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존 칼빈은 1509년 프랑스의 유명한 대성당 도시인 아미앵과 랭스 중간쯤에 위치한 대성당 도시인 노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성직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도록 파리 대학으로 보냈으며, 다음에는 법률 공부를 위해서 오를레앙 태학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직에 임명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있어서 루터에 이어 탁월한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법률 전문직을 수행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네바시의 시민법을 재작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그가 수립한 프로테스탄트의 전통은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존 칼빈은 자기 자신의 종교적인 체험에 관하여 정감이 풍부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초기 영적 순례에 대하여 우리에게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는 임종의 자리에서 "나는 비참한 죄인이다!" 하고 탄식하였으며, 묘비가 없는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는 25세 때의 '갑작스러운 회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회심은 사도 바울이나 어거스틴의 회심과 같지는 않지만, 증세 가톨릭의 신앙으로부터 복음적인 종교개혁의 관점으로의 전환입니다. 이 관점은 이미 루터의 독일로부터 중부 유럽을 휩쓸며 영국에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2년 후(1536년), <기독교강요> 초판이 출판되었으며, 이 책은 개혁주의 개신교의 전반적인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신학체계이며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여러 차례 개정과 편집을 거치면서, <기독교강요>는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앞으로도 그런 작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초판(1536년)과 최종판(1559년)이 출판되는 사이에 칼빈은 또한 다방면의 저서와 논문을 출판하였으며, 거의 모든 성경에 대한 주석을 저술하였습니다. 이런 활동을 하는 동안 그는 항상 설교를 하였고, 교회나 사회의 모든 주요 인물과, 그리고 좀 덜 유명하지만 동정을 베풀거나 종교적인 교육이 필요한 수많은 사람들과 광범위하게 서신교환을 하였습니다.
칼빈의 인격은 항상 격렬한 논쟁의 주제가 되어 왔습니다. 칼빈은 신학자, 학자, 설교자, 교회 지도자인 동시에 또한 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칼빈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점에까지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지나치게 엄격하고 냉혹하며, 완고하고 고집이 세며, 너그럽지 못하고 침울하다고 비난합니다. 칼빈이 다정한 애정을 풍기는 인격의 사람이든 아니든 그는 자신이 본 진리에 대하여 전적으로 열중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그의 지성과 마음을 다한 지극한 헌신과 실천은 항상 그에 상응하는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칼빈의 이름과 신학은 불행하게도 보통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두 가지 교리, 곧 하나님의 주권, 그리고 선택론 혹은 예정론과 관련된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그가 이 두 교리에 대하여 많이 언급한 것은 분명합니다. 아마도 그가 너무 많이 말한 것이 흠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이단자들이나 자신의 주장에 맞서는 시민들, 혹은 마찰을 일으키는 곤란한 교리를 회피하는 성품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성경에 근거하여 구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확신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의 주도권을 행사하신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 안에나 우리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칼빈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말한 것은 신성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에 또 하나의 초월적인 속성을 추가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질서에 있어서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을 뿐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관하여 칼빈을 사로잡은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악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하여 다가오신다'라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이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전적 타락, 우리 자신의 구원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칭의 등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칼빈은 결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인간성을 격하시키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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