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학습 도움이

선지서(The Trophetic Books)

예림의집 2010. 10. 17. 17:31

선지서(The Trophetic Books) 서론

 

구약의 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종이자 대적들에게 우상 숭배를 깨닫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악한 왕과 왕자들과 맞서다가 자주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며, 죄인들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일에 자신들의 영혼을 쏟았다.

이스라엘은 민족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사자로서 섬겼던 사람들의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아브라함이 한 죄인을 위해 중보했을 때, 그는 선지자의 역할을 담당했다(창 20:7). 그러나 하나님이 처음 선지자의 역할로 부르시고 명하신 사람은 모세였다(출 3:1-4:17). 사실상 모세는 구약의 선지자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민 12:6-8). 그리고 그가 경험한 선지자의 역할은 후대 선지자들의 전형이 되었다. 왜냐하면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의사가 전달되는 관계와 어휘는 다른 참된 선지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 계시의 표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보내라", "가라", "말하라", "내가 반드시 ...하리라"와 같은 용어들을 선지자들에게 사용하셨고, 선지자 자신들은 청중들에게 자주 "들어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라고 권고하였다.

하나님, 선지자, 청중 간의 관계에는 몇 가지 특징적인 요소들이 있다. (1) 하나님의 권위는 선지자와 청중들 위에 있다. (2) 가끔 초기에 반항하기도 하지만, 선지자들은 순종한다. (3) 선지자들은 주권자인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권위를 갖는다. (4) 청중에게 언약을 순종할지 불순종할지 선택하라고 요구하신다. (5) 선지자는 기도의 형식으로 하나님께 보고한다.

예언서는 대부분 히브리의 시 양식으로 쓰여졌다. 선지자들이 시라는 장르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1) 시는 의지와 감정을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다. 선지자들은 단순히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감화시켜 실천하게 하고 싶었다. (2) 상징과 심상으 강조하기 때문에, 시는 때때로 선지자들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에 담긴 하나님의 신비와 하나님의 성품을 전달하기에 산문보다 더 적합하다. (3) 시는 모든 세부 사항을 반드시 묘사하지 않고도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의 의미를 말할 수 있다.

성경의 선지자들은 주로 미래의 예언자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확실히 예언은 선지자들의 설교에 있어서 핵심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고 그분께 의존하도록 백성들을 부르는 일이다. 예언적 메시지의 내용은 하나님이 그 백성과 맺으신 언약과, 각 선지자가 처한 특별한 역사적 상황에 의해 성립되었다. 그 언약은 이스라엘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거룩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성립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을 향한 끊임없는 반역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리고 이 반역들은 선지자의 메시지를 어떻게 구성했고, 전달했는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메시지들은 자주 언약을 파기한 백성들에게 제기하는 하나님의 "소송" 형식을 취했다. 예언적인 소송은 전형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포함한다. (1) 하나님의 법정에 소환됨 (2) 죄들 (3) 판결문의 선언 (4) 다가올 형벌 묘사 (5) 회복의 약속이다.

역사서에 언급된 많은 선지자들과 여선지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왕국 시대(B.C. 1050-586)의 가장 중요한 선지자들은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엿다. 소위 "성경을 저술한 선지자들"은 우리에게 16권의 선지서를 남겨주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셀, 다니엘은 "대선지서"로 불리고, 좀더 짧은 12권의 선지서들은 "소선지서"라고 불린다. 이 분류는 기록된 분량에 따른 것이지, 책의 질이나 중요도에 따른 것이 아니다.

◐참고 자료1- 선지자 도표◑

다윗

엘리야

엘리사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B.C. 1000

B.C. 852

B.C. 500

연합 왕국

분열 왕국

포로기

포로 귀환

바벨론에서 70년

1차 스룹바벨

2차 에스라

3차 느헤미야

이스라엘

<--B.C. 772

연합 왕국

<--B.C. 931

유다

<--B.C. 586

포로기 이전 선지자들

포로기의 선지자들

포로기 이후의 선지자들

이스라엘에 대해:

아모스(760-750)

호세아(755)

니느웨에 대해:

요나(760)

나훔(660)

에돔에 대해: 오바댜(840)

유다에 대해:

요엘(835)

이사야(740)

미가(735)

스바냐(630)

예레미야(627)

하박국(607)

에레미야애가(586)

바벨론 유대인에 대해:

다니엘(605)

에스겔(592)

귀환 후 남은 자들에 대해:

학개(520)

스가랴(520)

말라기(432)

선지서

서론

선지서는 때로 오해되며, 교회 생활에서 자주 외면당하는 책이다. 선지서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새롭지는 않다. 왜냐하면 선지자 시대에도 선지자들은 대체로 청중에게 ‘어떤 새로운 것’을 주기보다는 항상 도전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의 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종이자 대적들에게 우상 숭배를 깨닫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악한 왕과 왕자들과 맞서다가 자주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며, 죄인들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일에 자신들의 영혼을 쏟았다. 이스라엘은 민족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사자로서 섬겼던 사람들의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아브라함이 한 죄인을 위해 중보 했을 때, 그는 선지자의 역할을 담당했다(창 20:7). 그러나 하나님이 처음 선지자의 역할로 부르시고 명하신 사람은 모세였다(출 3:1-4:17). 사실상 모세는 구약의 선지자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민 12:6-8). 그리고 그가 경험한 선지자의 역할은 후대 선지자들의 전형이 되었다. 왜냐하면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의사가 전달되는 관계와 어휘는 다른 참된 선지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 계시의 표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보내라", "가라", "말하라", "내가 반드시 ...하리라"와 같은 용어들을 선지자들에게 사용하셨고, 선지자 자신들은 청중들에게 자주 "들어라", "주께서 이같이 말씀 하신다".라고 권고하였다. 하나님, 선지자, 청중 간의 관계에는 몇 가지 특징적인 요소들이 있다.

(1) 하나님의 권위는 선지자와 청중들 위에 있다.

(2) 가끔 초기에 반항하기도 하지만, 선지자들은 순종한다.

(3) 선지자들은 주권자인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권위를 갖는다.

(4) 청중에게 언약을 순종할지 불순종할지 선택하라고 요구하신다.

(5) 선지자는 기도의 형식으로 하나님께 보고한다.

예언서는 대부분 히브리의 시 양식으로 쓰여졌다. 선지자들이 시라는 장르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1) 시는 의지와 감정을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다. 선지자들은 단순히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감화시켜 실천하게 하고 싶었다.

