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4. 05 - 기쁨과 십자가
오늘날 다수의 사람들은 고통을 두려워하고 피하지만 고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인생의 깊은 지혜이다. 고통이 없이는 진정한 행복이 없다는 사실을 동서고금의 역사와 철학과 문학은 가르쳐 주고 있다. 고통을 피하는 것이 인간의 깊은 본성인 것이 사실인 만큼이나 고통이야말로 인생을 높은 경지로 이끌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세상을 보다 지혜롭게 살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겪고 있는 위기와 고통들은 거부하고 피해해 할 악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인생을 보다 더 성숙하게 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선이다.
기독교 신앙은 이 점에서 탁월한 인문학적인 지혜의 보고이다.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곧 고통을 대면하는 자세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삶의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통해서 고통에서 벗어나 기쁨을 얻게 된다. 더 나아가서 십자가는 우리에게 고통의 의미를 새롭게 가르쳐 준다. 십자가에서 고통은 저 높은 영광을 위한 필수적인 코스로 새롭게 알려졌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서 우리는 이제 고통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얻어 새로운 모습으로 나오게 된다. 고통은 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을 위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의식적인 선택이 된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십자가가 된다면 우리 삶에 어떤 놀라운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살펴보자.
기쁨을 향한 십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은 저주 아래 살던 이들을 복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불러내시면서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그는 그가 살고 있는 땅에서 누리던 안정을 포기하고 고달픈 여정을 시작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 있는 영광의 약속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의 광야에서의 고난의 여정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광야의 고난은 가나안의 기쁨을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의 방식이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부름을 기억하고 출애굽 사건을 회상하는 것은 우리는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을 넘어선 하나님의 놀라운 꿈을 마음에 새기기 위함이다. 우리는 현재의 십자가에서 미래의 영광을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알리신 것도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이 인생의 행복이라는 사실이다. 당장의 여기에서 행복을 넘어서 있는 미래의 행복을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이다.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예수님의 삶은 목적론적인 삶이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이란 하나님이 아들을 이끄시는 탁월한 목적이다. 예수님의 삶은 현재 여기에서의 행복을 위한 삶이 아니라 앞에 있는 미래에 있을 영원한 행복을 향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삼으려 했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소망을 물리치고, 오히려 앞에 있는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의 길, 부끄러움의 길을 기꺼이 택하셨다. 왜 그는 십자가의 길을 가셨는가? 그 십자가가 가져올 영광 때문이다. 십자가의 목적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것이다. 예수를 생각한다는 것은 곧 소망의 삶을 지향한다는 것이 아닌가?
현재의 고난을 넘어 영원한 기쁨을 보는 자가 지혜롭다. 이것은 여기 땅에서 누리는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다. 우리는 날마다 앞에 있는 기쁨을 마음으로 상상하고 그것을 실재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8).” 지금은 저 하늘의 영광이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허구인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여 영광에 오르심이 실재인 만큼 고난 당하는 우리 앞에 있는 영광도 실재이다. 그리스도인은 음울한 자들이 아니다.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은 기쁨의 소망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롬 5:3).” 앞에 있는 영광의 소망이 현재의 고통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우리는 십자가 안에서 부활의 영광을 본다. 우리의 관점은 삶에 대한 긍정이다. 하나님은 우리 삶을 고통에서 행복으로 바꾸신다. 우리는 지금 고통 한가운데서 기쁨을 상상해야 한다.
십자가를 참음
우리는 종말론적인 소망을 향하여 목적론인 인생을 사는 자들이다. 목적론적 인생의 특징은 고통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이다. 믿지 않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도 인생의 행복과 기쁨을 추구하고 이를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 행복은 세상의 행복과 다르다. 세상의 행복은 욕망에 기초하고 있다면, 우리의 행복은 욕망을 거슬러 순종의 삶에 기초하고 있다. 순종을 위해 필요한 것이 십자가이다. 신자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른 것은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현재의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앞에 있는 목적 때문에 현재의 고난은 다른 의미를 띤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히 12:2).”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로 하여금 세상 욕망을 추구하던 삶에 대해 죽고 하늘 영광 추구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분처럼 십자가를 통해 하늘의 기쁨에 들어가게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수를 바라보고 바로 그가 가신 길을 따르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믿는 것은 그분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분의 십자가는 우리의 십자가이다. 우리도 주님처럼 지금의 행복이 아니라 미래의 행복을 택하고 이를 위해서 기꺼이 고통을 짊어지는 것이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니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유업의 상속에 참여하는 공동상속자들이다. 미래의 영광을 위하여 현재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그리스도께서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현재의 십자가를 인내했듯이 우리도 우리 앞에 놓인 기쁨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기를 선택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이란 무엇일까? 세상 욕망에 대해 죽는 것이다. 십자가는 세상에 대한 죽음의 상징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사람들은 현재의 행복을 위해 욕망과 이기심의 지배를 받고 있고 이로 인해서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 산다. 고통을 피하고 현재의 행복을 위하여 욕망을 내려놓지 않으니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광과 기쁨을 준비할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출애굽을 이끈 모세는 세상의 행복 대신 십자가의 행복을 선택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모세 역시 예수님처럼 앞에 주어질 영광의 상을 위하여 현재의 안락과 기쁨을 포기하고 고난을 택했다. 장래의 영광을 소망한다는 것은 곧 현재의 행복 대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의 기쁨이 목적이라면 현재의 고난은 그것의 방법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애굽의 모든 보화’를 포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산다. 욕망의 성취를 행복이라 하고 그것의 결국이 파멸임을 알지 못한다. 십자가 지신 예수를 바라보는 삶은 세상 욕망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3-5).”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은 세상 욕망을 거슬러 사는 것이다. 세상의 길은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18-20).” 세상 욕망을 따르게 되면 십자가의 고난은 없지만 장차 부끄러움을 면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다. 세상의 욕망에서 탈출해야 한다. 욕망을 추구하는 세상과 불화하는 것이 마땅하다. 돈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세상과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는가? 이것이 우리의 관심이다. 하늘 영광을 위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순종의 삶을 살았기에 세상의 미움을 받으셨고 죽임을 당하셨다. 그분처럼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방향이다. 세상 욕망 버리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처럼 사는 것이다. 십자가 안에 자유가 있다. 영광을 향한 분명한 소망이 있다. 영광에 대한 소망을 붙들고 더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자. 철저한 순종의 십자가로 나아가자.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 바울처럼 고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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