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사역†/하나님이기뻐하시는찬양

천한 예배자①

예림의집 2022. 7. 16. 12:41

천한 예배자①

 

경배곡들을 작곡하는데 더욱 매력적인 점은 우리가 간청하여 실제로 용기를 얻게 된 것 말고도 성경을 인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저는 <춤추며 찬양해>라는 노래를 접한 적이 있는데, 수천 년 전에 다윗 왕이 작성한 시편 구절을 사용한 노래였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주님의 법궤를 메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다윗은 매우 흥분해서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의 아내 미갈은 이것 때문에 다윗을 경멸했고, 다윗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구절을 적었습니다.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바로 사무엘하 6장 21-22절입니다. 저는 다윗이 송축한 상황을 보고 가장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사건에서 단지 군중들 가운데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왕이었습니다. 보호자의 공적인 상징으로 위대한 지위를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힘과 권위와 부가 맡겨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앞장서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공적인 자신의 입장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찬양의 불로 어떤 금지 사항들이나 자부심에 상관없이 그의 경배는 활활 타올랐습니다. 참다운 경배는 항상 그 자체를 잊어버립니다.

찬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 중 하나인 "할랄(Hallal)"은 주님 앞에서 시끄러운 바보처럼 되거나 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할렐루야(Hallelujah)"가 나왔습니다. 경쟁이 심해진다는 이유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무엇보다도 좀 자제해야 하지만, 그러나 너무 자주 이 영역에서 뒤처져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예배에서 우리가 좀 더 거룩한 손해를 보아야 할 때가 아닙니까? 저는 솔직히 이런 나 자신에게 심한 자책을 느낍니다. 가끔 경배를 하면서 더 대단한 자유를 희미하게 보게 됩니다. 가끔.. 희미하게..(2부 계속..)

 

가끔이 아니라 자주, 희미하게가 아니라 명백하게 우리는 바보 또는 미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스물한 살이던 어느 날 밤, 우리는 평소대로 금요일 밤 청년 모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경배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하나님은 정말 새로운 방법으로 나의 마음을 붙들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향한 사랑으로 폭발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기를 스고 어떻게 해서든 이 예배를 끝냈지만, 노래만으로는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결코 춤을 추는 정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고, 더구나 그렇게 행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던

저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의 예배가 계속되는 동안에 점점 열광적으로 되자, 저는 신발을 신는 것도 잊고서 교회 밖으로 서둘러 나왔고, 10분 동안 거리를 달렸습니다. 제 모습은 틀림없이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저는 조금도 내 모습을 신경 쓸 수 없었습니다. 저를 보았던 사람들이 이것을 모두 얼마나 이상하게 쳐다보든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오직 그분 앞에만 있었습니다. 거리낌 없는 행동의 결과는 결코 우리의 예측대로 들어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그렇게 그분과 교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에 사로잡혀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기쁨 속에 자신을 드리는 일을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나는 더욱 이런 시간들을 열망합니다. 나는 거리낌 없는 경배가 극단적인 방식으로 흘러넘쳐서 내 마음이 예수님으로 그렇게 타 버리는 계절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열정적이기를 원하시는지 기억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탕자 이야기는 하나님의 열정적인 마음을 그린 최고의 그림이 되어야 합니다. 고집불통의 아들을 집으로 반갑게 맞는 아버지는 그 자체로도 대단하지만,

그 아버지가 아들을 환영하는 방식은 훨씬 더 감동적입니다. 이 부유하고 고귀한 아버지는 모든 지위를 잊고서, 아무것도 거리끼지 않고 자기의 아들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것은 그의 위치에 걸맞은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달려가야 할 어떤 일이 있으면, 그는 항상 종을 보내 그 일을 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아들에게로 달려갈 때, 우리는 거리낌 없는 엄청난 사랑의 강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도 이와 똑같이 거리낌 없이 무척이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우리의 유일한 반응은 열정적이고 천한 예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