(2) 상징과 심상을 강조하기 때문에, 시는 때때로 선지자들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에 담긴 하나님의 신비와 하나님의 성품을 전달하기에 산문보다 더 적합하다.

(3) 시는 모든 세부 사항을 반드시 묘사하지 않고도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의 의미를 말할 수 있다.

성경의 선지자들은 주로 미래의 예언자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확실히 예언은 선지자들의 설교에 있어서 핵심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고 그분께 의존하도록 백성들을 부르는 일이다. 예언적 메시지의 내용은 하나님이 그 백성과 맺으신 언약과, 각 선지자가 처한 특별한 역사적 상황에 의해 성립되었다. 그 언약은 이스라엘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거룩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성립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을 향한 끊임없는 반역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리고 이 반역들은 선지자의 메시지를 어떻게 구성했고, 전달했는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메시지들은 자주 언약을 파기한 백성들에게 제기하는 하나님의 "소송" 형식을 취했다. 예언적인 소송은 전형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포함한다.

(1) 하나님의 법정에 소환됨

(2) 죄들

(3) 판결문의 선언

(4) 다가올 형벌 묘사

(5) 회복의 약속이다.

역사서에 언급된 많은 선지자들과 여선지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왕국 시대(B.C. 1050-586)의 가장 중요한 선지자들은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였다. 소위 "성경을 저술한 선지자들"은 우리에게 16권의 선지서를 남겨주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셀, 다니엘은 "대선지서"로 불리고, 좀 더 짧은 12권의 선지서들은 "소선지서"라고 불린다. 이 분류는 기록된 분량에 따른 것이지, 책의 질이나 중요도에 따른 것이 아니다.

선지서 연구

선지자와 선지서

선지서 연구는 선지서들 가운데 아주 다른 두 구절들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시작 부분에 있고, 다른 하나는 맨 끝에 있다.

○첫째 구절은 이사야 6:1-13이다. 이사야는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의 환상을 본다. 이는 선지자의 하나님 경험에 관한 묘사 가운데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의 환상에 압도되어 자신의 죄를 깊이 인식한다. 동시에 그의 사역에 영감을 불어넣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이 환상이다. 환상은 이해와 행동을 낳는다. 따라서 이 본문이 소명 사상을 설명하는 고전적인 구절이 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둘째 구절은 말라기 4:4-6이다. 여기서는 백성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가 다시 올 것이라는 약속을 기억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율법과 선지서가 결합되어 있다. 선지서는 ‘책’(모세의 율법)과 나란히 등장하고, 선지서 자체가 하나의 책이 되었다. 선지서 단락의 마지막 부분은 성경의 정경인 ‘율법과 선지서’의 개념을 선언하고 있다. 우리의 ‘선지서’ 연구는 이 두 순간 사이에 존재한다. 이사야의 환상은 선지서들의 핵심사상을 말해 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개인들에게 말씀하셨고 또 그들에게 말하도록 사명을 주셨다. 우리는 선지자와 책 둘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즉 책은 정경 문헌의 일부이기 때문에 고려해야 하고, 선지자는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가 선지서를 지배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에 고려해야 한다.

선지자

일부 선지서들은 도입하는 서두나 표제와 다른 곳에 선지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정보는 역사적 정황들을 가리키며 때로 선지자의 가족이나 그가 그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 같은 상세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정보는 선지서마다 다양하다. 몇몇 선지서의 표제들은 거의 정보를 주지 않기에 그런 경우 선지자들은 모호한 채로 남아 있게 된다. 선지서가 선지자의 삶을 상세히 말하는 경우에도 이것은 선지자의 삶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책의 메시지의 일부로서 언급했을 것이다. 현대 독자들과 달리 저자들은 선지자들의 삶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지지받고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지역에 따라 선지자들의 지위와 역할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모세 언약이 중요한 통치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는 특정 전통에 속했다고 여겨졌다. 반대로 이사야 같은 남 유다의 선지자들은 환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했으며, 이 환상은 성전과 다윗 언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신학과 관련이 있다.

선지서

선지서들은 단지 분리된 말들의 조악한 수집물이 아니라, 신중하게 구성된 문학 단편들이다. 문학비평의 문제는 첫째, ‘원래의’ 예언 형태에 관해 특정한 가정을 하는데, 사실 그 가정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가 예언서에서 발견하는 상당히 많은 내용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데 있다.

양식비평은 특정 상황에서 사용된 연설의 형태들에 관한 연구다. 양식비평은 그 말씀의 원래 정황(이스라엘의 예배)을 즉시 확인할 수 있고 일부 자주 반복되는 요소들을 통해 몇 개의 유형들로 구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책인 시편을 연구하는 데 매우 성공적으로 활용되었다. 선지서 연구에서 양식비평의 강점은 선포된 말씀의 호소력을 인정하는 ‘사자’ 개념이다.

편집비평은 선지서에 대한 현대의 학술 저술 가운데 가장 지배적인 비평 유형이다. 편집비평은 원칙적으로 최종 형태에 이르기까지 책의 구성에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양식비평이나 문학비평과 다르다. 편집비평은 선지자들의 말은 새로운 문맥에 맞게 고쳐졌고 따라서 새로운 의미가 되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문맥과 의미는 원래의 문맥과 의미만큼이나 중요하고 흥미롭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편집비평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책의 확장 단계들에 관한 연구, 그리고 편집과정에서 생성된 부분들 간의 모든 내적 관계와 함께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에 관한 연구가 그것이다. 선지서의 확장은 우연이 아니라 신중한 신학적 숙고 과정을 거쳐 나온다.

신학적 주제들

중요한 특정 주제들은 반복하여 등장한다. 그 패턴의 전형적인 특징은 심판 선포 다음에 구원 선포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즉 심판이 온 후에 여호와께서는 다시 자기 백성들을 위해 행동하시고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신다는 논리다. 이런 패턴은 종종 선지서의 일반적인 편집 과정 탓으로 돌려진다. 하지만 그것은 선지자들의 실제 생각과도 관련 있을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는 여호와께서는 결국 자신이 선택한 백성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그들의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 심판과 축복의 순서는 역사 속에서 실현된 언약적 저주와 축복을 바라보는 선지자들의 방식인 것이다.

