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학기 선지서 기말고사 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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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지자의 정의 및 예언의 본질(강의안 1~5쪽)
가. 선지자의 정의
성경의 인물 가운데 선지자라는 이름으로 불린 최초의 인물은 아브라함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선지자라 불리기는 했어도, 이 용어가 전문적인 의미에서 아브라함에게 붙여진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와는 반대로, 에녹이나 노아나 이삭이나 야곱의 경우, 그들은 선지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는 않았지만 예언을 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라는 제도를 세우시기 이전부터도 하나님께서 여러 인물들을 통해 계시를 드러내시고, 역사를 하셨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께서 쓰신 인물,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선지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을 전문적인 의미에서 선지자라 부르지는 않았다.
“선지자”라는 명칭이 전문적인 의미에서 적용된 인물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좀 더 뒤에 나타난다. 오경과 여호수아, 사사기에서 “나비”라는 단어는 17번 나온다. 미리암, 드보라도 “여 선지자(너비아)”라 불린다. 그러나 이들은 민12:6의 정의를 따라 꿈과 환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이란 광의적 의미에서의 선지자들이다. 협의적인 의미에서의 선지자는 이스라엘 역사의 좀 더 후대에 등장한다.
우리가 배웠던 선지자들은 전문적 의미의 선지자 중 문서선지자를 말한다.
나. 예언의 본질
고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게 있어서 예언의 본질은 “장래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하는 것(우리 사회에서는 ”점“이라 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는 구별되어야 한다. 장래사를 알려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지만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백성들 모두에게 미래사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더 포괄적인 개념이며, 이미 율법을 통해 계시하셨으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하신 모든 일들 가운데 드러났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백성들 가운데서 제대로 지켜지고, 하나님의 백성이 언약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며, 선지자 제도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세우신 중요한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을 선포하고,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며, 낙심한 백성들에게 미래사를 알려줌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회복에 대한 기대와 소망 가운데 살도록 격력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장래사를 알리는 것만을 예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신명기 18장에는 예언의 성취가 그 선지자가 참 선지자인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예언은 문맥상 장래사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사야, 예레미야 등 선지자들이 선포한 예언의 내용들을 분석해 보면, 상당부분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언이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행위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선지자들의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종종 자신의 계획을 백성들에게 알리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장래 일을 알리신 목적은, 앞으로 역사가 전개될 역사에 관한 상세한 시간표를 백성들이 알기를 원하셨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신비에 감추어진 것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영역이다. 예를 들어 종말에 관한 말씀 가운데 주님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 13:32)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해 히브리 에언에 있어서 미래사를 밝히는 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예언은 현재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예언의 본질은 미래를 예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들이 선포한 그 예언은 운명론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장래사를 보여 주고 선포하게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통해 “현재” 하나님의 백성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이다.(예 : 요나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지 않았다. 그것은 말씀이 선포되고 나서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아모스가 환상 가운데 본 하나님의 심판 두 가지는 아모스의 중보 기도로 인해 철회되었다. 만약 예언을 “미래에 일어날 역사를 미리 알게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니느웨 성의 회개에도 불구하고 심판이 집행되어야 하며, 아모스의 중보 기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현실로 나타나야 한다. )
선지자들이 장래 일을 말하는 목적은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선포한 미래사 중에 개인적인, 사사로운 일은 하나도 없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심판과 구속과 회복 등, 공동체의 운명과 관계된 예언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들이 한 개인의 운명에 관해 예언했다는 사실을 들어 이런 사실을 반박하려 한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종종 개인의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경우도, 그 개인은 왕이나 제사장 등 공동체와 관련된 인물이거나 선지자의 예언과 직접 연관된 거짓 선지자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개인의 사사로운 일에 관해 선지자가 예언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적어도 소위 문서 선지자들에게는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참된 예언과 기독교 무당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장래 일어날 일을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다. 그것은 개인의 신앙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에언과 신탁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출발점, 즉 동기의 차이다. 예언은 하나님께로부터 백성에게로 오는 것이고, 신탁은 인간의 필요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이 하나님/신의 뜻을 필요로 하는데, 그 뜻이라는 것이 미래에 대한 신의 계획이다. 즉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알리실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경우에 누군가에게 미래사를 알려줌으로써 그를 인도하실 있음을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에언”은 인도하심의 한 방편일 뿐,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된 예언과 같은 수준의 계시는 아니다. 만약 누군가 예언을 계시적인 차원과 동등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런 행동은 교회에 유해한 행위로 비판받아야 한다.
