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특유의 여성이슬람사원(女清真寺)과 여(女)아홍(阿訇)
중국의 이슬람교는 일반 이슬람교와 다른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성이슬람사원(女清真寺)과 여(女)아홍(阿訇)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세계 이슬람교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중국 이슬람교만의 특징이다. 중국에서 이러한 여성이슬람사원은 그 숫자도 적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역사도 매우 오래되었다. 주로 중원일대에 분포하고 있는데, 이슬람이 번성하고 있는 신장(新疆)과 칭하이(青海)성 지역에서는 오히려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여성이슬람사원
여성이슬람사원이란 말은 청나라 광서(光 绪) 4년(1878) 허난(河南)성 카이펑(开封) 왕찌아(王家)거리의 여성이슬람사원 비문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청나라 말기부터 민국초기까지 세워진 여성이슬람사원은 여학교(女学)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였다. 대다수의 무슬림 여자들은 여성이슬람사원이 여학교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학습활동장소가 여성이슬람사원(女寺 또는 清真女寺)이라 불리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리고 이러한 명칭에는 남성과 대등하다는 평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다. 중원일대의 무슬림 사회에서는 오히려 여학교라는 명칭을 더 선호한다.
여성이슬람사원이 당시에 담당했던 역할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여성무슬림들의 예배와 신앙활동, 목욕을 위한 장소였다. 둘째, 무슬림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한 기본적인 종교교육이 이루어졌으며 여아홍의 배양을 위한 학습의 장소가 되었다. 셋째, 무슬림여성들의 기타 신앙 활동 및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경전통독, 죽은 여성들을 위한 염 등) 이외에 유치원과 양로원과 같은 기타 사회복지시설 등의 사회적인 기능이 그것이다. 하지만 새로 세워진 여성이슬람사원들은 그 역할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단지 예배를 위한 장소로 사용되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였으며 일부는 교육 기능을 가진 곳도 있었다.
여성예배당(女礼拜殿, 女大殿)은 무슬림여성을 위해 세워진 예배장소이다. 그리고 예배당 옆에 여성들을 위한 목욕탕이 있다. 민국시기에 여성예배당은 여성들이 출입할 수 있는 별도의 문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80년대 이후 새로 신축된 여성예배당은 남성들과 같은 문을 사용하여 출입할 수 있게 했다. 여성예배당은 이슬람사원의 부속 건물일 뿐이며, 그 기능은 단지 예배를 것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여아홍을 초빙하지도 않았고 여성이슬람사원이 갖추어야 할 기능도 없었다.
여학교는 여자경전학교(女子经学)로 불리웠다. 전문적으로 무슬림여성들을 위해서 세운 종교지식을 습득하는 학교였다. 여학교란 말은 청나라 강희시대(1690년)에 세워진 “경학계전보(经学系传谱)”에서 최초로 찾아볼 수 있다. 청나라 중.말엽에 중원의 여학교가 여성이슬람사원으로 변화되면서 무슬림들은 그것을 여학교(女学)에서 여성사원(女寺)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학교라는 명칭도 함께 사용되었다. 1995년 2월 몇 몇 학자들이 중국에서 가장 초기에 세워진 이슬람사원인 카이펑왕찌아거리의 여성이슬람사원을 방문했을 때, 큰 문 입구에 걸려있는 “清真女学堂” 이라는 현판을 보고 누가 쓴 것인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당시 70세에 가까운 여성이슬람사원 관리회의 지도자는 “이 현판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것으로,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도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다른 여성이슬람사원은 모두 이슬람여학교(清真女学)라고 하는데 이곳만 유독 이슬람여학당(清真女学堂)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카이펑 외에 정저우(郑州), 쩌우커우(周口) 등지에 있는 적지 않은 여성이슬람사원들은 여전히 여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여학교라는 이름을 선호하는 무슬림여성들은 대체로 여성이슬람사원의 역사를 중요시 여긴다. 정저우시 타이저우(兌州)의 여성이슬람사원의 명칭은 최근 몇 년 동안의 변화 중에서 흥미로운 점을 보여준다. 이 사원의 원래 명칭은 당연히 여학교였다. 그런데 신축되면서 이름을 여성이슬람사원으로 바꾸었다. 이후 1996년 새롭게 누각을 보수하면서 이름을 다시 이슬람여학교로 바꾸었다. 사실 중원지역에서 여학교라는 명칭은 실제로 여성이슬람사원이라는 명칭과 별반 차이가 없다. 여성 교육은 단지 그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일 뿐이다.
여성이슬람사원과 여아홍
여성이슬람사원에서 이루어지는 도덕 교육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가정도덕(家庭道德), 둘째, 개인수양(个人修 养), 셋째, 사회도덕(社会道德)이다. 가정도덕은 여성이 가정에서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데, 가장 먼저는 남편을 공경하고 섬기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시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이다. 이슬람교가 부부 관계를 중시 한다는 것을 구현한 것이다. 이렇게 부부관계를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는 원칙은 유교가 부모를 중시하고 자녀를 낮게 여기며 부모의 위치를 최상위에 올려놓는 전통 관념과 명확히 구별된다. 하지만 아내가 남편을 하늘로 여기는 등의 유교적 전통 관념의 영향을 받아서 아내가 남편을 섬기며 남편 말에 완전히 복종해야 하는 것을 강조한다.