선지서의 패턴들: 시작전환 ‘이스라엘’의 의미

선지서에서는 이야기를 전환하는 미묘한 방식이 두드러진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단순하고 자연스런 시각 전환이다. 후대 선지서들은 더 이상 심판과 유배를 내다보지 않고 도리어 확고하다. 그렇더라도, 이 선지서들은 여전히 앞에 있는 더 큰 구원을 기대하기에 기본적인 패턴은 변하지 않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언약’과 ‘이스라엘’ 같은 개념이 변하는 방식이다. 선지서는 신실한 이스라엘이라는 개념을 구약시대 마지막에도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미래로 투영한다. 선지서에서 우리는 ‘종말’의 신학인 종말론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종말론은 자주 ‘묵시’의 특별한 영역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종말론은 묵시에 국한 되지 않으며 종말론이 묵시의 본질적인 특징도 아니다. 그러나 다니엘서가 기독교 성경에서 정경의 형태로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선지서가 미래에 대한 관심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지서에서 종말론은 사람들이 현재 사람들의 경험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더 큰 성취를 지향한다는 의미다.

정경적 문맥

이 정경적 문맥은 해당 선지서가 더 광범위한 문맥, 즉 구약과 신약과 관련하여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말하려는 목적이 있다.

○첫째, 선지서 각 책에는 정경 상에서 앞뒤로 마주보는 책들이 있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인접한 책들의 상관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배열한 듯 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둘째, 개별 선지서에는 전체 선지서 안에서의 문맥이 있다.

○셋째, 선지서에는 전체 구약 안에서의 문맥이 있다. 마지막으로 선지서는 신약의 문맥에서 읽을 수 있다.

1장 이사야서

이사야는 임마누엘이라 불리는 아이와 고난 받는 종, 메시아적 왕에 대한 예언 때문에 가장 유명한 선지서일 것이다. 이사야서는 그 표제에서 웃시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 통치 때에 사역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를 책의 저자로 간주하고 있다. 이사야의 주요 활동 시기는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재임 기간으로 보이며, 그는 적어도 701년 즉 아시리아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한 해까지 사역을 지속하였다. 이사야에 관한 첫 내러티브는 그와 아하스 왕과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다.(주전 734-733년) 아하스는 여러 강대국들 사이에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디글랏 부레셀의 봉신이 되기로 서약하고 소로몬 성전에서 약탈한 보화를 뇌물로 바치는 등 강대국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왕하 16:7-8) 아하스가 제국과 관계를 맺은 일은 그가 고의로 예루살렘 성전에 아시리아의 예배 요소들을 도입시켰다는 점에서 단순히 도움을 요청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이것이 이사야가 아하스와 충돌한 이유다. 이사야는 왕과 백성들은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이방의 강대국과의 동맹을 신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사 7:9)

이사야 저작의 최종적으로 중요한 단계는 산헤립 시대에 있었던 유다의 반란이다(주전 705-701년) 여기서 다시 아사야는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조언하며, 이번에는 산헤립이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채 성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시도에 관한 이사야의 한탄은 같은 상황에 있던 히스기야를 향한 말씀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사야의 사역은 줄곧 아시리아의 위협을 배경으로 하였다. 아시리아의 지속적이 위협은 신실함을 요구한 정황이었던 것이다. 유다가 여호와를 신뢰한다면 여호와는 유다를 보호하실 수 있을 것이다. 유다가 주전 587년에 멸망하여 바벨론으로 유배당했을 때는 이사야는 죽은 지 이미 백년에 지난 대였다. 그러므로 이사야서는 오히려 바벨론에 대한 관심이 더 두드러진다. 이는 이사야서의 주요 초점은 이사야가 죽은 후에 맞춰져 있음을 의미한다.

이사야서에 대한 비평적 해석

이사야서는 개별적인 말씀들이 다양한 시기에 만들어 졌으며, 따라서 분명히 원래는 우리가 지금 보는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유포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학자들이 믿듯이, 기록된 말씀의 상당 부분은 선지자가 죽은 후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과정을 통해 별개의 말씀들이 한 권의 책으로 형성되었는가? 이 책은 어떻게 예루살렘의 이사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가?

전통적인 견해는 이사야가 책 전체를 썼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자신이 예언을 할 때 그 예언을 써 내려갔다는 것이다(사 8:16). 그는 실제로 먼 미래에 있을 사건들을 예언하였다(사 40-66장). 그러나 19세기 초 이사야서 독자들은 이사야서가 두 부분으로 나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이사야가 1-39장; 40-66장).

예루살렘의 이사야의 메시지

이사야서의 전체 메시지는 단일한 기초에 근거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높이 들리신’ 유일하신 분이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다른 어떤 지상의 권력이나 신들도 여호와께 도전할 수 없다. 이것이 교만한 모든 것을 향한 강한 정죄가 이사야서 처음에 등장하는 이유다. 정치적으로 이사야는 위기 상황에서 왕들이 국가를 보호하도록 고안된 정치적 수단보다는 여호와를 신뢰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였다. 그는 지도자들은 특정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자신들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일은 여호와의 목적에 따라 전개되기에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반응은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하나님의 최우선 목적은 공의와 의를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세상에서 사건들을 명령하는 능력만 있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품 대문에 특정한 질서를 바라시는 분이다. 정의와 공의는 모든 사회를 하나님의 통치 아래 둔 올바른 질서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징으로서 그런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그분의 결심이다. 하나님의 질서는 강력할 뿐 아니라 도덕적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뒤돌아섰을 때 왜 도덕 질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구조까지 붕괴되는지를 보여 준다. 이사야는 신뢰와 순종에 관한 자신의 말이 여호와가 미래에 자기 백성들을 대하시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중요하다고 믿고 있었다. 이사야서는 자기 백성들이 줄곧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도는 선택하신 자기 백성들로 그런 사회를 형성하는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사야서 1-39장의 구성

우리는 어떻게 주전 700년대 후반에 예루살렘에 살았던 이사야라는 사람과 2백년 후에 상황을 말하는 본문 간의 간극을 연결할 수 있을까? 이사야의 삶과 그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 간에 너무 긴 간격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많은 가능성들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1-12장에서의 심판과 구원 말씀의 교차 배치의 예처럼 신중한 이사야서의 구조화 작업은 편집의 결과다. 이사야 36-39장의 내러티브단락은 아시리아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과 이사야 40-55장에 나오는 바벨론 포로에 대한 예언들 간의 연결 관계를 이루도록 의도적으로 배치되었다. 요시야 시대의 것이든 포로기 시대의 것이든 편집의 목적은, 이사야가 심판을 선언하긴 했지만 이제 그 시간은 지났고 구원의 시대가 왔다고 말하려는 것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사야가 구원을 약속했는데 자기 시대에는 구원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제 그 날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조와 개요

