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웨슬레의 신성 클럽
아마도 여기에 대한 역사적 가장 대표적인 경우를 꼽는다면, 회심하기 전 옥스퍼드 대학 재학 시절의 요한 웨슬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동생 찰스 웨슬레를 비롯한 몇몇 친구들과 함께 1729년 한 종교 모임을 결성했는데, 그것은 바로 오늘날 "신성 클럽(Holy Club)으로 알려진 모임입니다. 회원은 모든 분야에서 칭찬할 만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젓째, 그들은 정통적인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신경,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물론이고 영국 국교회의 39개 조항까지도 믿고 있었습니다. 둘째, 그들은 흠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매주 여러 차례 저녁에 함께 모여 유익한 책들을 공부하고 자신들의 시간표를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시간 해야 할 의무를 정해 두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옥스퍼드 성과 보카르도에 있는 죄수들을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사재를 털어서 슬럼가에 학교를 설립하고 교사에게 사례를 지급하며 그곳 어린이들에게 옷을 주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선행으로 충만했습니다. 셋째, 그들은 매우 종교적이었습니다. 매주 성찬식에 참여하였으며,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하였고, 교회법에서 정한 기도 시간을 준수하였으며,
주일뿐만 아니라 토요일도 안식일로 지켰고, 초대 라틴교회의 대부였던 터툴리안의 금욕적인 수련법을 따랐습니다. 이처럼 정통 신앙과 박애주의 그리고 경건이 특별히 겸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요한 웨슬레는 그 시절 자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면서, 비록 자신의 신앙이 "종"의 신앙이었을지는 몰라도 결코 "아들"의 신앙은 아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에게 종교는 자유가 아니라 속발을 의미했습니다. 1735년 그는 식민지 교구 목사이자 인디언을 위한 선교사로서 조지아행 배를 탔습니다.
그러나 2년 후에 깊은 환멸에 젖어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인디언을 개종시키기 위해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오! 나를 개종시켜 줄 사람은 누가 있을까?" 또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동안 과연 나는 스스로 무엇을 배웠는가? 아, 내가,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겠다고 미국에 온 내가, 결코 하나님께 개종되지 않았다는 사실 너무나 확실했다." 결론적으로 웨슬레이 신성 클럽 활동은 그에게 진정한 영적 진보도, 구원도 줄 수는 없었습니다. 웨슬레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다시 살펴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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