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그 슈미트(George Schmidt)
게오르그 슈미트는 남아프리카에서 사역한 독신 선교사이다. 그는 1709년 모라비아 지방에서 태어났고, 16세 때 모라비아 형제회의 부흥회에 참석하여 회심을 경험하였다. 그 후 그는 헤른후트로가의 동역자 두 명과 함께 복음전파를 위해 파송되었다.
슈미트가 첫 번째로 고향인 모라비아에서 사역할 때, 그는 로마 카톨릭의 핍박으로 인해 투옥되기도 하고 그의 공동체는 어려움을 겪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그는 더욱 핍박이 심한 오스트리아로 가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관헌들의 눈을 피해 전도활동과 집회를 은밀히 진행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발각되어 그는 또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3년 간의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동역자들은 열악하고 형편없는 감옥상황으로 인해 갇힌지 1년이 채 안되어 죽어갔다. 혼자 남은 슈미트는 예수회 신부들의 갖은 회유로 인해 비참한 감옥생활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결국 그는 거짓으로 그의 신앙을 철회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6년 만에 풀려났다. 그러나 이런 그를 공동체의 형제들은 변절자로 보고 냉대하였다. 그는 자신이 변절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카톨릭 장악 지역에서 사역을 하였다.
그러던 중 슈미트는 아프리카의 호텐트족 선교를 위한 선교사로 긴급히 파송되었다. 보통의 흑인들보다도 훨씬 작은 체구의 호텐토트족은 슈미트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였다. 그는 통역의 도움으로 호텐트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50여명의 학생을 둔 학교까지 세우게 되었다. 슈미트는 본국으로부터 재정지원은 전혀 받지 않았다. 그는 매일 노동을 하여 생계를 꾸리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의 아프리카에서의 삶이 지극히 어려웠지만, 그는 복음을 전하는 것을 삶의 일차적인 목표로 세웠기에 견뎌나갔다. 그러나 그를 통해 복음을 받은 이들의 잦은 배신은 그를 가장 어렵게 만들었다. 또 아프리카에 복음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 워낙 어렵기도 했지만, 식민지 관리들의 비방과 방해는 큰 장벽이었다. 특별히 식민지 관리들과 사역자들은 슈미트가 평신도로서 사역하는 것을 알고 공공연히 무시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진젠도르프 백작은 귀환하겠다는 슈미트를 설득하고, 정식 사역자로 임명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정식 사역자로 임명된 슈미트는 힘을 얻어 복음전도와 세례에 열심을 내었다. 그러나 식민지 관리들과 교회들은 그의 성례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방해하였고 결국 그에게 추방 명령을 내린다. 슈미트와 다른 모라비안 사역자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국은 다시 허용되지 않았다. 50여 년간 함께 했던 지도자를 잃은 호텐토트족의 교회는 버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1792년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다시 그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슈미트에게 세례를 받았던 한 할머니가 50년도 넘게 신약성경을 보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슈미트는 로마 카톨릭의 핍박, 공동체의 오해와 냉대, 선교지 상황의 어려움, 평신도 사역자라는 냉대 속에서도 끝까지 그가 회심한 후 복음전도자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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