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학습 도움이

성령의 능력과 복음진리

예림의집 2011. 1. 4. 09:19

성령의 능력과 복음진리

 

성령께서 오실 때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죄에서 벗어나고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기쁨과 담대함의 사람들로 변화된다. 오순절의 역사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기적적인 벼화를 가져왔다. 지금도 성령께서 오셔서 새 일을 행하실 때 우리가 기대하지 못하는 엄청난 역사들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임하셔서 실질적으로 능력을 나타내시는 성령님의 역사이다. 초대교회에 성령님의 오심은 아주 분명한 실재로 나타났다. 성령님의 임재하심은 주님의 육체의 임재 이상보다 더 확실한 실재였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의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려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 받는 자가 되었으니(살전 1:5-6)." 성령님의 임하심은 능력의 나타남이다. 성령께서 오셔서 능력을 나타내실 때 복음을 듣는 자들이 성령님으로 말미암는 큰 확신을 갖게 되고 성려으이 기쁨을 얻게 되었다. 지금도 이런 역사들이 일어난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복음을 전할 때 어런 성령님의 임재의 증거들이 분명히 일어나는 것이다.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이 능력의 역사들은 무엇인가? 이것은 단지 능력이고 확신이고 기쁨인가? 중요한 것은 외적인 나타남과 큰 변화가 아니다. 성령껫 오셔서 행하시는 것은 하늘의 속한 영광과 생명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복음 안에 계시된 생명을 실제로 드러낸 것이다. 성령니므이 능력은 복음의 계시와 연관되어야 그 의미가 바로 이해된다. 단지 사람들이 기뻐하게 되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느 감저으이 변화나 외적인 모습의 변화가 병화의 핵심이 아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오셔서 역사하시는 분명한 증거이지만 그 본래적인 핵심은 보다 깊은 신비에 속한다. 이것이 복음에 나타나 있다. 성령의 놀라운 역사는 복음에 대한 분명한 이해에서 드러나게 된다. 성령께서 오셔서 행하시는 역사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복음을 계시하는 것과 또 이 복음을 실제의 삶에서 능력으로 나타나게 하는 일이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사람들이 변화되고 확신과 큰 기쁨을 소유하는 것은 바로 복음의 계시를 구체적인 현실로 가져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령께서 복음의 비밀을 계시하고 이것을 사람들의 삶 가운데서 구체적인 생명으로 드러내신다. 이것이 성령님의 오심의 의미의 간명한 요약이다. 그래서 성령님의 오심을 기대하고 그 능력과 증거들을 소망할 때 먼저 복음을 통해서 성령께서 계시하신 것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성령님의 능격의 역사들의 본질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복음주의와 은사주의 성령론의 강조점들은 이런 성령님의 역사의 두 초점에서 이해될 수 잇다. 복음주의는 복음진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은사주의는 성령니므이 능력을 강조한다. 전통적으로 복음주의에서 성령의 역사를 이해할 때 복음을 계시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1900년대 초 오순절교단의 등장 이후 은사주의적 교회들은 사도행전적인 성령님의 임하심과 능력과 표적의 역사를 통해서 성령님에 대한 이해를 복음의 진리와 내적인 성령의 역사에 대한 강조점에서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고 많은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한 강조점으로 바꾸게 되었다. 전통적인 복음주의의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받아들이지만 강조점은 진리보다 능력에 주어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복음주의자들과 은사주의자들 사이에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딪히게 되었다. 은사주의는 성령께서 실제의 현장에서 임하셔서 이루시는 능력의 역사들과 경험에 많이 의존하여 성령의 역사를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고 복음주의는 경험을 배제하고서 성겨에 나타난 것들에 의존해서 이해하려 했다.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에 분명히 강조하고 있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강조가 은사주의에서 무시되고 너무 현상을 추구하는 것이라 의심하고 있고 또 은사주의자들은 복음주의자들이 복음진리를 강조한다 하는데 사도행전적인 역사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 편에서는 진리를 강조하면서 능력을 약화하고 한 편에서는 능력을 강조하면서 진리를 약화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고 또 이것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복음주의나 은사주의에 있어서 둘 다 결여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바로 복음 진리를 능력으로 나타내는 일이다. 복음진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날 수 있고 또 성령의 능력으로만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복음주의의 많은 교회들이 성령의 실제적인 능력을 잘 알지 못하고 복음진리를 알고 있다는 데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은사주의의 교회들은 복음주의가 강조하고 있는 복음진리를 성령 안에서 이해하고 그 진리를 현실 가운데 드러내는 능력보다는 사역적인 능력이나 은사들에 초점을 맞추어 성령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다. 복음주의에서는 성령의 능력을 제대로 이정하지 않음으로 복음진리가 말로만 전달되고 실제의 능력으로 나타나지 못하여 능력 없는 신앙에 머문다면 은사주의는 능려고가 표적들의 나타남의 본래 목적인 복음 진리르 ㄹ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영적인 능력들을 보여지는 현실적 차원으로 낮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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