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
때로는 찬양 부흥사로, 예배 인도자로, 찬송 전도자로 15년 동안 사역을 감당해 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있으나 찬양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믿는 자들의 본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분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 그들이 진정한 찬양의 의미를 알고 마음껏 찬양할 수 있게 도움을 주도록 사용하셨다. 주께서 찬양 받으시길 원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올바르게 찬양하지 않는 이들에게 저를 보내어 그들을 부수고, 녹이고, 다시 빚어 마땅히 받으실 찬양을 받으시기까지의 끊임없는 영적 전쟁으로 이끄셨다. 때로는 실패하여 낙망하기도 하고 좌절의 고통 속에 울부짖기도 하며 끝내 변화되는 놀라는 경험들을 체험하며 온 교회가 온전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찬양하게 되는 감동의 바로 그 현장 한 복판에서 저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제 지방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께서 더 큰 사역에 대한 비전을 주심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 목표와 새 사역을 이 곳 양지에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을 영접했을 때 늘 생각하는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았다는 성도들의 감격 없는 생활, 기쁨이 없는 표정, 너무 형식적인 예배들 때문이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 같지만 제가 주님을 구주로 모신 1980년대 후반의 대부분의 교회들은 몇몇 교회를 제외하곤 장례식을 하는 것 같은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대부분이었다. 하나님께서 늘 그러하시듯 이러한 의문점을 발견한 나를 훈련하시어 찬양사역자로 헌신하게 하신 듯하다.
글 제목에 "찬송은 믿음의 꽃"이라고 적었다. 그렇다. 찬송은 비밀이고 신비이다. 발견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결단코 온전히 드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3~40년을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신실한분들 조차 찬송을 몰라서 거룩과 경건만 외치는 교인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찬송의 비밀은 신비로운 것이다.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놀라운 것이다. 찬양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서는 할 수도 없는 정말 놀라운 비밀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찬양을 이야기해 보자.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찌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찌어다(대상16:23-24)”
이 말씀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담긴 귀한 말씀이다. 우리의 삶은 삶 자체가 찬양과 경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을까?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혹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다. 또한 잠잠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할 때, 우리는 그분의 임재 가운데서 주님을 높이는 찬양을 할 수 있다. 찬양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선포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많은 찬양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찬양이 있다. 바로 전도입니다. 전도를 할 때 우리는 무엇을 선포하는가?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분이신지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고 구원의 큰 은혜를 주신 사랑을 선포한다.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희생을 통해 영 죽을 우리 죄인들이 죄 사함의 은택을 얻게 된 것을 선포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지금도 한결 같이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넘치고 있음을 선포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든 찬양 곡들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시편 96편의 말씀처럼 그 구원을 날마다 선포하며 주님의 기이한 행적을 열방의 만민 앞에서 찬송할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까지 두루 다니며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곳곳에 선포하기 원하신다.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몸 된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합2:14) 그러기 위해서는 외치는 자의 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들리도록 크고 분명해야 하며, 좋은 소식을 전하는 보내심을 받은 자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전해야 하는 것이다(롬10:15).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는 영적 전쟁을 해야 한다. 이 죄악 된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사단은 결코 우리에게 순순히 지배권을 넘겨주질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단과 악의 무리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의 찬양을 방해한다. 그들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다가 허접을 보이면 집어 삼키려 한다(벧전 5:8). 그러므로 찬양 사역은 영적 싸움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의 싸움의 결과는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승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찬송하게 된다. 우리가 기쁨과 감사함으로 구원의 소리를 외칠 때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시118:15-16).” 우리가 우리 입술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를 외칠 때 하나님께서는 큰 권능을 베풀어 주신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에서 이 “증거하다”는 말의 원어 의미를 보면 ‘자백하다, 시인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우리의 입술은 예수님을 증거 하는 입술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예수 증거의 영’이시다. 전도는 다름 아닌 예수를 증거 하는 우리의 신앙 고백인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 위대한 이름을 만민들에게 선포하며 구원을 주신 놀라운 사랑을 증거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과 경배다.
여기에는 능숙한 악기 연주, 완벽한 목소리, 해박한 신학적 지식이 없어도 된다. 단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진실한 사랑’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광을 홀로 받기에 합당하시고, 구원의 귀한 은혜를 받은 우리는 쉼 없이 이 놀라운 사랑을 증거하고 경배할 의무가 있다. 성경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고 선포한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찬양의 의미와 능력과 열매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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