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을 할 것이냐, 아니면 학습을 당할 것이냐?
남편의 미국 유학을 따라온 한 젊은 엄마가 미국 엄마들의 육아 방식을 본받고 싶었다.
미국 사람들의 독립심, 자립심은 어려서부터 엄마가 키운 것이고, 또 미국 사회적 분위기가 미국인의 자립심, 개척정신을 길러 주고 있는 것을 보고 미국 생활을 하는 김에 자기 자식을 그렇게 키우기로 단단히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유학 생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갓난애에게 독방을 주기 위해서 침실 2개 짜리 집을 마련하였다. 애기 방을 따로 하여 독방에서 키우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 애기들은 저녁에 젖을 먹여서 재우면 혼자 잠도 잘 자고 일어나기도 잘 하는데 자기 애기는 자꾸 울어서 도저히 재울 수 없는 것이다. 애기가 울 적마다 애기 방에 들락거려야하니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애기 방을 빈방으로 놔 둔 채 아예 엄마 옆으로 애기 침대를 옮겨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애기는 잘도 자고 도 운다 해도 쉽게 옆에서 돌볼 수 있어서 오히려 애기와 한방 쓰는 것이 편했다.
그런데 미국 애기도 처음부터 독방 쓰는데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는 데 주의해야 한다.
미국 엄마는 애기에게 충분히 젖을 주고는 독한 마음을 먹고 울어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을 애기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애기는 울어봐도 엄마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울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다만 엄마는 아가의 울음 소리가 아파서 우는 소리인가 괜히 엄마 옆에서 있고 싶어서 우는 소리인가를 구별해야 한다.
여기서 미국 엄마는 행동으로 아기를 학습시키는데 비하여 한국의 엄마는 애기한테 반대로 학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자립심, 독립심이 강한 미국인은 저절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독방의 준비 문제가 아니라 엄마의 독한 마음의 준비가 중요한 것이다.
길에 넘어진 아이도 가민히 보면 엄마가 일으켜주려고 달려오는지 살살 뒤돌아 보면서 눈치보면서 운다.
네힘으로 일어나라고 호통치고 못 본척하고 가 버리면 웬만하면 그다음 부터는 울지 않고 제 힘으로 일어난다. 빨리 달려가서 흙을 털어 주고 불어주고 달래면 다음부터는 더욱 크게 울면서 엄마가 빨리 와주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부모에게 의지하는 애가 만들어진다.
강한 엄마만이 강한 애를 키울 수 있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 보면 다투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아이들이 밖에서 얻어 맞고 울면서 집에 들어오면 부모들은 기분이 별로 좋을 리 없다.
성질 급한 엄마는 아이들끼리 놀다 싸운 것을 가지고 밖에 달려 나가 때린 애를 혼내주기도 한다. 그럴수록 그 애는 그것이 재미있어서인지 자주 울고 들어오게 된다.
그런데 미국 유학 중에 이상한 것을 여러 번 발견하였다.
저녁 때 미국 엄마가 자기 집 애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는 자주 “sorry"라고 말하고 우리 애하고는 악수를 하라고 자기 집 애에게 권유하는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알고 봤더니 낮에 애들이 놀다가 싸웠거나 남의 애를 때린 것을 알게 되면 미국 엄마는 반드시 그 집에 데리고 가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악수를 하여 화해를 하라고 시키는 것이었다.
부모가 알기만 하면 거의 백퍼센트 이렇게 사과를 시킨다. 이것도 우리 나라와는 정반대 현상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남과 경쟁해야 하고, 경쟁할 바에는 싸워서 이겨야 하고, 맞기보다는 남을 한 대라도 더 때리고 억눌러야 속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이기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어렸을 적부터 부모가 몸으로,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놓고 다 자라서 ‘더불어 사는 사회’의 건설을 구호로 가르치고 있으니 이러한 구호가 먹혀들리 없다.
건실한 한국 사회의 건설은 바로 엄마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집 근처에 어린이 놀이터가 하나 있다. 애들 노는 것을 보니 어지럽히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먹는 것도 마구 버려 놓고, 과자 봉지, 신문지, 깡통 모두 버려 놓고 지저분한 가운데서 놀고 있었다.
옛날에 아이를 가르쳐본 실력을 발휘하여 어느 날 아이들과 같이 놀이터 청소를 시작하였다. 칭찬을 해 주었더니 아이들도 곧잘 청소를 하였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놀이터 주변의 2층, 3층에서 젊은 엄마들이 애들 이름을 부르며 한 놈, 두 놈 데려 가는 것이었다. 내가 오해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왜 귀여운 내 애를 청소시켜 먹느냐? 청소하려면 혼자 하든지, 말든지 할 것이지......” 하는 어머니들 태도였던 것 같다.
공중 시설을 더럽히며 노는 건 그대로 놔두고 청소하는 것은 못하게 불러들이니 공중도덕이 어떻게 싹틀 수 있겠는가? 공중 시설 파괴로 낭비되는 우리 나라 예산만 해도 엄청날 것이다. 우리 나라 공중 도덕 교육은 엄마들 손에 달려 있다.