2. 선지자의 분류(강의안 5~6쪽)
가. 일반적 분류 : 문헌/문서 선지자(literary prophets; 혹은 고전적인 선지자)와 비 문헌선지자(oral prophets)로 나눈다.
(1) 문헌 선지자 또는 문서 선지자 : 선지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책을 남긴 선지자를 말한다. 이 범주에 들 수 있는 선지자는 “대 선지서”를 기록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소 선지서”라 불리는 책들(호세아~말라기)을 기록한 열 두명의 선지자가 포함된다. 다니엘의 경우, 일반적으로 기독교회에서는 다니엘서를 대 선지서에 포함시키지만 다니엘은 전문적인 의미에서의 선지자는 아니었다. 또한 다니엘서의 성격은 논의가 되는 주제다.
(2) 비 문서 선지자 : 문헌 선지자 또는 문서 선지자 이전에 활동하였던 선지자들, 예를 들면 나단, 갓, 스마야, 아히야, 미가야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 전통적 분류(히브리인 전통) : 전 선지자와 후 선지자로 구분. 이런 구분에 따르면 후 선지자는 다니엘을 제외한 열다섯 명의 선지자를 가리키고 그 이전 선지자들은 전 선지자에 해당된다.
다. 시대에 따른 분류 : 포로기 이전, 포로기, 포로기 이후
(1) 포로기 : 에스겔, 예레미야, 다니엘은
(2) 포로기 이후 : 학개, 스가랴, 말라기
(3) 포로기 이전 : 위에서 제외한 나머지 선지자. 단, 오바댜, 요엘은 그 활동시기를 알 수 없다.
라. 역사적 배경(고대 근동을 지배했던 나라를 기준)
(1) 신아시리아 시대(대략 BC 8~7세기 말) : 아모스, 호세아, 요나, 미가, 이사야
(2) 신바빌로니아 시대(대략 BC7세기 말~6세기 중엽) : 스바냐, 하박국, 예레미야, 나훔, 에스겔
(3) 페르시아 시대 : 학개, 스가랴, 말라기
3. 요나서의 메시지(강의안 42~50쪽)
요나서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이 책이 요나라는 인물에 대해 말하려는 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처음 말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마지막 말씀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예를 들어 요나가 선포한 예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신명기의 말씀에 따라 판단하면 요나는 거짓 선지자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나를 보내시어 자신의 뜻을 이루셨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문제 삼는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그런 태도를 책망하시고 요나의 불평을 답변하심으로 자신의 뜻을 드러내신다. 우리는 요나서를 읽을 때 요나라는 인물보다는 요나를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럼 이 책에서의 요나 선지자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자. 첫째, 요나는 인간을 대표하는 인물로 간주 될 수 있다. 둘째로 요나는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선지자 사역을 맡은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요나서는 자신의 선지자로서의 임무를 회피하려는 자들에게 교훈을 주는 책이 된다. 셋째로, 요나는 이스라엘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요나서는 선민을 대하시는 여호와의 방법과 하나님을 대하는 이스라엘의 방법에 관해 말한다. 만약 요나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요나서의 주인공이 요나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면 이책은 이스라엘(요나)의 태도에 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책이다.