1-12장 예루살렘의 심판과 구속

13-27장 열방 중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의

28-35장 예루살렘의 의로운 왕

36-39장 예루살렘의 구원과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바벨론의 그림자

40-55장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

56-66장 새 하늘과 새 땅

1-12장 예루살렘의 심판과 구속

1:1-5:30 여기에서는 웃시야에서 히스기야 통치 시대까지 선포된 이사야 예언의 배경이 제시된다. 1장은 심판과 구원의 측면을 모두 담음으로써 이사야서 전체의 방향을 설정해 주고 있다. 도입 부분에서 살펴본 대로 이사야의 환상 기사는 선지서 문학 전체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구절이다. 신적 임재 안에 있는 이사야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다른 선지자들의 소명기사와 차별된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 환상을 본다. 이는 이사야서 전체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실로 높이 들리신다. 고난이 찾아오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나 다른 대상을 그 자리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도 하다. 이는 모든 악을 거부하시는 분임을 뜻하며, 이 때문에 이사야는 그분의 임재 앞에서 하찮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13-27장 열방 중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의

일반적인 열방들을 향한 선포에만 할애한 단락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사야서는 다른 선지서들과 공통점이 있다.(암 1:1-2:3, 겔 25:1-32:32, 렘 46:1-51:64) 이 단락들은 종종 열방신탁이라고 부르지만, 거기엔 구원에 관한 말씀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름이 전적으로 정확하지는 않다. 이사야는 유다뿐 아니라 전 세계에 정의와 공의를 세우시는 하나님에 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사야의 전 메시지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단락이다. ‘메시아적’ 주해는 모압 신탁 중에도 다뤄지고 있다. 열방신탁의 주요 단락은 유다 주변의 열방들과 유다를 거스르는 말씀들로 구성된다. 열방핵심 요점은 바벨론을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이신다는 것이다.

28-35장 예루살렘의 의로운 왕

28:1-31:9 이 단락은 심판의 어조를 담고 있는 다섯 개의 화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다. 35장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자기 백성 구원에 관한 장엄한 시다. 맹인, 못 듣는 사람, 그리고 저는 자의 치료는 이 구원이 이스라엘 땅의 단순한 회복을 넘어선다는 것을 상징한다. 35장은 이사야서 전체의 중심부로 볼 수 있다.

36-39장 예루살렘의 구원과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바벨론의 그림자

이 단락은 아시리아의 패배와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을 연결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사야서의 중추 역할을 한다.

40-55장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

기본적인 전제는 이제 구원의 때가 왔다는 사실이다. 40:1-11의 핵심은 6장의 소명 환상과 비슷하다. 하나님은 천상회의에서 천사적 존재들에게 ‘자기 백성들 위로하라’고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으로 귀환은 강력하게 인도하시는 여호와와 함께 광야를 지나 본향으로 돌아오는 이동이다. 종의 노래(사 42:1-4, 49:1-6, 50:4-9, 52:13-53:12)는 구약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다. 종의 노래는 고난을 통한 구원이라는 심오한 개념을 소개하고 공유하고 있기에 자주 이사야 40-55장에서 특별한 형태의 말씀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구별되었다. 이전에 다윗과 맺은 ‘영원한 언약’은 이제 새 시온에 거하는 여호와의 종들에게로 확대된다.

56-66장 새 하늘과 새 땅

이 장들은 40-55장의 구원 주제를 이어간다. 여호와는 예루살렘과 유다(시온)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나서실 것이며, 그들을 자기 땅으로 귀환하게 하시려고 적들을 이기실 것이다. 구원은 세상이 보는 앞에서 일어날 것이고 이방인들의 도움까지 받을 것이다.

신학적 주제들

시온, 하나님의 도성

40-66장의 ‘시온’은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도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거하는 장소가 되는 경향을 보인다.

왕과 메시아

‘이사야서 배후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천상의 왕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많은 예언의 배후에 있는 아주 기본적인 은유임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윤리와 정치와 역사에 질서를 부여하시는 것은 그분이 왕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왕으로 믿은 신앙은 이사야서 전체에 걸쳐 등장한다. 이스라엘의 인간 왕은 자신의 거룩한 백성 중에 정의와 공의를 세우는 하나님의 수단이다.

종과 열방

이사야서 후반부는 구원을 강조하지만, 지배적인 인물은 종이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보지 못하고 듣지 못 한다’ 따라서 청조하여 듣고 세상에 구원의 빛을 선포하는 일은 종이 감당한다. 종의 주제는 열방을 향한 구원 주제와 함께 전개 된다. 이것은 이사야서의 가장 중요한 발전 가운데 하나다. 앞서 살핀 대로, 바벨론 유배로부터의 구원은 단지 이전 삶의 방식으로의 귀환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의로운 백성들이 자기 ‘도성’에 살기 원하신다. 그 백성은 많은 나라들에서 온 백성들로 구성될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함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그분의 방식대로 산다는 뜻이다. 그것은 우리의 권력이 미치는 곳이면 어디서나 우리는 정의와 공의의 요구에 따른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세상에서 우리에겐 절대적 안전에 대한 권리나 이웃의 가난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속적인 번영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다.

2장 예레미야서

예레미야서는 성경에서 가장 긴 책 중의 하나이며,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서 선지자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까지 모두 가장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또한 예수가 누구인지 신약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그 유명한 새 언약에 관한 예언(렘 31:31-34)을 포함하고 있다. 예레미야서는 주전 626년 젊은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부름 받은 때부터 주전 587년 바벨론 군대에 의해 유다가 정복될 때까지, 유다 왕국의 마지막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예레미야서는 유대 백성의 긴 유배 생활이 막 시작하는 시점에 위치한 책이다(주전 587-539년) 이 기간 동안 그들은 신앙의 버팀목이던 성전, 다윗 계열의 왕, 그리고 땅이 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서는 왜 유배라는 끔찍한 운명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했는지를 이해하려고 했던 구약의 책들 가운데 하나다.

구조와 개요

예레미야서는 방대하고 다채로운 책이기에 그 안에 포함된 자료 구분이 누구에게나 명쾌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첫째, 시적 신탁과 연설과 내러티브 간의 구분이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선지자의 새로운 말씀을 도입하는 데 일정하게 쓰이는 표현들이 있다.

○셋째, 소명 내러티브(1장), 소위 위로의 책(30-33장), 그리고 열방 신탁(46-51장)과 같이 구별할 수 있는 자료들이 있다.

