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어떤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모두가 춤을 추고 있을 때 기타를 잡고 노래하는 가수라고 하여 프리미엄을 줄 이유는 없어 보인다. 비록 [슈퍼스타 K2]의 출연진 중 다수가 그런 포맷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그건 차별성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지 우월함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재인은 순항했고, 결국 트라이앵글의 한 꼭지점이 되었다.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노래하는 모습을 몇 번 정도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뒤늦게 말하자면, 그녀의 보컬을 좋아할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그 '포텐'마저 거부하기는 어려웠다는 거다. 그건 아마도,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과열되고 과잉된 호들갑의 무드에 온전히 녹아 없어지길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녀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데 구체적인 이유를 대라는 건 곤란하다. 나의 변명이라면, 세상에 뿌려진 말들 중에서는 논리적 판단에 기초하지 않은 것들도 꽤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이야기는 다들 알고 있다. 장재인은 베테랑 프로듀서 김형석의 레이블 키위엔터테인먼트의 일원이 되었다. 이를 두고도 이런저런 추측들이 넘쳐났던 것으로 안다. 김형석의 색깔에 흡수된 채 또 하나의 그렇고 그런 가수로 남을 것이다, 라는 관측이 있었고, 보다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튼 이 모든 예측은, 어디까지나 예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언어의 잔치는 여기 앞에 놓인 결과물을 청취한 그 다음에 행해도 충분하다. 일단 외관에 대해 한 마디 하고 넘어가자면, 다섯 곡을 가진 EP로 제작한 것은 제법 날렵한 대응이었다는 생각이다. 잊힌 누군가가 되기 전에, 아웃풋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테니까. 하긴 최근 몇 년 동안 가요판에서 벌어진 그 방대한 망각의 역사를 기록하려면 전집을 가지고도 부족할 판이다.
일단 4개월 간 하루 2~3시간만 자면서 녹음했다는 전형적인 홍보문구에는 낚이지 않는 게 좋겠다. 이런 보도행태는 음악계의 관행이니 픽 웃으며 넘어간다면 매우 쿨한 제스처다. 한 가지 바란다면 이런 문구가 다음 앨범에서 "하루 18시간 동안 맹연습하며 세계진출의 꿈을 키웠다. 지금 음반사와 일정을 조율 중이다"로 확대되지 않기를 희망할 뿐이다. 어찌되었건, 다섯 곡이 수록된 앨범을 플레이하는 순간 그녀를 오래 동안 관찰했던 당신이라면 살짝 놀랄 수도 있다. 그녀의 장기인 포크 록 혹은 모던 록이 첫인사를 건네리라는 직감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대신 1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서는 것은 빈티지 소울이다. 소속사와의 타협이 작용했으리라는 추측(어디까지나 추측이다)을 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첫 곡이자,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의 유명한 박스 퍼포먼스를 오마주했다고 하는 '장난감 병정들'의 첫인상은 확실히 당혹스럽다. 그러나 "맞춰진 리듬아래/ 의미 없는 북장단과/ 감정 없는 표정 위로/ 군무를 맞추는 그대"라는 가사는 무엇을 겨냥하는가? 그리고 "연예계는 나와 다른 곳"이라고 고백하는 그녀의 말은 또 무엇으로 해석될 수 있는가? 회사에 소속되고 나서도 미처 관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서 그 해답을 읽어낼 수 있지는 않을까?
No | 곡명 | 아티스트 | 앨범 | 듣기 | 가사 | 뮤비 | MP3 | 배경음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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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장난감 병정들 | 데이 브레이커 |
소박하면서도 귀여운, 확연히 설익은 존경의 표식인 'I Love Paul'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조금은 유치한 비틀스(The Beatles)의 노래들로 가사를 배열한 것부터가 그렇다. 이것은 장재인식 솔직함의 고백은 아닐까? 따라서 어느 부분에서 그녀의 솔직함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음을 밝혀둔다. 나름 장필순의 노련함을 내보려고 했지만 (당연히) 그에 미치지 못하는 소품 '추억은 수채화처럼' 역시 그래서 내겐 허세가 아니라 성장의 페이지로 넘어가고 있었다. 가장 반응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곡은 라이벌에서 동료로 참여한 김지수와의 듀엣 '그대는 철이 없네'이다. 그 나이대의 느낌을 살려낸 트랙으로, '나는 다르다'는 주장을 은연중에 흘리는 여타 트랙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노출하는 곡이다. 종합하자면 앨범은 연예계로 들어온 풋내기 청춘의 혼돈, 그리고 복잡함이 그대로 믹스된(인위적이 아니라 정말 그 자체로 그러한), 그래서 더 주목할 만한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한다. 도리어 말미에 클리셰처럼 박힌 '반짝반짝'이 약간 방해가 되는 시추에이션이다. 그래도 이만하면 한계보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평가했다고 할 만할 것이다.
No | 곡명 | 아티스트 | 앨범 | 듣기 | 가사 | 뮤비 | MP3 | 배경음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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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I Love Paul | 데이 브레이커 | |||||||
2 | 추억은 수채화처럼 | 데이 브레이커 | |||||||
3 | 그대는 철이 없네 (Feat.김지수) | 데이 브레이커 | |||||||
4 | 반짝반짝 | 데이 브레이커 |
하지만 "가능성을 평가하겠다"는 말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오히려 이런 어법이 신인에 대한 상투적 비평을 양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명시적 혹은 암시적인 징후들을 언급해두려고 한다. 절대 완전할 수 없는, 완전해서도 안 될(그것이야말로 지원군*의 힘일 테니) 음반이었다. 여기저기에 물이 새는 구멍들이 목격되지만, 그것이야말로 나는 [Day Breaker]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 많은 고민들, 그 많은 상념들. 장재인의 노래엔 그 흔적들이 있다. 치기조차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는 그것조차도 보이지 않는 수천 수만의 음반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Day Breaker]에서 그런 자취를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녀의 가능성보다 더 나은 미래를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없었던,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고스란히 담아낸 음반이다.
*주: 김형석, 정원영, 임헌일(메이트),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 등이 참여했다.
*주: 김형석, 정원영, 임헌일(메이트),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 등이 참여했다.
[글: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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