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사람은 누구나 고난보다는 영광을 더 좋아한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3년 동안이나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에 뒤에서 “우리 중 누가 가장 크냐?” 라는 문제로 티격태격하였으며, 요한과 야고보는 어머니까지 동원하여 예수님이 왕좌에 오르실 때 하나는 우편에 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는 어이없는 청을 하기도 하였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설교를 들을 때 예수님의 고난, 사도 바울의 고난, 초대교회 성도들의 고난에 대하여 동감하면서 은혜를 받고서 “아멘, 아멘” 해놓고도 막상 자기의 삶에 고난이 찾아오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그래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고, 남에게 못할 짓 한 것도 별로 없는데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찾아 왔을까?” 하면서 힘들어한다. 그러나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것을 본다. 교회에 나올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질병을 통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많이 경험하였다. 그렇다면, 그 질병이, 그 고난이 그 당시에는 쓰고 괴로워도 영원한 시간 속에서는 오히려 유익이 되고 감사할 조건이 되는 것이다.
나의 절친한 친구의 아버지께서는 제주도 출신으로 본토에 군인으로 왔다가 정착한 분이다. 섬 출신들이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그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더 일찍 개화되었으며, 복음도 더 일찍 들어갔을지라도 포교는 더 힘들어서 오늘날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비해 활짝 꽃피우지 못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섬사람들은 바다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각기 다른 많은 신들을 섬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오히려 신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여 종교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자들이 많다. 친구의 전 가족들이 기독교도가 된 이후에 오랫동안 그의 아버지께서도 자기에게는 믿음을 강요하지 말아달라고 못을 박아 자식들이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70대가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발병을 하여 30분만 늦게 병원에 왔어도 죽었을 거라는 의사의 소견을 듣게 되었는데,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그제서야 죽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셨다. 그리고는 퇴원 후에 부모님이 교회에 다니게 되셨다. 어머니는 마음은 있었으나 아버지 때문에 교회에 못 다녔다고 하셨다. 그의 어머니께서는 무슨 일이든 남편의 뜻대로 하며 사는 아내이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 형제자매들은 아버지에게 있어서 질병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시편 기자처럼 이러한 간증을 한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119:71)” 어쨌든 고난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면 그 고난이 오히려 은혜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예수를 믿은 후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나의 뜻과 고집으로 살다가 어느 날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나를 깨닫게 하실 때가 종종 있다. 그 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편119:67)” 라고.
몇 년 전 어느 날, 집에 나 홀로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분은 머뭇거리면서 “◯◯◯ 씨 아세요?” 라고 하였다. “아, 알고말고요.” 했더니, 그녀가 울먹이면서, “그 분에게 전도 좀 해주세요.” 라고 한다. 그래서 그동안 그분을 찾아가 전도한 이야기, 가끔 마을길에서 만나면 늘 교회에 나오시기를 권하곤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사실 그 분이 지금 많이 아프세요.” 라고 한다. 그제서야, ‘아! 그렇구나! 속히 심방하여 전도를 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하고는 “아, 그러세요? 그런데 그분과 어떤 관계이신가요?” 했더니, 며느리라고 한다. 그래서 급전도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우리 부부는 즉시 그 분을 찾아 갔다. 그 분은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다가 정년퇴직을 한 후에 우리 교회 뒤편의 야산을 6500여 평 사서 주변에 나무도 심고 토종닭을 키우면서 홀로 즐겁게 사시는 분이다.
그런데 집은 한 칸짜리 콘테이너 가옥이어서 춥고 불편해 보였다. 곧 전원주택을 지을 예정이라고 하셨다. 마당에 서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이제는 교회 좀 다니십시다.” 라고 했더니 한참 침묵을 지키시다가, “우리 며느리가 전화했습디까?” 라고 묻는다. 할 수 없이, “예, 며느리가 효부시데요.” 라고 칭찬을 했더니 좋아하시면서 그렇잖아도 몇 년 전부터 며느리가 교회 다니라고 했다고 하시면서, 병원에 있는 동안 닭 밥을 굶기게 생겨서 큰일이라고 하셨다.
목사님이 “그런 일이야, 제가 해드리죠.” 라고 흔쾌히 대답했더니, 아주 좋아하시면서 한 가지 걱정은 덜게 되어 고맙노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그 분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목사님은 아침저녁으로 두 차례씩 그 집을 오가면서 닭을 돌보아 주었다. 그랬더니 퇴원하시고 나서부터 교회를 나오시더니 지금까지 잘 다니고 계신다.
시골교회에서는 이런 일이 가끔 있다. 도시에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들이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을 시골교회 목사에게 심방해 달라고 전화를 해 온다. 그 때 심방을 하면 대부분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 그러므로 떨어져 사는 자녀들과 시골교회 목사가 합력하면 노부모님들을 속히 전도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아프시게 될 때 그 효력은 더 빨리 나타난다. 물론 오랫동안의 양방 기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영혼을 전도하는데 있어서도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있을 수 없다.” 라는 주님의 말씀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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