님의 주의를 어긴 죄, 그리고 선생님을 속이려 한 죄가 적용되었다. 게다가 자신의 죄목을 헤아려 보라고 했을 때 ‘선생님의 비상한 눈치와 비행 탐지력을 알아보지 못한 죄’를 빠뜨린 허물로 ‘자신이 반성해야 할 죄의 가짓수도 다 알지 못한 죄’까지 더하여 일 주일동안 연속 벌 청소를 선고받은 아이의 경우까지 있었다.
그러니 반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벌칙으로 그 날의 청소 당번이 정해지게 될지 몰라 선생님 앞에선 늘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긴장이나 원망을 부를 리는 없었다. 그렇게 떠맡게 된 청소 당번이 그다지 억울하거나 짜증스러울 수도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즐거운 유희나 게임 같은 것이었고, 우리들의 첫 학교생활도 그만큼 안정을 얻어 갔다.
그런데 어느 날 오후, 그 노진 선생님이 그간 정년 퇴직을 하고 지내시다 이번에 며칠 간 서울에 머무르고 계시다는 옛 반 친구의 전화 연락이 왔다. 전에도 더러 당신을 찾아 뵌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이번 기회에 옛 반 친구들이 함께 선생님을 모셔 보자는 의견에 따라, 서울에 머무르고 있는 제자 7, 8명이 모처럼 선생님과 함께 하게 된 자리가 이 날의 회식 자리였다. 그러니까 그 시절 그런 저런 반 관리나 아이들 지도법을 무슨 싱거운 기벽쯤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어쨌거나 그 같은 선생님에 대한 추억들로 이 날의 회식 자리는 처음엔 분위기가 썩 부드럽고 즐거운 편이었다. 그런 류의 모임 자리가 대개는 그런 식이듯, 어딘지 좀 싱겁고 의례적이기까지 한 느낌마저 없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술잔이 몇 번씩 비워지고 식사가 나왔을 때부터는 그런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그 때 상을 보아 주고 나가는 심부름꾼 아이에게 빈 그릇 하나를 더 부탁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밥을 미리 반쯤이나 덜어 내고 식사를 하셨는데, 그것을 보고 한 친구가 무심히 아는 체를 하고 나선 것이 그 실마리가 되었다.
“근력이 썩 좋아 보이지 못한 편이신데, 진지라도 좀 많이 드시지 않으시구요.”
“전에도 선생님께선 늘 수저를 드시기 전에 먼저 진지를 덜어 내시던데, 혹시 소식 요법이라도 계속하고 계신 거 아니신지요?”
먼저 친구에 이어 그동안 몇 차례 선생님을 찾아 뵌 적이 있었다던 다른 한 친구까지 뒷말을 거들고 나섰다. 선생님은 처음엔 별로 대수롭잖은 일처럼 가벼운 웃음기 속에 대답을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셨다.
“아니 이 나이게 무슨 건강 요법은……. 어쩌다 몸에 익숙해진 내 젊었던 때부터의 버릇이랄까…….”
그런데 그 다음에 선생님의 표정이나 말씀이 좀 심상치가 않아 보였다.
“문상훈 군, 내 자네한텐 아직도 할 말이 없네. 그래, 자넨 그 동안 큰 어려움 없이 잘 지내 왔던가?”
제자들의 물음에 왠지 대답을 흐리고 계신 듯싶던 선생님의 눈길이 무심결에 문상훈이라는 친구에게로 흐르더니, 무언지 마음 속에 혼자 묻어 온 생각이 있는 듯 그에게 조용히 물으셨다. 선생님의 말투나 표정 속엔 분명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어떤 그윽하면서도 새삼스런 감회의 빛이 어리고 있었다. 선생님의 물음 앞에 문상훈도 이상하게 얼굴색이 붉어지며 다른 때의 그답지 않게 목소리가 숙연해지고 있었다.
“예, 선생님. 저야말로 그 동안 선생님의 은덕으로 자신을 이만큼이나마 이끌어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선생님께서 그 때 하신 말씀을 오늘까지 이렇게 잊지 않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얼핏 들으면 무슨 선문답 같은 주고받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내 그 곡절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그 시절의 또 다른 기억 한 가지를 떠올리고들 있었다. 다름 아니라, 그 시절 선생님은 우리들이 싸 온 점심 도시락 단속에 유별나게 더 열을 올리고 계셨다. 거의 종례 시간마다 도시락통을 검사하여 점심을 거른 아이들에게 그 벌로 청소를 떠맡겨 버리곤 하셨다. 선생님은 장난기를 띠시며 벌 청소감을 찾아 내셨지만, 그 어려운 시절 자취방을 얻어 지내는 시골 출신 아이들이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여간 힘들고 거북한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의 건강을 보살펴 주시려는 선생님의 뜻은 충분히 이해를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점심을 거르고 지내야 하는 몇몇 아이들에겐, 그 서글픈 허기 속에 벌 청소까지 안겨 주는 선생님의 처사가 더없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그런데 선생님의 잦은 도시락통 검사 행사가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게 되고 말았다. 어느 날 그 행사 중에 일어난 한 무참스런 사건을 계기로 해서였다.
