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요한계시록 14:4-5)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특별한 자격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 자격의 기준을 본문 4절과 5절에서 다섯 가지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 번째 자격 기준이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3절에서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4,000인’이란 말씀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구속을 받았다’는 말씀과 ‘처음 익은 열매’란 말씀의 의미를 잘 파악하여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았다.
이 사람들 즉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은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구속이란 말은 성경에서 두 가지로 구분해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지난번 이 144,000명에 대하여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4,000인’이란 구절에서도 잠깐 언급한 일이 있었지만 구속(救贖)이란 말의 한 가지 뜻은 구원에 적용시키는 말입니다. 골 1:14절을 보면 ‘그의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고 했습니다.
구속이란 말은 이처럼 우리의 영적 구원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놀랍게도 성경에서 이 구속이란 낱말이 구원에만 국한하여 사용된 것이 아니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롬 8:23). 이곳에 나오는 구속은 영적 구속, 우리의 죄 사함에서 오는 구원을 의미해 주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란 말씀이 이 사실을 증거해 줍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란 영적 구속인 구원을 의미하지만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하는 구속은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으로 기다리는 다른 또 하나의 구속으로 ‘부활’을 의미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구속’이라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육적 구속을 의미하는 부활을 말합니다. 부활이 우리들의 구속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전 15:16절 이하에서 부활의 의미에 대해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금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우리의 영적 구속인 구원은 우리의 육적 구속인 부활과 이처럼 직결되기 때문에 부활 역시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2. 처음 익은 열매
이들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자격으로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라고 말씀해 줍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구속(부활)을 받은 이들 144,000명과 ‘처음 익은 열매’ 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왜냐 하면 ‘처음 익은 열매’란 말은 첫째 부활로 살아난 이들 144,000인들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고전 15:22-27절까지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의 순서가 나옵니다.
이 순서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열매’로 꼽았고 다음에 ‘그에게 붙은 자’로 두 번째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 다음에 ‘그 후에는 나중이니’란 말씀에서 세 번째의 부활의 순서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연구할 때 조심해야 할 일은 여기 나오는 부활의 순서 중에는 불신자의 부활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왜냐 하면 22절에서 이 부활에 대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부활)을 얻으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리스도 안에서 있을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계 20:4-6절까지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부활자’가 있고 이들 첫째 부활자가 아닌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의’ 부활이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은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란 불신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첫째 부활에 들어가지 못한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부활자들은 순교자들입니다. 교회에는 순교자들 뿐 아니라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지 아니한 성도들도 있는 것입니다.
괄호 안의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란 바로 이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까지 잘못된 신학적 편견(偏見)으로 알고 믿고 있었던 첫째 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전체적 부활이 아닙니다. 특수한 성도들의 부활인데 이들에 대하여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이라고 명시된 것처럼 첫째 부활자는 순교자들의 부활을 말합니다. 순교자들의 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부활보다 시기적으로 천 년간 앞서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그들의 위대한 죽음에 대한 상급으로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하는 축복을 받기 위해 일반 성도들보다 천 년간 먼저 부활하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영화로운 몸으로 왕권을 가지고 천년왕국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에는 지상에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살아 있었던 모든 성도들이 ‘살아 있는 몸’(변화 받은 몸은 아니지만 죄에서 벗어난 몸)으로 들어가 회복된 에덴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들은 결코 부활체나 변화체로 이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천년이 지난 후에 백보좌 심판대를 거칠 때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게 되고 천년왕국에서 살아 있는 성도들의 홀연한 변화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계 20:5절에서 순교자로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성도들에 대하여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순교자를 둘로 구분하고 있는데 한 종류의 순교자에 대해서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순교자들입니다. 순교자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에 있습니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란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러면 두 번째 등장하는 사람들이 왜 부활한 성도들인가?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인가? 이에 대한 해답이 계 6:9-11절에 나와 있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제단 이래에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사람들은 순교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피 값을 신원해 달라는 간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계 20:4절에서 첫 번째 등장하는 순교 성도들과 같은 순교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기를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는 말씀에서 다른 또 한 종류의 순교자의 무리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환난 중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할 성도들인데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로 이들이 두 증인의 사역을 마치고 적그리스도에 의해 피를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란 이 순교의 대상자가 바로 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서 ‘살아서’란 말은 죽었다가 살아난 대상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헬라어나 영어 성경이나 일본어 성경으로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순된 부활의 지식을 새롭게 정리해서 성경에 계시된 대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결론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이처럼 순교적인 사명을 이루어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시온산에 올라가 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들 144,000명은 이처럼 첫째 부활자로 이미 순교의 사명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종말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하나님의 종들은 이들처럼 순교의 사명자여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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