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백을 만드십시오
오늘날 현대인들은 너무나 틀에 꽉 찬 삶을 살고 있다.
시간에 짜인 계획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주체가 내가 아니라 시간에 질질 끌려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빈틈없는 시간 속에 짜인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시간을 아무렇게 사용하여 늘어지고 게을러 나태한 생활을 본인도 좋아하지 않는다.
숨통 막히는 생활보다는 좀 여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동양인의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서구화된 문명에 적응하다 보니 여백이 없이 살고 있다.
서양화와 동양화를 비교해 보라.
서양화는 여백이 전혀 없는 화폭에 가득 채워 그리는 반면에 동양화는 여백이 항상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여백은 보는 이의 상상의 나래로 그려내라는 의도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여백이 있는 세계다.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우리는 예전에 살던 곳에서 떠나 마음의 여백을 만들 필요가 있다.
즉 우리의 마음 안에 창조적인 소망을 채워 넣기 위해 체념할 것은 체념함으로서 마음 안에 빈 여백이 있어야 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여백을 항상 가지고 읽어야 한다.
기도를 하더라도 여백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그 여백에 하나님의 응답으로 채워져야 한다.
찬송을 하더라도 여백을 갖고 찬송해야 한다.
그 여백에 천사들이 화답하고 하나님이 기쁨이 서려 있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의 소유보다 더 소유를 갖고 싶어 한다.
그런 결단력이 있어야 발전과 성공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안주하려는 태도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원치 않으신다.
또 하나의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떠나는 것이 믿음의 기초다.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그려야 할 그림이 덜 그려졌다고 그것을 다 그리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작품을 망치게 된다.
붓을 놓아라.
하던 작업도 그만 두고 다시 그려도 괜찮다.
잘못 그렸다고 실패로 생각하지 마라.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또 하나의 성공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다.
매독 약을 연구하신 박사님께서 606번 만에 연구개발 성공하였다.
기자들이 "왜 약 이름에다 606 번호를 붙였느냐?"고 질문하였을 때
"606번 만에 성공하였기 때문에 붙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만약 605번에서 포기했다면 아마 이 약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 많은 매독환자들을 살려낼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아이가 자라면 어릴 때 입던 옷이 맞지 않게 되는 것처럼
과거의 생각과 비전이 맞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
즉 계속되는 성장에 발을 맞추기 위해서는 옛 것을 거침없이 과감하게 잘라버려야 한다.
물론 우리의 눈에 보이는 소유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고방식까지도 적용해야 한다.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야 더 나은 사고와 소유물을 우리의 생활 속에 채워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다.
마음의 여백에 엉뚱한 것이 채워지게 되면 졸부가 되는 것이다.
부자는 부자다워야 한다.
마음의 여백에 합당한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재물과 소유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항상 불안하고 허전하며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 하게 된다.
마음의 여백은 정신 수양이나 도를 닦는 차원이 아니다.
요즈음 기독교에서 붐이 일어나 있는 영성 훈련도 결코 아니다.
부의 개념을 올바르게 알고 마음의 여백에 하나님의 사상을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