구조

1:1-19 예레미야의 소명

2:1-6:30 심판에 대한 시적 선포와 회개 촉구

7:1-10:25 백성들의 거짓 예배

11:1-20:18 언약 관계에서의 거짓: 예레미야와 하나님이 백성의 죄와 씨름

21:1-24:10 유다 왕들과 선지자들의 실패

25:1-38 모든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바벨론도 심판을 받음

26:1-29:32 바벨론이 패권을 잡을 것을 예시하다

30:1-33:26 ‘위로의 책’

34:1-36:32 왕과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말씀을 거절하다

37:1-39:18 유다의 몰락

40:1-45:5 남은 자들의 운명

46:1-51:64 열방 신탁

52:1-34 예루살렘의 몰락과 성전 파괴에 대한 후속 기사

개요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항변하는 모습은 이유는 다르지만 모세, 기드온을 떠올리게 한다.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기로 작정하셨다는 하나님의 대답에 묻히고 만다. 예레미야의 삶은 시작부터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레미야는 성문에 서서 단순한 절기 준수가 참 예배를 대체할 수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7L1-15). 회개하기는커녕, 유다는 계속해서 돌아서는 백성들이다. 거짓이 유다 곳곳에 스며들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죄 때문에, 그리고 그 죄가 가져오는 심판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그의 슬픔은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슬픔을 반영한다. 이 책의 핵심 단락은 25:1-38이다. 우리는 이제 유다가 하나님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그 형벌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날이 ‘70년’으로 제한될 것이고 이는 예언한 시점부터 페르시아에 의해 바벨론이 멸망할 때까지를 의미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사용하여 유다를 벌하신 후에, 바벨론을 벌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유다나 바벨론뿐 아니라 모든 열방을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바벨론에게 임하는 심판은 동시에 유다의 구원이 된다.

신학적 주제들

거짓의 죄

그들은 바알 숭배자들이 되었다. 예언의 시작부터 등장하는 이 주제는 예레미야의 전체 고소의 핵심이다. 기본적인 거짓이 유다 사회 지배층부터 만연하였다.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참된 책임들을 저버렸다. 제사장들은 여호와를 섬기지 않았고, 율법을 가르치지 않았으며, 선지자들은 바알을 의지하여 예언하였고 기초가 썩고 있는데도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는 거짓 메시지를 전하였다. 언약 관계에서의 거짓은 언약의 표시들과 축복들의 상실을 가져온다. 진정한 언약 백성이 되지 못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방 앞에서 자신들의 소명이던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드러내지 못했으며, 따라서 그들의 언약 백성의 지위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심판과 구원

심판에서 구원으로 향하는 이동이 있다. 이런 이동은 분명한 방식으로 책의 표면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신중하게 책을 전체적으로 볼 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18, 19장에 토기장에이 관한 두 이야기를 통해 구원의 방식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유다는 여전히 여호와의 백성이 될 수 있지만 유배 생활을 거쳐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새 언약: 이제 새 언약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첫째, 그것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맺는다는 점이다. 새 언약은 이미 지나가고 없는 형태로 그 백성이 회복될 것을 내다보고 있다.

둘째, ‘갱신되었다’는 의미에서 ‘새 ’ 언약이 아니다. 이 언약은 옛 언약과 같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 언약이다.

셋째, 새 언약에서 율법(토라)은 백성들의 마음에 기록될 것이다. 백성들의 이런 변화는 하나님 자신이 이끄신다.

넷째, 새 언약 백성들은 즉시 하나님을 알고 함께 그 지식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다섯째, 그들은 신실한 공동체가 될 것이기에, 여호와는 이전의 죄들을 잊으실 것이다.

메시아

예레미야서의 주요 주제는 아니지만, 예레미야서는 공평과 의로 다스릴 미래 다윗 계열 왕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다.

정경상의 예레미야서

심판과 구원 간의 연관관계는 또한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인격적인 개입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명해 준다. 심판과 구원이 최종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예수의 삶과 죽음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길은 쉽지 않으며, ‘십자가를 지는 것’을 의미했음을 보여 준다. 또 그 땅의 약속의 온전한 실현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과,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초래되고 또 초래될 새 언약 공동체의 실현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3장 예레미야애가

예레미야애가는 예언의 책은 아니지만 기독교 정경의 예언서에서 볼 수 있다. 예레미야애가는 바벨론에 패하여 유다 백성들이 겪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공포에 관해 탄식하는 책이다. 본문에는 땅과 왕과 성전의 상실을 암시하는 구절들이 있다.

구조와 개요

구조

1:1-22 예루살렘의 통곡

2:1-22 여호와의 진노와 백성들의 슬픔

3:1-66 시인의 고난과 하나님의 긍휼

4:1-22 포위

5:1-22 정복당한 백성

개요

예루살렘은 한때 하나님께 선택받은 도성이었다. 이제 이 도성은 은혜에서 떨어져 나갔고 하나님의 호의의 징표를 잃어버렸다. 이런 재앙 속에서 예루살렘은 한 여인(과부, 공주, 시온의 딸)으로 의인화된다. 의인화는 죄뿐 아니라 백성들의 극심한 고난을 묘사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4장 에스겔서

에스겔서는 선지서 가운데 바벨론에서 행한 말과 행동만을 기록한 유일한 책이다. 에스겔서는 구약 가운데 유배 시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구약의 책에 속한다. 그의 저작과 그가 설교한 백성들 속에서 우리는 성전과 도성, 땅의 상실이라는 끔찍한 사건 때문에 백성들에게 어떤 혼란이 일어났는지를 볼 수 있다. 에스겔의 예언은(외관상) 포로기 말에 사역한 제2이사야의 예언과는 달리 포로기 말의 초기에 해당한다. 에스겔은 예레미야의 활동시기와 더 가깝다. 에스겔은 22년 동안 계속해서 바벨론에서 말씀을 전했다. 제27년, 즉 주전 571년에 마지막 예언이 선포된다. 이는 우리가 가진 에스겔서 안에는 에스겔이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한 후까지 전한 말씀이 포함되어 있음을 뜻한다. 주전 587년 이후에는 더 이상 성전이 멸망할 것이라고 주장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에스겔의 메시지는 분명히 그 기간 중에 변했을 것이다. 이것이 에스겔서에서 볼 수 있는 심판의 말씀에서 구원을 약속하는 말씀으로의 변화를 설명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다.