이 책은 시종일관 요나의 이방인을 날카롭게 대조시킨다. 이방인에 대한 요나의 생각 요나에 대한 이방인들의 생각, 은혜를 받은 자 요나가 은혜 받지 못한 백성 니느웨에 대해 가지는 적개심, 은혜 받지 못한 백성 니느웨가 보인 회개하는 태도 등을 날카롭게 대조시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으려는 교훈이 있다. 이것을 근거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요나서는 이방 민족들에 대한 여호와의 지대한 관심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이스라엘의 불성실함과 불 충성이 이와 같은 여호와의 궁극적인 목적들을 결코 좌절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셋째로, 신약(마 12:38-41)과 초기 기독교 저자들은 요나서를 예수의 죽음 및 부활과 관련하여 예표론적으로 읽었다. 그러나 우리는 물고기 표적의 목적이 당시와는 분리된 하나의 모형,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모형을 제시하는 것뿐이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즉,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은 반드시 죽어야 하며 다시 일으킴 받아서 준종함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로, 요나가 니느웨로 가는 과정에서 겪은 사건들은 완고한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메시지다. 이방인들은 매우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반해 하나님의 백성이며 선지자인 요나는 매우 독특하게 묘사된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하나님을 피해 도망친다. 게다가 폭풍이 일어났을 때 요나는 배 밑층에서 자고 있고 이교도들은 그들의 신에게 기도한다. 이교도들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했다. 그들은 유대인인 요나를 살리려 한다. 이것은 4장의 니느웨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는 요나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예수님의 요나의 표적은 무엇인가? 요나가 스올에 내려간 사실이 그 당시 반드시 죽어야 할 “악하고 음란한 8세기 이스라엘”에게 표적이 되엇듯이 예수님의 죽음도 당시 “악하고 음란한” 이스라엘에게 하나의 표적이 된다는 말이다.
4. 미가서 6장 8절을 외워쓰기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5. 나훔서의 메시지(강의안 128~131쪽)
가. 진노하시는 하나님
나훔은 하나님을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묘사한다. 물론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란 표현은, 신인 동형론적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실 대 , 자신에 관하여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출20:5) 이라고 말씀하셨다. 도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니라”(출34:14)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분노와 분명 다르다. 인간은 금방 분노하지만 심판을 행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처럼 분노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선 오래 참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으심은 심판을 행할 능력이 없어사가 아니라 죄인을 향한 사랑 때문이다.
나. 하나님의 주권
나훔은 두 번째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묘사한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묘사한다.
다. 군국주의에 대한 비난
라. 신약과의 관계
구약에서 용사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신약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고대 하고 있는데 그리스도 역시 신약에서 용사로 빈번하게 묘사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재에 대상은 다르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들과 대항해서 싸웠지만, 바울서신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 부활, 승천은 사탄 및 그의 군대에 대한 전쟁의 절정인 것으로 되어 있다.
6. 포로기 이전 선지자들이 선포한 말씀들의 핵심 사상들은 무엇인가? 그 말씀들과 그들의 삶을 통해 배운 점은 무엇인가?
“선지자와 그리스도” 과제물 중 “8. 포로 이전 시대의 예언: 주전 8세기의 선지자들”, “9. 포로 이전 시대의 예언: 주전 7세기의 선지자들”을 참고하셔서 각자의 견해를 적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7. 새 언약이 옛 언약들과 같은 점은 무엇이며 다른 점은 무엇인가? 새 언약이 약속한 축복의 내용들은 무엇인가?(선지서2 P.22-25)
1. 동질성과 차이점
날이 이르면 돌비에 새겨진 법 대신에 심비에 새겨진 법이 있게 된다. 언약의 규정들이 새로워진다는 말이 아니다. 새로워진 것은 언약이지, 규정들이 아니다. 즉 새 언약에는 옛 율법을 대체할 새로운 율법이 주어지지 않는다. 새 언약의 “새로움”은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신실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시내산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과 유다집과 그 언약을 체결하시리라는 사실에 놓여있다. 다시 말해, 새 언약에서 “새”는 구 언약을 갱신을 말한다.