무슬림 여성들의 개인 수양의 표준은 주로 이슬람교의 준칙에 근거하여 확정한다. 관련된 내용은 대부분 이슬람교 경전이나 교훈집 으로부터 가져온다. 개인수양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거룩(节)’이다. 무슬림의 마음속에 ‘거룩’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외적으로는 물질에 대한 부분에서의 정결함과 내적으로는 마음의 순결,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도덕적 고상함을 말한다.
여아홍이란 말은 청나라 광서 4년(1878년) 카이펑의 왕찌아거리 여성사원 비문에서 최초로 찾아볼 수 있다. 중원지역의 무슬림은 일반적으로 여성사원의 종교사무를 주관하는 여성을 존칭하여 아홍이라 불렀다. 하지만 각지의 상황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산둥(山 东)성 지난(济南)의 무슬림들은 종교사무를 책임지는 여성들을 아홍과 스냥(师娘)으로 구분했다. 이들은 여성사원에서 정규의 경전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옷을 입고 포백을 거는 의식을 거행한 여성은 아홍이라 하고, 일반 스냥 가정에서 종교교육을 받으면 또 하나의 스냥이 되었다. 여아홍의 직책은 주로 여성사원의 종교사무를 관장하고, 종교지식을 전수하는 것이다. 스냥은 단지 죽은 여성들의 염과 장례와 관련된 일들을 담당한다. 시베이(西 北)지역의 무슬림은 여학교와 여성사원에서 교육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여성을 높여서 아홍이나 또는 여교사라고 부른다. 윈난(云南)지역의 무슬림은 80년대 이후 남성과 똑같은 종교교육을 받은 여성을 아홍으로 하였고, 전통 여학교 교육을 받은 여성은 스무(师母)라 불렀다.
여아홍을 초빙하는 방법은 남아홍과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경전학교를 열 수 있는 여아홍이 하이리판(海里凡)1)을 모집하고 -시베이와 허난지역은 만라(滿拉)2)라고 부르며 기초종교교육을 마치고 경전대학을 열어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가리킨다.- 여아홍을 양성한다. 경전대학을 여는 여아홍을 무슬림들은 교장(敎长)으로 높여 부른다. 몇 몇 지역의 여교장은(예를 들어 산둥성 지난 등지) 시신을 염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여성은 반(班)을 만들지 않고, 예배(salta al Idayn,会礼3))가 없기 때문에, 전문교육을 받은 적이 있고 종교직업에 종사하는 무슬림 여성이 여아홍, 여교장, 스냥이 될지라도 이마무(依 玛目, Imam : 지도자 또는 예배 인도자)라 하지는 않는다. 닝샤(宁夏)의 링우(灵武)·우쫑(吴忠)일대에 새로 세워진 여성사원 중에는 남성이 여성사원의 이마무를 맡고 있는 경우도 있다. 총싱(崇 兴)진(镇)의 여성사원의 이마무는 여아홍의 아버지가 맡고 있다.
여성이슬람사원의 숫자와 분포
그렇다면 중국의 여성이슬람사원의 수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까지는 확실한 답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대략의 숫자를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떤 여성사원은 남성사원의 부속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남성사원에서부터 분리되어 나온 독립적인 여성사원도 있고, 원래 독립적인 여성사원이였던 것이 나중에 가서 남성사원에 복속된 것도 있다. 따라서 통계를 내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대략적으로 중국에는 약 400여 개의 여성이슬람사원이 있다. 비교적 많은 지역은 중원이다. 80년대 이후 원래 있던 여성사원이 지속적으로 보수 또는 중건(重建)되었다. 원래 여성사원이 없던 무슬림권 지역도 여성사원 또는 여성예배당이 신축되었다. 여성사원이 비교적 많은 곳은 허난(河南), 허베이(河北), 산둥(山東), 산시(山西)성 등이며 원래 여성사원이 아예 없거나 소수만 있는 시베이(西北), 시난(西南) 지역 등에도 일부 신축되었다. 1949년 전과 비교해보면, 시베이지역의 여성사원의 숫자는 크게 증가하였고, 시난지역은 주로 윈난(雲南)에서 여성사원이 신축되었다. 하지만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장강(长江)이남 지역에 있던 여성사원은 대부분 보수되지 못했으며 여성사원의 숫자 또한 역사 이래 현저하게 줄고 있다. 둥베이(东北) 지역은 일부 여성사원만을 보수하였고, 어떤 곳은 여예배전을 증축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여성사원의 주요 분포 지역과 역사적인 상황은 비교적 변화가 크지 않지만 시베이(西北)와 시난(西南)지역은 현저한 발전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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