구조와 개요

구조

1-7장 선지자와 장차 임할 예루살렘의 운명

8-11장 예루살렘의 죄에 대한 환상

12-15장 에스겔, 장로들, 선지자들

16-24장 알레고리와 비유

25-32장 열방 신탁

33-39장 예루살렘의 멸망, 구원 신탁

40-48장 새로워진 도성과 성전, 땅에 대한 환상

개요

에스겔은 제사장으로 소개된다(1:3). 진기한 환상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이상한 생물들과 바퀴 달린 전차 환상은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에 관한 환상으로 이어진다. 환상에 등장하는 요소들 중에는 친숙한 것들도 있다. 서로 끝을 맞대고 있는 날개가 있는 생물들은 성막과 성전의 지성소에 황금 그룹들을 상기시켜 준다. 바퀴 달린 전차는 의식 절차를 진행할 때 법궤를 운반하던 전차를 반향 한다. 그 생물들은 이사야의 환상 속에서 하나님의 보좌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일부 날개들은 펼치고 나머지로는 몰을 가리고 있던, ‘스랍들’과 비슷하다. 하나님의 임재는 불을 통해 표시하고 있다. 움직이는 전차는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머물 수 있는 하나님의 자유를 표현한다. 하나님 자신의 환상은 신비로 둘러싸여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자신이 본 영광의 환상에 압도되며, 그 결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만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에스겔의 여정은 하나님의 여정과 조화된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그분의 영광은 지성소에서 그룹들의 전차가 기다리고 있는 그 집의 문지방으로, 그 후에는 성전의 동문으로, 다시 예루살렘 동편 산으로 이동한다(9-11장).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으셨다.

첫째, 그분은 자신의 정의를 드러내신다.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둘째, 하나님께서는 정결해지고 새로워진 백성들을 창조하려고 하신다. 열방 신탁(25-32장)을 담고 있는 일반적인 이유는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의 권능 안에 있으며 그분의 법에 순종하여 정의롭게 행동할 책임이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신기하게도 예루살렘 멸망의 소식이 끝난 후에 일련의 구원의 예언들이 시작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참회하는 자를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마른 뼈 계곡의 환상(37:1-14)은 완벽하게 새로운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이미지다. 이 계곡은 실제로 존재하는 전쟁터일 수 있다. 다시 조합되는 뼈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전형적으로 에스겔이 사용하는 강한 이미지다. ‘숨’, ‘영’이 뼈들 속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의 첫 창조를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무리 가망 없는 죄인들이라도 그들을 구원하고 새롭게 하실 수 있다. 이는 후대에 의미하는 바인 개인적인 부활에 관한 교리가 아니지만 그 배후에 자리 잡은 전제는 둘 다 똑같다. 즉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재창조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40-48장에서 에스겔서는 그 중심에 갱신된 성전을 갖춘 미래의 이스라엘에 대한 환상을 마무리되고 있다. 성전 자체가 묘사되고 공동체의 삶을 위한 규례들이 주어지며, 끝으로 환상이 온 땅으로 확장되고 있다.

신학적 주제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에스겔은 유배는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며 그것 역시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 하나님은 모든 이들이 자신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시려고 이 모든 일들을 하실 것이다. 예레미야처럼 더 젊은 선지자 에스겔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우선권과 그분을 영접하는 데 백성들의 책임성을 모두 역설하고 있다.

하나님의 임재

에스겔서는 이 주제로 책을 시작하고 또 마무리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주제는 에스겔서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된다. 이 선지자에게 유배의 의미에 관한 무제는 하나님의 임재에 관한 문제였다.

에스겔은 그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유배의 위기를 겪는 동안 내내 하나님의 임재의 연속성을 확립하고 있다.

죄, 심판, 정화

에스겔은 과거와 깨끗이 단절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러 세대 동안 하나님께 반역하였으며, 지금도 그 죄 때문에 심판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죄는 종교적인 동시에 도덕적, 즉 언약법을 지키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열방으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이 허약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열국 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 행위는 정화 혹은 제의적 정결이다.

정치적/형식적, 영적 종교

선지자와 제사장인 에스겔- 에스겔은 구약의 정치 신학과 영성 신학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오늘날엔 대개 공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에 하나님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무슬림들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보다 좀 더 분명히 이 근본적인 요점을 이해하였다.

오늘날 하나님과 국가의 관계에 관한 무슬림들과의 대화에서의 이슈는 정치가 본질적으로 신학적인인지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그것이 신학적인가이다.

그런 연관성 속에서 우리는 에스겔의 미래 환상의 초월적인 차원을 관찰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은 결국엔 하나님께서 친히 직면한 지상의 체제가 주는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의 왕국을 세우실 것임을 의미한다.

정경상의 에스겔서

우상숭배와 사회적인 죄들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그는 선지자적 사고의 주요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신명기처럼 에스겔서는 참된 순종을 주장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통치자들과 관리들을 모세 법의 권위 아래로 강하게 이끌고 있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처럼 에스겔서는 이스라엘의 예배 생활의 구성과 유지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있다. 에스겔서는 여호수아처럼 땅을 부족들에게 분배하고 있다. 따라서 에스겔이 구약신학에 특별히 기여한 것 중에 하나는 철저한 윤리적, 영적 갱신이라는 선지자적 신학을 수용하고, 그것을 하나님 백성의 지속적인 정치, 종교적 삶을 위한 환상에 이용한 것이다. 또 다른 기여는 그가 하나님과 악과의 취후 갈등(38-39장), 즉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마곡의 곡의 전쟁의 묘사한 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최후 승리가 즉각적이지 않고 불특정 시대 이후에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증하고 있다.

5장 다니엘서

다니엘서에 기록된 사건들은 바벨론 유배 기간에 일어난 일들이다. 여호야김 제3년은 있는 그대로 보면 주전 606년이다. 따라서 다니엘서의 연대기를 따를 때 유배 시기는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과 상당히 근접해진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초점은 그보다 후대의 사건이다. 즉 주전 2세기에 그리스 셀류키드 제국 아래 특별히 셀류키드 왕,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에 의한 유대인들의 박해를 초점으로 하고 있다. 안티오쿠스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림푸스 제우스 신상을 세움으로 이 모욕을 완성하였다. 이것이 소위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구조와 개요

구조

1:1-21 다니엘의 친구들은 바벨론에서 인정받지만 신실함을 잃지 않았다.

2:1-49 느부갓네살 왕의 꿈과 그 의미가 다니엘에게 계시된다.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을 예언한다.

3:1-30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버리기보다는 순교에

직면하지만 구원을 받는다.

4:1-37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이 두 번째 꿈을 해석한 후 하나님을 찬양한다.

