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사역†/하나님이기뻐하시는찬양

수건을 벗은 예배자④

예림의집 2023. 3. 26. 20:26

수건을 벗은 예배자④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도서 5:1-2). 우리는 앞에서 우리 마음이 충만하게 심지어는 터무니없이 흘러넘치게 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또 잠잠하게 단지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때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숙고하며 가장 적은 말과 가장 단순한 노래로 반응하는 때입니다. 전도서의 구절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7절). 그리고 가끔은 우리가 서 있지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성경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서 마침내 자신의 무릎을 꿇게 되는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요한계시록 1장에서 요한이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만나서 그 발 앞에 "죽은 자 같이 엎드려진" 것을 보았습니다. 4장에서는 24 장로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그분을 경배합니다.

시편 72편 11절은 우리들에게 "만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모든 무릎이 꿇어 엎드릴 것도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것 중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본모습이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구경꾼은 예수님이 이곳에서 가장 약한 모습이었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잡고자 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그분은 곧 배신당하리라는 것을 아록 있었습니다. 십자가가 잔인하게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너무 고통을 받아서 그의 땀은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았다"라고 말합니다.

유다와 몇몇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 그리고 동행한 군인들은 무장까지 하고서 그분을 체포하려고 도착합니다. 그러나 그때 믿을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요한계시록 18장 4-6절,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이 일은 저를 놀랍게 했습니다. 여기 겟세마네 동산에 있던 그 사람 예수는 지치고, 근심에 차 있었고, 아무 무기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에도 그분의 궁극적인 정체성의 표시는 두루 비치고 있습니다. 아주 잠시였다 하더라도, 이 공격적이고 뻣뻣한 군인들과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어쨌든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의 온유한 경배자들로서 우리는 더더욱 무릎 꿇어야 할 공간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가치에 주목할 때, 우리의 경배 시간은 훨씬 더 하늘 보좌가 있는 방처럼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가 노래할 때 천사가 노래합니다. 살아 있는 피조물들이 찬양을 부르고, 우리도 그들과 함께 합니다.

그러나 24 장로들은 고개를 숙여 절합니다. 오, 우리는 좀 더 자주 그들이 보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고, 그들이 하는 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절하는 것은 경외의 궁극적인 육체적 표시입니다. 우리가 진정 우리 눈을 자신에게서 돌려 확고하게 예수님께 고정하면서 드리는 경배에는 분명 다른 역동성이 있습니다. 예의 없고 불경한 시대에, 참으로 수건을 벗은 예배자들은 하나님의 "타자성"을 인식하고, 또 그분과 친해지자는 부르심을 소중히 간직합니다. 그분의 영광으로 못 박혀서 그분의 임재로 변화를 받은 우리는 훨씬 더 그분을 닮아 가게 됩니다. 수건을 벗은 예배자들은 다른 사람이 되어 산을 내려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며, 보는 이에게 빛을 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