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후원 사역†/선교이야기

라브라도의 성인 윌프레드 그렌펠(wilfred Grenfell)

예림의집 2009. 10. 16. 07:02

라브라도의 성인 윌프레드 그렌펠(wilfred Grenfell)



 대부분의 의료 선교사들이 적도의 기후 아래서 열병, 나병과 기타 열대성 질병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을 때, 가장 헌신적이고 위대했던 의료선교사 중의 한 사람이었던 윌프레드 그렌펠은 북미의 얼어붙은 라브라도 해안에서 의료 사역을 수행하고 있었다. 비록 그는 의사였고 의료선교사로서 파송을 받았지만 의료 이외에도 많은 분야로 사역을 확대했다. 그로인해 선교사로서의 사명에서 벗어났다는 비난을 듣기고 했지만 그는 선교사 사람들을 진정으로 돕고 싶어했다.


 1865년 영국의 체스터 부근에서 태어난 그는 바다를 동경하며 모험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꿈꾸며 자랐지만 학업 때문에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영국 국교의 영향아래 자랐지만 형식적뿐이던 그는 런던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가다가 우연히 무디 부흥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무디의 구원으로의 초청과 C.T. 스터드와 J.E.K 스터드의 간증에 깊은 감명을 받고 회심하게 된다. 회심을 한 후 그렌펠은 왕립 원양선교회의 이야기를 듣고 즉시 관심을 갖게 된다. 그 선교회는 북해로 파송되어 배에 동승하여, 영과 육이 모두 거친 어부들을 돌볼 한 명의 의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렌펠은 이에 선뜻 응했고, 의료선교사로서의 일생이 시작되었다.


 그렌펠의 초기 선교사역은, 바다에 가고 싶었던 어렸을 적의 꿈이 이루어져 기뻤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나 의료 기술면에서도 발전을 이룬 시기였다. 사역을 시작했을 때 그는 그 일이 자신에게 꼭 맞다고 생각했지만 1892년 북미의 거칠고 험한 라브라도 해안을 여행하면서 그의 꿈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 곳 주민들은 단지 생존하기 위해 거친 환경과 싸우며 어떤 희망도 없이 살아야 했는데, 그들을 돌보아 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렌펠은 그들의 육체적, 영적 갈급함에 깊은 도전을 받고, 선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생을 오래도록 잊혀진 이 사람들을 위해 바치기로 결단한다.


 그렌펠은 처음에는 북해에서 했던 대로 의료선을 타고 뱃사람들 사이에서 일했으나 곧 아무런 의료 혜택이 없이 흩어져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위험한 암벽해안을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항해해야 했으며,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들어와 있던 성공회교회의 암묵적인 반대에 부딪쳐야 했다. 또한 다양한 경제활동에도 관여함으로 인해 상인들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그렌펠의 입장에서는 상인들은 주민들의 최대의 적이었으며, 별다른 수단이 없는 어부들을 농락하여 착취하는 행위에 분개했다. 그렌펠은 지역사회의 경제활동에 깊이 관여하여 협동조합을 만들고, 모피를 중개하고, 순록을 수입하고 제재소를 세웠으며 면화 사업을 소개하였다. 그가 이렇게 경제활동에 관여하자 선교회에서도 달갑게 보지 않게 되었다. 미국 등에서 그의 명성이 알려져서 개인 후원금이 쏟아지자 선교회와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어 결국은 왕립 원양선교회에서 독립하게 된다.


 기독교 사역으로만 시작했던 라브라도의 봉사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순수한 인도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는 기독교적인 삶이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고, 참된 기독교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복음전파를 위해 헌신하지 않거나 아무런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게 했다. 그는 비록 1940년에 숨을 거두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라브라도의 해안에 그의 정신은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