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가 됩시다.
요한복음 15장 12~14절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친구니라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같은 남자들에게 인심이 아주 인색한 데 비해 여자들에게는 아주 친절합니다. 웬만해서는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자들의 말에는 무조건 OK입니다. 자동치를 태워 달라고 해도 매우 꺼립니다. 여자들이 지나가면 자진해서 태워줍니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절대로 먼저 계산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와 같이 음식을 먹으면 없던 돈도 이상하게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많은 동료들이 있었지만, 좋은 평판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그의 결혼식에는 겨우 네명의 친구들만 참석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같은 또래의 살마들을 친구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고, 또한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이 있는 반면, 친구가 거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학교에서는 '왕따'라는 말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특히 학창생활을 하는 청소년들에게 친구에 관한 문제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자기의 깊은 속사정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지만 친한 친구에게는 말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도 형제에게도 학교 선생님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을 친구에게는 할 수 있습니다.
잠언 18장 24절에도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라고 했습니다. 친구가 없다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라고 말합니다. 친구 때문에 살고, 친구 때문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 말도 있습니다. 품행이 바르지 못한 친구와 함께 다니면 자기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 친구와 같아 보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잠언 27장 17절에는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친구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친구에게도 배신당할수 있고, 친구로 인해 곤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기억할 것은 나에게 좋은 친구만 생기기를 기대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13절)
예수님은 우리에게 좋은 친구가 될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에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믿었던, 그리고 사랑했던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그때의 기분이 어떠했습니까? 그 친구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었습니까? 볼 때마다 기분이 즐겁고 기쁘다면 이상한 사람일 것입니다. 아마 다시는 그를 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친구에게 당하는 배반은 혹독하고 괴롭습니다. 특히, 가까운 친구에게 당하는 배반은 더욱더 그러할 것입니다. 언수로부터 받는 책망이나 미움, 모욕은 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수도 아니고 미원하는 사람도 아닌, 바로 나의 친구요, 나의 동무요,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면 참아내기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친구의 배신에 대해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시 55:4)라고 말합니다.
로마의 정치가요 장군이었던 브루투스는 원래 줄리어스 시저의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전 48년 폼페이가 시저에 대항하여 내란을 일으켰을 때, 그들의 평이 되어서 시저를 배신했습니다. 그러나 폼페이는 패배하였습니다. 하지만 친구였던 시저는 브루투스를 용서하고 그에게 몇몇 도시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브루투스는 주전 44년에 다시 시저의 반대파들에게 설득당하여 시저를 죽이게 됩니다. 그때 시저는 "오, 브루투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자신이 믿고 신뢰한 친구요, 자신이 세운 장군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할 때 그 배반에 경악하며 임종하였던 것입니다. 우정이란 우연히 생기는 것도 아니고, 순간적으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역사 없이 우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만남 속에서 인생의 여러 면을 보면서 우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많은 만남 가운데 서로 부딪치면서 겪었던 모든 것이 거짓된 모습이었고, 속임수라고 생각될 때의 그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겪었던 고통을 우리도 동일하게 겪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친구의 배반을 경험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의 해답은 예수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훈련시키신 사랑하는 제자 가룟 유다에게 배반당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도 배반당하는 아픔을 겪을 때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픈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며 위로해 주시기를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의 친구 되신 예수님을 배반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배신하게 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여러 가지 배신과 배반을 경험할 때 당하는 고통보다 더 많이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으십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주님을 배반함으로 인해서 실망시켜 드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수 그리스도를 믿는 학생들은 믿음의 신의를 지키는 것을 기초로 해서 모든 일과 모든 친구들과 사람 앞에서 결단코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며 좋은 친구가 딜 것을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좇아 우리 모든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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