지금도 우리 나라 대도시의 골목길에는 낯뜨거운 낙서 아닌 낙서들이 버젓이 도시 환경을 장식하고 있다. ‘소변금지’가 바로 그것이다. 외국에서는 아무리 어린애라도 아무 데서나 ‘쉬’를 시키지 않는다. 기저귀를 늦게까지 채울 뿐 만 아니라, 기저귀를 뗀 후라면 어려서부터 반드시 화장실에서만 ‘쉬’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또 밖에 나가려면 미리미리 준비시키는 습관도 들인다.
그런데 한국의 엄마는 버스 안이 되었건, 공원이건, 아무 데서나 쉬를 시킨다. 그러니 커서 어른이라고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농경 사회 들판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국제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한국의 어머니가 길러 놓은 것이라고 보아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때로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택시 기사까지도 길거리에서 실례를 한다. 어려서 습관 들인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감각 자체가 없다.
외국에서는 아무리 어린애라도 함부로 고추를 내놓을 수가 없다. 이런 것들이 국제화 시대의 국제 예의가 될 것이다.
엊그제 국제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온 외국인 교수 몇 명을 만났다. 국제 세미나는 정말 국제적인 최고급 호텔에서 열렸다. 그런데 그 분들이 한국에 오는 비행기안에서부터 기분이 잡치기 시작하였다. 참 이상한 나라도 다 있다는 느낌가지 받은 것이다. 여러모로 보아 상당히 배운 것도 같고 지성인이고 고급 손님인 것도 같은데 그런 엄마가 자기 애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어른 따로, 애들 따로 놀더라는 것이다. 애가 울어도, 위험하게 비행기 안에서 뛰어 다녀도, 떠들어대고 장난을 쳐도, 전연 hd제할 생각은 않더라는 것이다. 물론 비행기 안 많은 사람들의 여행을 불쾌하게 망쳐 놓은 것이다. 참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그런 현상들이 한국 안에 들어와서도 계속되더라는 것이다. 식당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아이들이 뛰어 다니고 심지어는 빈 식탁 위로 올라 갔다 내려 갔다 해도 그만이고, 새마을 기차칸에서도, 전철 안에서도 이런 현상이 계속 눈에 띄는데 한국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는게 정상이냐고 묻는데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이것은 나도 이미 여러번 느꼈던 현상이다.
한국의 배웠다하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이렇게 놔먹이니(?) 우리 사회가 무질서 난장판이고, 젊은애들 판이고, 힘센 사람들 판이 되지 않겠는가? 사적인 장소에서도 안될 일을 공공 장소에서까지도 허용해 놓고 있다. 애들 엄마가 다른 사람들은 아랑 곳 하지 않고 오로지 애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기 안 죽이는 것만 생각하고 있으니 이 사회가 어디로 가겠는가? 사회 걱정하기 전에 먼저 부모인 자기 자신들이 먼저 받게 되는 것이다. 부모에게 대드는 자식들은 모두 그렇게 키운 자식들이다.
옛날 초등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한국의 어머니들도 자식들을 그렇게 무례하게 키우지 않았다. 글자 이전에 먼저 기본 예의를 먼저 가르쳤고, 최소한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남을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남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버릇없는 놈을 애비 없는 후래 자식이라고 하였으니 엄마의 책임 보다 아마 아빠의 책임이 더 큰지 모르겠다.
하여간 ‘교육받은 배운’ 엄마와 교육받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엄마의 차이가 무엇인지 도대체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양반의 피를 받았다는 집안도 쌍놈의 집안도 구분이 안되고 있으며 세상이 어떻게 되어 가는 것인지 교육자로서 회의만 쌓인다. 이렇게 놔 먹여진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도 또 통제 불능의 애들이 되고 있다. 부모가 어렸을 때 자식을 통제하지 못하고, 선생이 학생을 통제하지 못하니 무슨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심지어 거꾸로 학생이 교사를 통제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흡연, 음주, 마약, 불량학생이 판을 치고 정상 학생과 교사가 오히려 이들의 눈치를 모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사회, 위로 올라 갈수록 통제 불능이 되고 있다. 경찰력, 공권력이 당하는 것도 모두 아이들을 놔먹이고 어른이 어른 노릇을 못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어른들이 편하게 지내려고 어른이기를 미리 포기한 결과, 이 사회는 뒤죽박죽이 되고 있다.
최소한 학교에서 만이라도 원칙이 통하도록 철저한 교육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외아들 외동딸일수록 더욱 엄하게 키워야 한다. ‘겉 사랑’ 보다는 ‘속사랑’ 으로 엄격한 교육을 회복해야겠다. 내가 외아들이면 남도 외아들이고, 내 자식이 귀여우면 남의 자식도 귀엽다는 것을 가르쳐야겠다.
현대 학교는 아이들도 가르치고 부모도 가르쳐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 쉽고 편하게 조금만 살고 말 이 세상이 아니지 않는가? 한국의 엄마는 아이를 가르칠 것이냐 아니면 약한 마음으로 가르침을 당할 것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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