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교의신학

신학의 역사

예림의집 2011. 12. 22. 06:04

신학의 역사

구 카톨릭 시대

3세기 초 오리겐의 제일 원리들에 관하여는 교회 역사상 최초의 신학적 문서라고 생각된다.

그가 다룬 주제들은 1권에서 하나님, 말씀, 성령, 및 천사, 2권에서 세계와 사람, 3권에서 죄와 구속, 4권에서 성경 및 전체 요약 등이다.

그러나 오리겐은 대 학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에는 영원 전의 창조, 인간 영혼의 선재(先在) 및 선재 상태에서의 범죄, 사탄의 회복을 포함한 보편적 구원 등 많은 이단적 요소들이 있었다.

또한 그의 풍유적(allegorical) 성경 해석 방식은 후대에 큰 해를 끼쳤다.

4세기의 어거스틴은 사상적으로 대체로 건전하였다.

비록 그가 교회에 관한 감독주의적 견해를 가졌고 성례를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보는 로마 천주교적 사상의 씨앗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의 죄악성과 은혜의 구원에 관한 그의 사상은 매우 성경적이었다.

그러므로 신학에서 어거스틴주의는 원죄, 인간의 전적 부패성, 하나님의 절대적, 이중적 예정,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 단독 사역을 믿는 입장을 가리킨다.

그는 라우렌티움을 위한 안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관하여(Enchiridion ad Laurentium: De Fide, Spe, et Caritate)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믿음의 제목 아래 믿음의 주요 조항들을 논했고, 소망의 제목 아래 기도를, 사랑의 제목 아래 윤리 문제들을 각각 논하였다.

이 외에도, 어거스틴은 삼위일체에 관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등 교리적인 저술들을 남겼다.

8세기 중엽의 다메섹의 요한은 고대 동방교회의 최대의 신학자이며, 그의 정통신앙정해는 동방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리책이었다.

이 책은 그의 지식의 원천이라는 책의 제3부인데, 그 주요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1권--하나님과 삼위일체;

2권--창조, 사람의 본질;

3권--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음부에 내려가심;

4권--그리스도의 부활, 다스리심, 믿음, 세례, 성상 숭배. 그의 책은 고대 동방 교회의 특징을 반영하는데, 사색적이며, 신학적으론 반(半)펠라기우스주의 혹은 신인협력설이며, 성례를 중시하는 입장이다.


중세 스콜라 신학 시대

11세기 말의 안셈은 이태리 출생으로 영국 캔터베리의 대주교이었으며 '스콜라 신학의 시조' 또는 '제2의 어거스틴'이라고 불리웠다.

그는 경건과 지식을 겸비한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의 독백과 대화는 하나님의 존재와 본질에 관해 논한 책이다.

이 외에도, 그는 삼위일체와 성육신의 교리를 다룬 삼위일체의 믿음과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라는 책과, 예정론을 다룬 조화에 관하여, 그리고 속죄론을 다룬 하나님은 왜 사람이 되셨나? 등의 저서를 남겼다.

12세기 중엽의 피터 롬바드는 이태리 출생으로 파리의 대주교를 지낸 자로서 서방 교회의 최초의 대 교의학자이었다.

그의 선언서(Sententiarum Libri IV)라는 책은 스콜라 시대의 최초의 주요한 교의학서로서 중세 시대 여러 세기 동안 신학 교본으로 사용되었다.

그의 책의 주제들은 1권--하나님(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우주론적 증명, 삼위일체 등); 2권--창조 세계, 천사; 3권--기독론, 구속; 4권--성례(최초로 일곱 성례로 분류함), 종말 등이다.

13세기의 알렉산더의 신학대전은 롬바드의 선언서에 대한 주석으로서 많이 읽혀졌다.

13세기 후반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태리의 신학자로서 중세 스콜라 신학의 최대의 인물이며, 천주교회의 대 권위자이다.

그의 신학은 천주교의 표준적 신학이었다.

그의 신학대전(Summa Totius Theologiae)은 미완성 작품이었고, 그것의 성례와 종말에 관한 부분은 다른 곳의 그의 글들 중에서 발췌하여 추가한 것이다.

그 책의 주요 주제들은

1권--하나님과 그의 사역들;

2권--사람, 윤리학;

3권--그리스도, 은혜의 수단 등이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그의 신학의 형식으로 삼았고, 어거스틴주의를 그의 신학의 기본적 내용으로 삼았으나 중요한 많은 점들에서 그것을 수정하였다.

종교개혁 및 신조 작성 시대

개혁파

16세기 중엽의 죤 칼빈은 마틴 루터와 마틴 부처의 영향 아래 어거스틴주의를 부흥시켰다.

