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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 칼럼 제1054호 /거룩한 바보

예림의집 2009. 4. 6. 16:38
창골산 칼럼 제1054호 /거룩한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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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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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룩한 바보

 

    

   바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누가 내게 “ 이 바보야 “ 라고 말한다면 선뜻 “ 그래 난 바보다 “ 라고  받아 넘길 수 있을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 까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보 같은 짓을 하고도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약 2주전 친구와 함께 브랜든 이라는  미국인 목사님의 성경공부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주제가 “비즈니스”였는데 이 분은 목사님이 되기 전  미국에서 화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까지 받고,  화학계통의 세계기업 랭킹 2위쯤 되는  다국적 기업인 듀퐁사에 근무했답니다.

 

    한참 잘 나가던 시절에 그는 “정직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회사에서 해고 시켜 버렸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헤프게 웃더라고요!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 해고 되고 나니 기뻤습니다 “ 라고 말할 때는 역시 야릇한 미소를 띄우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참 순진한 바보로구나 !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목사님이 되기 전까지 가진 돈도 꽤 있었고 좋은 차도 가지고 있었는데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들 에게 돈도 나눠주고  차도 주었다고 합니다.

 

     사도바울 선생은 생계를 위하여 천막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생계를 위하여 한국여인과 결혼하여(나이 지긋한 미혼임)  미국을 들어가 한국학생 6명 정도를 집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함께 하며 살면 생계유지가 될 수 있으니 그렇게 살면서 목회를 하고 싶다는  소박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국에는 직업을 가진 목사님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질에 욕심 없고 소탈한 젊은 목회자에게서 거룩한 바보의 모습을 보고는  머릿속에 잔잔한 파동이 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바울선생은 많은 것을 버렸습니다.   신분, 학식, 지위, 명예 등 세상이 부러워하는 자랑들을 버리면서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했습니다(빌 3:8).   바울 사도는 이런 것들이 없어서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가지고 있어 누릴 수 있는 것을 버린 것입니다.  바보에게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욕심이 없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은 물론이구요, 명예에 대한 욕심도 없습니다.  그래서 포기하는 것도 잘합니다. 그리고 별로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수모를 당하여도 못 견뎌 하지도 않습니다. 천한 일을 하는 것을 개의치도 않습니다.


    자기를 소모하고 희생하는 사람들 입니다. 남이 싫어하는 것을 하면서도  별로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습니다. 희생을 묵묵히 잘 받아 드립니다.  바보들은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결정적인 순간 침묵하는 편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 또는 운명에 대해 불평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저 받아 들이는 편입니다.

 

    이제 이쯤 되면 누가 머리에 떠 오르시나요?  혹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아니면 역사적인  인물 중에서?      카나다에 장애인 10여명이 모여 거주하고 있는 라르쉬라고 하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라르쉬는 불란서어로 방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 아담 “이라는 정신지체를 가진 청년이 있었습니다.  간질발작이 잦았고, 말을 할 수 없으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항상 곁에서 누군가 돌봐 줘야 하는 장애인 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아담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며, 24시간 봉사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아담은 무능력자이고, 장애인 이며,  무익한 존재 였으며, 바보 였읍니다.  그러나 헨리 나우엔은 아담을 만나고 나서는  예수님의 형상을 그대로 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담에게는 신비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곁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평안을 느끼고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 그의 식탁에 초대받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좋아했습니다. 
헨리의 친구인 어느 교수님도, 부유하고 학식, 교양이 많은 어느 귀부인도, 18년의 봉직 후에 안식년을 맞았던 신부님도  아담을 만난 후에 그들이 평안을 되찾았고  아담에게서 큰 교훈과 위안을 받았으며 삶이 바뀌었다는 고백을 털어 놓았습니다. 

 

   모든 좋은 것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아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함께 있어 주는 것, 휠체어를 밀고 식당이나 학습장에 가는 것,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것들 외에는 없었지만  아담은 그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 주곤 했다고 증언 하고 있습니다.


    헨리가 예일 하버드에서 교수로 가르치다가  갑자기 장애인 몇 명과 봉사자 몇 명이 모여 사는   라르쉬 공동체에 들어 가겠다고 말했을 때  그의 동료교수들은 그의 바보 같은 결정에 놀라면서 극구 말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공동체 내에서 아담과 몇 년간을 함께  살면서  그를 스승으로 만났고 친구로 또 죄를 깨닫게 하고   참다운 삶의 방향을 가르쳐 준 안내자 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사회가 어지러운 것은  고상한 신분의 상류인사들이나, 학식이 풍부한 지식인이나,  존경 받을 만한 경제인, 돈 많은 부자, 가르침을 받을 만한 원로가 없어서가 아니라   거룩한 바보들이 없어서 인 것 같습니다.   

 

    현란한 말과 교훈으로 갈 길을 더욱 어지럽게 하기 보다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죄 사함의 큰 능력을 위하여,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버릴 것 다 버리고, 천한 모습으로 내려 가셔서,   불의한 권위에 까지 라도 순종하심으로  바보의 모습으로 삶의 본보기를 보이신 예수님처럼  바보들이 많이 나와 바보들의 행진이 오늘도 이어지면   바보 장애인 아담에게서 보았던 예수님을,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따른다면 우리사회가 더 밝아 지지 않을까요?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칼  럼  필  자

오인섭

서울 도봉구 쌍문동 

oiskore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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