그 날도 선생님은 종례 시간에 예의 벌 청소꾼을 모으기 위해 점심을 거른 아이들을 색출해 내고 계시던 중이었다.
“선생님, 문상훈은 도시락을 싸 오지 않았으면서도 일어서지 않고 있어요.”
종례 시간의 들뜬 분위기에다 벌 청소를 할 아이들의 수가 모자라는 것을 보고 상훈의 바로 뒤쪽 자리에 앉은 녀석이 제 앞 친구를 장난삼아 일러 바치고 나섰다. 그런 고자질에 상훈은 제 책상 위에 꺼내 놓은 도시락통을 증거로 얼굴을 붉혀 가며 마구 화를 내었다. 그러자 기왕 말을 꺼낸 뒷자리의 고발자도 지지 않고 가차없는 증언을 계속했다.
“도시락은 늘 가지고 다녔지만, 난 네가 점심 시간에 도시락을 꺼내 먹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넌 종례 시간에만 도시락을 내놓고 벌 청소를 빠지더라.”
드디어 선생님이 미심쩍은 얼굴로 사실을 확인하러 상훈에게로 다가가셨다. 그 때로선 매우 당연한 절차였다. 그리고 도시락통 뚜껑을 열어 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상훈이 우물쭈물 도시락통을 조금 열어 보였다. 그 도시락통 속 사정은 선생님만이 아신 채, 두 녀석 간의 다툼은 그것으로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상훈의 도시락통 속을 들여다보시고 난 선생님은 그 날의 청소 당번도 다 정해 주지 않은 채 그대로 교실을 나가 버린 것이었다.
이후로 선생님이 그 일을 다시 입에 담으신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가혹한 도시락 검사와 점심을 거른 아이들의 벌 청소제가 사라진 것은 바로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였다.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은 것은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 두 녀석 간의 승패나 선생님만이 보신 도시락통 속의 비밀은 모를 사람이 없었다. 다만 우리는 그 후 선생님이 상훈을 따로 불러 은밀히 약속하신 일이 있었던 것을 몰랐을 뿐이다.
“이제는 그 때 일을 털어 놓아도 큰 허물이 안 될 것 같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며칠 뒤엔가 선생님께선 조용히 교무실로 저를 불러 말씀해 주셨지요.”
한동안 아릿한 회상에 젖어 있던 선생님과 반 친구들 앞에 상훈은 이제 모두가 같은 생각이 아니겠냐는 듯, 침묵을 깨고 그 때의 일을 회상하며 말했다.
“‘이제부터 나는 매끼 내 밥그릇의 절반을 덜어 놓고 먹기로 했다. 비록 너나 네 어려운 이웃들에게 그것을 직접 나눌 수는 없더라도, 누가 너를 위해 늘 자기 몫의 절반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 밥그릇의 절반만큼한 마음이 언제나 너의 곁에 함께하고 있음을 알고 앞으로의 어려움을 잘 이겨 나가도록 하거라…….’ 선생님께선 그 몇 마디 말씀과 함께 제 등을 한 번 툭 건드려 주시는 걸로 다시 저를 돌려보내 주셨지요. 그리고 다신 그 일을 아는 척 않으셨고요. 하지만 전 그 후로 언제 어디서나 선생님의 절반 몫의 그 양식을 제 곁에 가까이 느끼며 지내 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사랑과 은덕은 저뿐만 아니라 여기 우리들 모두가 그간 알게 모르게 함께 누려왔을 것으로 믿어 왔고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그 때의 일을 잊지 않으시고 지금까지도 늘 그렇게 지내 오고 계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바로 선생님의 그 덜어 놓기 ‘버릇’의 내력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건 어쩌면 ‘소식 건강 요법’이나 어쩌다 몸에 익힌 당신의 ‘버릇’이라기보다는 너무도 벅차고 뜨겁고 자애로운 은애의 사연이었다. 유쾌하기만 하던 회식의 분위기에 새삼스레 숙연한 감동이 깃들였던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것이 오히려 더 불편하고 쑥스러우신 듯, 어쩡쩡한 어조로 그 이야기의 뒤끝을 맺고 계셨다.
“그야 내딴엔 제법 생각이 없었던 일이 아니었지만, 아직 너무 세상사를 몰랐었다 할까…… 그런 일을 당하고 보니 내 자신이 너무 설익고 모자라 보이기만 하더구먼. 교육자랍시고 제 설익은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기보다, 우선 내 지닌 몫부터 절반만큼씩 줄여 나눠 가져 보자는 생각에서였을 뿐인데, 그것을 그렇게 크게 받아들여 주었다니 내가 오히려 고맙고 민망스러워지네그려. 하긴 나도 그 덕에 좋은 건강법을 익힌 셈이고, 요즘같이 교육계가 어려움을 빚고 있는 마당에선 제 몫의 밥그릇을 절반으로 줄여 살기도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같이 보이네만, 그렇다고 그게 어디 이런 식의 칭찬까지 받아야 할 일인가. 허허.”
지은이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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