사도 바울의 은혜의 복음을 핵심으로 하는 성경적 정통 신학은 고대에 어거스틴을 거쳐 칼빈에게서 밝히 정리되었다.

그의 기독교 강요(綱要)(Insti- tutio Christianae Religionis)는 개혁교회의 '대전'(쑤마)라고 불리웠다.

그의 책에는 특히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사상이 강하게 흐르고 있고 교리와 윤리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의 책의 주요 주제는

1권--하나님;

2권--그리스도;

3권--성령과 구원;

4권--교회와 성례 등이다.

칼빈은 또 많은 성경 주석들을 남겼다.

라이덴 대학의 네 명의 교수들이 쓴 순수신학개요라는 책이 개혁 교회의 세계에서 많이 읽혀졌다.

17세기 후반의 이태리 출신 스위스 신학자 프란시스 투레틴의 신학은 권위 있는 정통 개혁파 신학이며 그 후 미국의 프린스톤 신학에서 계승되었다.

그의 논변신학강요(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iae)는 프린스톤 신학교의 중요한 신학 참고서가 되었다.

칼빈의 개혁파 정통 신학의 흐름은 투레틴과 같은 인물을 통해 이어져 내려왔다.

17세기 후반의 코체유스는 전통적 개혁파 신학의 형식과 내용으로부터 이탈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맺으신 언약들을 중심으로 진리를 정리하려고 하였다.

그 당시 프랑스의 소우물 신학교의 아미랄더스는 가설적(假說的) 만인구원설을 주장하였다.

개혁교회는 그의 견해를 이단으로 정죄하지는 않았으나 경계할 오류라고 판단하였다.

그의 견해를 아미랄더스주의 혹은 소우물 학파라고 부른다.

이 외에도, 화란에서는 기스베르트 보에티우스,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는 청교도적 대 신학자 죤 오웬과 리차드 백스터 등이 있었다.

죤 오웬은 가장 엄격하였으나 '신학자들의 신학자'로 알려진 자이었고, 리차드 백스터는 가장 자유로웠다. 그러나 그들은 다 경건하고 정통적인 신학자들이었다.

이 시기에 작성된 주요한 개혁파 신조들로는 스위스의 제1 스위스 신앙고백(1536년)과 제2 스위스 신앙고백(1566년), 화란의 벨직 신앙고백(1561년)과 도르트 신경(1619년),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년), 영국 교회의 39개 신조(1563년),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 소요리문답(1647년) 등이 있다.


기타

16세기 후반의 필립 멜랑톤은 루터의 제자이었고 그의 저서 신학통의(通義) (Loci Communes)는 최초의 루터교 신학서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로마서의 순서를 따라 기독교 교리 체계 속에 성경의 기본 구절들과 그 해석을 모았다. 초판은 루터의 사상과 완전히 일치하며 어거스틴주의적이었으나, 그 후의 판들은 에라스무스의 영향을 받아 반(半)펠라기우스주의로 변질되었다.

17세기 초의 죤 게하르트는 17세기 루터파의 가장 훌륭한 신학자로서 신학통의(通義)라는 책을 썼다.

그는 멜랑톤의 입장에 반대하였고, 루터의 사상과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 초판(1530년)의 사상인 어거스틴주의로 돌아갔다.

이 시기에 작성된 주요한 루터파 신조들은 루터의 요리문답(1529년),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1530년), 일치 신조(The Formula of Concord, 1577년) 등이다.

17세기의 에피스코피우스는 화란 라이덴 대학교의 신학교수 제임스 알미니우스의 영향을 받아 그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해설했으나 실상 그의 선생보다 더 나아갔다.

그는 신학강요라는 책을 썼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돌트 대회의 결정들에 항거하였으므로 항론파(Remonstrants)라고 불리웠고 후에는 알미니우스파로 불리웠다.

파우스터스 소시너스의 라코 요리문답(1605년)은 소시너스주의의 신학서이다.

그는 삼위일체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의 인격성, 타락과 원죄 등을 부정하였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희생적 사랑의 모범으로 보았다.

그는 근대 유니테니안파(Unitarians, 일위신론자들)의 선조(先祖)이었다.

추기경 로버트 벨라민(1542-1621년)은 이 시대에 로마 천주교회의 대변자이었다.

기독교 신앙 논쟁에 관한 변론이라는 그의 책은 로마 카톨릭 신학의 완성된 해설서이었다.

그는 교황지상주의를 옹호했고 인간의 죄와 구원에 관하여는 반(半)펠라기우스적이었다.


근세 시대(18세기 이후)

개혁파

19세기 중엽의 촬스 핫지(Charles Hodge)는 구 프린스톤 신학교의 조직신학자로서 그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1871-73년)은 오늘까지 개혁파 신학의 표준적 신학서로 인정받고 있다.