5:1-31 다니엘이 글을 해석한 후 하나님께 도전하던 벨사살 왕은 죽는다.

6:1-28 다니엘은 하나님을 포기하는 대신 위험에 처하지만 구원받는다.

7:1-28 하나님은 꿈에서 다니엘에게 연속되는 왕국들을 보여 주시고,

이어서 하나님 나라와 그 ‘성도들’을 보요 주신다.

8:1-27 다니엘은 그리스 제국에서 등장하여 결국 하나님에게 멸망하는

한 독재자에 대한 환상을 본다

9:1-27 다니엘이 이스라엘을 위해 회개기도를 한 후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독재자가 정복당할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10:1-12:13 한 천사가 나타나 다니엘에게 마지막 대에 백성에게 일어날 일을

보여준다. 안티오쿠스 4세까지의 역사에 대한 개괄은 의인들의

최종승리에 대한 약속으로 이어진다.

개요

○다니엘서의 첫 절은 이 책의 배경을 바벨론 유배 기간으로 삼고 있다. 유배는 성전 보물이 바벨론에게 약탈당하는 것으로 상징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가장 탁월한 젊은 유대인 유배 자들을 바벨론 궁중과 그곳 문화와 삶의 방식 안으로 동화시키려는 시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2장에서 다니엘은 이집트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준 것으로 유명한 요셉과 같은 역할을 맡게 된다. 요셉처럼 다니엘도 이방 왕국에서 권력을 보상으로 받는다. 꿈이 권세에 대한 것이듯 꿈 해석도 권세에 대한 시험이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꿈과 그 꿈의 의미를 드러내신 것은 이 책의 핵심적인 사건들 중 하나다. 지혜와 지식을 주는 이는 바벨론의 마술사들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느부갓네살에게 주어진 메시지의 목적은 모든 인간의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그 권세와 위대한 문명에 대한 왕의 자만은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하나님께 경배한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정한 핵심은 유대 청중에게 그들에 대한 이방 권력의 지배가 머지않아 종식될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격려하는 데 있을 것이다.

○3장에서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권세와 영광을 드러내려고 황금 신상을 세운다. 다니엘의 세 친구의 대답은 다니엘서에서 가장 중요한 강조점 가운데 하나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세가 자신들을 독재자에게서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니엘의 기도(9:4-9)는 그 문학적 형태에 있어서 공동체 고백이다. 이 기도는 특히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에스겔의 언어를 취하고 있다.

○12장에서는 유배로부터 구원받을 기대가 부활의 소망과 결합되고 있다. 신실한 자들은 무시무시한 핍박을 견뎌내야 하겠지만 결국엔 신실한 백성들은 구원받을 것이다. 박해 중에 죽은 신실한 자들은 남은 자들과 함께 ‘영생’으로 부활할 것이다. 다니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승리는 특별한 때에 성전의 정화를 통해서 도래할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마무리된다. 다니엘은 그 때 그의 신실함으로 인해 상을 받을 것이다.

신학적 주제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왕권이라는 개념은 다니엘서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사야는 이미 하나님의 통치가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나라들(아시리아-바벨론의 순서대로)의 흥망성쇠에까지 확장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스겔은 곡에 관한 환상에서 눈앞에 닥친 시대를 넘어서 장래에 있을 하나님과 열국 간에 일어날 갈등을 보았다. 다니엘은 이제 역사 속의 하나님의 통치를 연속적인 네 나라들과 이어지는 다른 종류의 나라의 설립이라는 도식 속에서 제시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왕권이다. 즉 하나님은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하나님은 왕들에게 권력을 주신다. 다윗 계열의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모든 왕들에게 주신다. 하지만 다니엘은 일반적인 원칙을 세운다. 자기 권세를 인간에게 맡기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보편성이 다니엘서에서는 하나님에게 사용할 이름들의 선택을 통해서 강조된다. ‘모든 신들의 신, 모든 왕의 주재’ ‘지극히 높으신 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같은 이름들이 다니엘서에서 쓰인 전형적인 호칭들이다.

○셋째, 다니엘은 하나님의 왕권뿐 아니라 신약에서 중요하게 되도록 발전할 그분의 왕국도 알고 있다. 인간 왕국의 계승이 중단될 때,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망하지 않을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통치

다니엘서에서는 인간에게 놀랄 만한 존엄이 주어진다. 인간의 높은 지위는 하나님께 대항하는 가장 최악의 죄로 인해 부패될 수 있다. 에덴동산의 죄는 왕들의 교만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하나님의 신실함과 인간의 신실함

다니엘서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역설하고 그의 백성의 신실함도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고토로의 복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유배 자체에서 행해진다. 이제 다니엘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언제든 하나님의 요구에 대항하여 자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듯 보이는, 가시적인 왕들의 권력으로부터 자기 백성을 보호하실 것이고 또 하실 수 있는지가 이유가 된다.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풀무불의 죽음으로부터 친구들을 구원하신 것과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구원하신 것으로 입증된다.

정경상의 다니엘서

유대 정경에서 다니엘서는 성문서에 속하지만, 구약정경의 기독교적 형태에서 다니엘서는 선지서들과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다니엘서를 선지서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은, 성경 어디에도 그를 ‘선지자’로 부른 곳은 없지만 우리가 다니엘서를 선지서의 강조점들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책으로 생각하게 해 준다.

그 연관성은 다니엘의 참회기도 속에서 형성된다. 이 기도는 70년 유배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재해석하고, 선지자의 말에 청종하지 않는 백성들의 과오를 고백하고, 선지자의 예언은 결국에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다니엘은 중재자,즉 공동체를 대신하여 효과적으로 기도하는사람의 역할을한다.

12 선지서

호세아로부터 말라기까지 12선지서들을 자주 단일 저작으로 간주하면서 12선지서하고 불렀다. 고대 문학에서 이렇게 한 몇 가지 근거들이 있다. 벤 시라(Ben Sir)는 선지자들을 칭송하면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에 이어서 순서대로 열두 선지자들을 언급하고 있다. 구약 책에 대한 일부 초기 계산법은 전체 합계를 현대 영어성경에서 나열한 39권이 아니라 22권이나 24권으로 제시한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12권을 한 권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6장 호세아서

호세아서는 12선지서 혹은 다른 표현인 소선지서(호세아-말라기)에서 맨 앞에 있다. 순서로는 맨 처음이지만 연대기가 가장 빠른 것은 아니다. 호세아가 주전 750년경에 예언하기 약 10년 전부터 아모스가 예언했기 때문이다.