예레미야는 옛 언약에 내지도니 것 이상으로 새 언약의 규정에 어떤 변화를 에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율법이 옛 언약의 실패의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패의 원인은 인간의 내부에 있지 율법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언약의 근거가 새롭게 되는 것이지 규정이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언약의 본질은 동일하지만 율법의 시행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33절은 모세 언약에서 율법이 기록된 장소와 대조된다. 모세 언약에서 율법은 돌 판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인간의 마음에 기록된다.
2. 새언약의 축복의 내용
첫째, 여호와를 알리고 가르칠 필요가 없다. 즉 인간 중보를 배제한 직접적인 神(신)지식을 말한다.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친히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이다. 둘째, 여호와께서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법들은 마음과 심장에 새겨진다. 즉 하나님의 법은 백성의 마음에 새겨진다는 것이다.
8. 칠십 이레 예언에 대한 세대주의적 해석을 서술하고 그 문제점을 비판한 후 개혁주의 해석을 서술하라.(선지서2 P.41-43)
(위의 그림은 제가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그린 그림입니다. 혹 전도사님들이 그린 그림과 틀리다면 말씀해 주세요.)
세대주의는 7이레와 62이레는 그리스도의 초림때까지의 예언이라는 것과 마지막 한 이레는 세상의 종말 때에 오는 기간이기 때문에 그 사이엔는 큰 괄호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견해는 성경적으로 맞지 않다. 첫째, 우선 휴거와 재림이라는 이중의 재림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없다. 둘째, 유대인들에게만 이 예언을 적용하는 것은 성경의 보편성에 어긋난다.
그리고 우리 복음주의 입장에서는 이 숫자들을 상징적인 숫자로 해석을 한다. 이 기간은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일곱 이레로 표현된 기간으로서 고레스의 칙령과 함께 시작되며, 기름부음 받은 자이며 왕이신 그리스도의 출현할 때까지 계속된다. 당므으로 62이레가 오는데 이 기간에 귀환과 재건이 이루어지고 죄인들이 돌아온다. 이 기간 당므에 그리스도가 끊어질 즉 메시아로서의 그의 위치가 무효화될 시기가 온다. 이 마지막 이레때 적그리스도가 지배하며, 전쟁과 황폐함이 종말가지 계속되다가 종말에 이르러 적그리스도의 지배도 마치게 된다.
9. 에스겔서를 그 내용에 따라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은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는지 쓰라.(선지서2 P.26)
1-3 : 소명설화
4-24 : 에스겔의 초기 사역 때의 예언(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선언 포함)
25-32 : 열방들에 대한 심판예언
33-39 : 남은 자들을 위한 소망의 메시지
40-48 : 새 성전에 대한 환상
10. 요엘서 1, 2장 해석과 메시지. (선지서 P.49-52)
1장의 메뚜기 떼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된다. 우리는 이 메뚜기 떼를 실제적인 메뚜끼 떼로 본다.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아무것도 남김ㅇ벗이 황폐하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1장의 메뚜기 떼와 2:1-11의 관계는 첫 번째 견해는 동일한 메뚜기 재앙을 서술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와 이스라엘 전통적인 적들이 쳐들어오고 있다고 보거나 모든 적들을 알레고레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대부분 현대 주석가들은 메뚜기의 침공에 대한 두 번째 묘사가 1장에 묘사된 메뚜기 재앙을 바탕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지자는 최근의 재앙을 다가올 여호와의 날의 전조로 본다.
2:18부터 요엘서의 두 번째 부분이 시작된다. 첫 부분이 심판에 맞추어져 있다면 두 번째 부분은 회복에 관한 말씀들이다. 19-27절까지는 축복의 말씀들이 언급되고 28-32절은 모든 육체에게 신을 부어주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나타난다. 베드로는 여기에 모든 육체를 모든 인류로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을 하였다.
11. 학개가 선포한 메시지들(선지서2 P.59-67)
이번주 강의 시간에 다시 한번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총 네 개의 설교가 학개에 나와 있다.