그 책의 주요 주제들은

1권--서론, 1부(신론);

2권--2부(인간론),

3부(구원론; 기독론 포함);

3권--3부(계속)(구원론 계속; 성화론에 십계명 해설과 성례론을 포함함),

4부(종말론) 등이다.

에이 에이 핫지(A. A. Hodge)는 신학 개요(Outlines of Theology, 1879년)라는 그의 책에서 부친 촬스 핫지의 신학 사상을 이어 받아 신학을 평신도들을 위해 평이하게 문답식으로 정리하였다.

19세기 후반의 로버트 댑니(Robert Dabney)는 미국 남장로교회의 조직신학자이었다.

조직신학강의(Lectures in Systematic Theology, 1871년)라는 책은 그의 사후에 그의 강의록을 정리한 것이다. 윌리암 쉐드(William G. T. Shedd)도 탁월한 조직신학자이었다.

그의 교의신학(Dogmatic Theology, 1888-94년)은 1권--서론, 성경론, 신론; 2권--인간론, 기독론, 구원론(성례론 포함), 종말론; 3권--보충 설명 및 교리사적 참조 등을 다루었다.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의 개혁파 교의학(1895-1901년)은 지금까지 화란에서 표준적 신학서로 인정받고 있다.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는 훌륭한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1939년)을 썼는데, 그것은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의 기초가 되었다. 벌코프는 전통적, 정통적 개혁 신학을 그의 선배들보다 잘 정돈하여 전달하였다.

 헤르만 훽스마(Herman Hoeksema)는 미국 프로테스탄 개혁교회의 학자로서 개혁파 교의학(Reformed Dogmatics, 1966년)이라는 깊이 있는 개혁파 신학서를 남겼다.

박형룡 박사(1897-1978년)는 벌코프의 책을 기초로 하여 여러 개혁파 신학자들의 저서들을 참조하여 교의신학(7권, 1964-1973년)이라는 역작을 남겼다.

그는 그의 책 서문에서 그 책의 성격을 '편집'이라고 겸손히 표현하였지만, 그의 책은 실로 편집서 이상이다. 그 책은 한국의 장로교회를 위해 남겨진 신앙의 귀한 유산이다.


기타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 소위 '경건주의'라는 한 운동이 일어났다. 스페너, 프랑케, 랑게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교의학을 스콜라주의적 형식에서 해방하여 성경적 단순성으로 회복시키려고 노력하였다.

19세기 초의 쉴라이엘마허는 근대 자유주의의 시조로서 사람의 종교적 감정, 자의식, 경험을 교리체계의 기초로 삼으려 하였다. 그는 종교에 관한 강연과 신앙의 교리 등의 책을 썼다.

19세기 후반의 릿츨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을 교리 체계의 기초로 삼으려 했으며, 윤리적 기독교를 주창하였다. 그는 삼위일체를 부정했고 그리스도의 속죄에 관해 도덕감화설을 취하였다.

그의 대표적 저서는 기독교의 칭의와 화목의 교리다.

프란시스 피이퍼(Francis Pieper)의 기독교 교의학(Christian Dogmatics, 1950년)은 보수적 루터파 조직신학이다. 루이스 쉐이퍼(Lewis S. Chafer)는 미국의 달라스 신학교 창설자이며 그의 조직신학(1947-48년)은 세대주의적 입장을 반영한다.

바르트는 신정통주의의 시조로서 교회 교의학(13권, 1936-62년) 등 많은 책들을 저술하였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객관적 기록으로 보지 않으며, 성경의 유오성(有誤性)을 주장하고,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의 진실성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틸리히는 매우 자유주의적 신학자로서 조직신학(1963년)을 썼다.

하나님에 대한 그의 개념은 매우 철학적이다. 그는 인격적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부정하며, 하나님을 존재의 근거, 혹은 존재 자체라고 표현한다.

그는 하나님의 형벌적 공의의 속성, 그리스도의 성육신 등을 명백히 부정한다.

에릭슨(Millard J. Erickson)의 기독교 신학(Christian Theology, 1983-85년)은 가장 최근에 복음주의 진영에서 쓰여진 조직신학1이다.

그는 신복음주의적 입장을 취해 왔다.

그의 입장에 맞게, 그는 그의 책 첫 페이지에서 그 책을 신복음주의자 버나드 램과, 자유주의자 윌리암 호던과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에게 바친다고 썼다.

'서울신학·총신신대원 > 교의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교와 신학의 관계   (0) 2011.12.26
3. 하나님의 계시   (0) 2011.12.24
신학과 다른 학문들과의 관계   (0) 2011.12.20
신학의 분야들   (0) 2011.12.15
신학의 잘못된 방법들   (0) 201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