호세아서는 호세아 왕 통치 말(주전 732-722년)과 왕국 몰락까지의 북왕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호세아서에 암시된 사건들은 주전8세기 중반경부터 왕국의 몰락까지를 망라한다. 여로보암 2세(주전786-746)는 여전히 북왕국의 왕위에 있으면서 기나긴 번영의 통치의 끝을 향하고 있었다.

호세아는 아시리아의 위협에 대한 북왕국의 전망을 제공하고 있다. 그가 거명하는 성읍들은 대부분 사마리아(북왕국의 수도)와 벧엘과 길갈이다. (예루살렘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며 심지어 유다의 어떤 성읍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구조와 개요

1-3장 호세아의 결혼과 이스라엘의 불성실

4:1-7:16 백성들과 제사장들, 지도자들의 죄

8:1-11:11 거짓 예배

11:12-14:9 과거와 미래

신학적 주제들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첫째 계명은 여호와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명령과 더불어 호세아서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호와만을 경배해야 한다는 이 주장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심과 이집트로부터의 탈출에 대한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실함과 인애

하나님의 신실함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앞서 언급한 선택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것이 호세아서의 지배적인 은유인 결혼 은유가 말하려는 요점이다. 헤세드는 호세아서의 신학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핵심적인 용어로 대두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상호적인 성격의 용어다. 즉 헤세드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올바르고 공평한 관계를 세우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들을 동원하기를 추구할 것이다.

심판과 사랑

하나님의 딜레마- 한 분 하나님께 대한 호세아의 믿음이 주는 마지막 암시는 심판과 사랑이 긴장 가운데 한데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구약의 가장 위대한 역설 가운데 하나다. 자신의 본성을 따라 심판을 명령하시지만, 그는 거룩하시기에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호 6:6).”

7장 요엘서

요엘서는 표제에 저작 연대를 언급하지 않으며, 그 내용에 비추어 언제 기록되었는지를 분명히 알 수도 없다. 12선지서 가운데 두 번째로 나오는 것을 보면 초기 유대 전통에서는 이 책을 오래된 선지서 가운데 하나로 간주했던 것 같지만, 이것 역시 분명하지 않다. 연대에 관한 분명한 증거가 없는 것을 이 책이 가장 이른시기의 책들 가운데 하나란 뜻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 책을 가장 나중에 기록된 책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논쟁들은 본문이 침묵하는 부분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엘서는 왕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침략해 오는 군대가 어느 나라인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북 왕국 역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유다만 언급하고 있다. 메뚜기 재앙이 요엘서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요엘서는 문제로 시작하고 해결로 끝난다. 하지만 그 해결에는 유다를 향한 심판과 유다를 압제한 열방의 패배가 포함된다.

구조와 개요

1:1-2:17 탄식과 회개의 요청

2:18-4:21 구원의 약속

요엘의 탄식은 그 백성 일반, 취하는 자들, 농부들, 그리고 제사장들을 향한 각성의 요청이다. 그는 재앙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거나 고통당할 백성을 식별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요엘의 묘사는 여호와의 날은 구원의 날이 아니라 재앙의 날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 아모스의 묘사와 흡사하다. 탄식에 이어 회개하라는 호소가 이어지며,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너희 겉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는 요구는 선지서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외적인 종교적 활동의 내면화 작업이다. 2장에서 예언은 위협에서 약속으로 전환된다. 메뚜기에 의해 초래된 기근은 풍요로 바뀔 것이다. 이 새 시대의 환상에서,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가 회복될 것이다. ‘모든 육체’에 영을 부어 주는 것이 이 회복의 한 국면이 될 것이다.

신학적 주제들

전능하신 하나님

요엘서는 우리가 다른 선지서들에서 볼 수 있는 특정 패턴을 따르고 있다. 즉 심판의 선언, 회개 요청, 구원의 약속이라는 패턴을 따른다. 이것의 기저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한 분만이 모든 피조 세계를 다스리시는 전능한 분이시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여호와의 날

요엘서는 책의 각 하위단락마다 ‘여호와의 날’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회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회개를 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여호와는 긍휼과 자비와 변치 않는 사랑으로 반응하신다. 마땅한 심판은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자연과 역사

자연의 세력을 통제하시는 여호와에 대한 요엘의 묘사는 요엘서가 선지서 신학에 기여한 핵심적인 공헌 가운데 하나다.(군대를 묘사하기 위해 메뚜기 은유를 사용한 것은 여호와께서 자연 세력까지 지배하신다는 것을 말함)

요엘은 하나님의 영(Sprit)의 선지자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영을 주실 것이다. 끝으로 요엘은 그 영을 불특정한 미래의 시간을 의미하는 ‘그 후의 날들’(the latter days)과 연관시킨다. 그리고 그는 그 영을 모든 열방이 심판을 받는 중에 누리게 될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의 구원과 연결시킨다.

정경상의 요엘서

요엘서는 신약에서 사용한 마지막 때에 관한 언어를 제공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신약에 나타나는 가장 잘 알려진 요엘서의 반향은 사도행전 2:17-21에 언급된 성령의 부어주심이다. 거기서 요엘서의 환상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래한 새 시대에 적용되도록 재해석되고 있다.

8장 아모스서

아모스는 선지서 선집 가운데 거의 확실히 가장 이른 시기의 선지자일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 남쪽 16Km 떨어진 유다 드고아에 거주하였다. 그의 유다 백셩은 7:12에서 벧엘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에게 격노하여 유다로 돌아가라고 마하는 데서도 언급되고 있다. 우리는 그가 목자였다는 것과 그가 자신을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 묘사하는 것을 본사. 이 정보는 그가 독립적이고 부유했음을 말해 줄 것이다. 아모스에게 있어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남쪽 출신이면서도 전적으로 북왕국을 향해서만 예언했다는 데 있다.

구조와 개요

1:1-2:16 아모스가 이방 나라들-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다- 을 고소하다

3:1-6:14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 연설과 화 신탁들

7:1-9:15 환상들

신학적 주제들

정의와 공의

하나님의 백성의 ‘선’ 선지서에서 아모스는 이 주제에 관한 핵심적인 해설자다. 그 주제에 관한 선지자의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정의의 사랑과 결합되어 있는 5장에 있다. 마찬가지로 그런 사랑 없는 예배는 전적으로 헛된 것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정의와 공의는 생명으로 인도한다. “나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그 요소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감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밖에 못했습니다.

선지자와 그리스도는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