(1) 1:1-11(흉작에 대하여) : 다리오 왕 2년 6월 1일 = 520년 8월 29일
-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말씀
- 신년축제를 위해 모인 대중에게 선포되어진 말씀.
- 하나님게서 “내 백성”이 아니라 “이 백성”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나님 집을 짓는 것에 대해서 소홀함을 지적.
(2) 2:1-9(지진예고) : 다리오 왕 2년 7월 21일 = 520년 10월 17일
-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그리고 남은자에게 주어진 말씀
- 일이 진척되면서 낙심하는 사람도 생기고, 이전성전과 비교하면서 실망하는 사람도 생긴 것이다.
- 이 설교의 중심 주제는 성전의 영광이다.
-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장차 육신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찬란한 성전이 될 것을 보여준다.
(3) 2:10-19(성전과 가뭄의 역현상) :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 = 520년 12월 18일
- 선지자와 여호와와 나눈 대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
- 토라의 질문과 약속의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다.
- 백성의 첫 번째 설교를 듣고 성전 건축을 시작했지만 그들의 거룩하지 못함을 지적하는 설교이다.
(4) 2:20-23(지진예고) : 앞의 (3)과 같은 시기
- 총독 스룹바벨에게 주어진 말씀.
- 스룹바벨은 유다총독이자 혈통적으로는 여호야긴의 계통을 따르는 다윗의 자손이다. 따라서 이 말씀은 성전의 회복과 아울러 다윗 왕조의 회복에 대한 관한 약속이다.
- 스룹바벨은 우주의 천재지변을 미리 형상화 하고 있다.
12. 하박국 2장 4절을 외워 쓰시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이 구절은 바울의 이신칭의 신학, 즉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의롭게 된다는 사상을 지탱해주는 기둥이 되었다.(롬 1:17, 갈3:11). 그러나 칠십인경의 헬라어 본문(ο δε δικαιος εκ πιστεως μου ξησεται)은 조금 다르다. 이 본문을 직역하면 “의인들은 나의 신실함으로 인하여 살 것이다”가 된다. 여기 본문에 나타나는 μου(나의)의 “나”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실함 때문에 의로운 자들은 살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갈3:11과 롬1:17에서는 “δικαιος εκ πιστεως ξησεται”로 나타난다. 즉 μου가 빠져 있다. 따라서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πιστεως(믿음)는 하나님의 신실함이 아니라 의인의 믿음이다.
이 본문은 하나님께 대한 두 상반되는 태도와 하나님의 약속을 언급한 구절로 본다. 악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믿는다. 그들의 영혼은 교만하다. 그러나 의인, 즉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자들은 전망이 가장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계속 신뢰하는 자들이다. 여기서 에무나는 충성과 믿음을 모두를 의미한다.
13. 말라기서의 특징.(선지서 2 P.160 참조)
1. 이 책은 일련의 설교로서 이 책에는 여섯 개의 설교가 들어 있다.
2. 말라기의 메시지의 대부분은 죄의 선고와 책망이다. 그 당시에 나타난 백성들의 정신 후에 바리새주의나 사두개종파로 발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3. 이 책 전체에 걸쳐 질문과 답변의 형식(논쟁 양식)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일어난 여섯 번에 걸친 논쟁들로서, 이런 형식을 대화적 문체라고 한다(이것을 ‘예언적 변론 문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형식은 백성들이 반발심을 갖고 있으며, 기존의 신앙과 관습에 의문을 던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말리기가 산문인지 운문인지도 논쟁의 핵심이다.
4. 말라기서는 극도의 유다 중심적인 국수주의 사상을 강하게 담고 있는 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요엘과 오바댜도 여기에 해당).
5. 말라기는 제의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
6. 이 책에는 만군의 여호와(야웨 츠바오트)라는 이름이 24번 나온다.
14. 1년동안 선지서를 통해 배운 점과 새롭게 결단한 부분이 있으면 쓰시오.
각자의 견해를 쓰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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