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의 음성-열심보다 중요한 순종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
①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②그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 나의 열심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음성듣는 것에 오해를 하고 있기 대문입니다.
③십자가에서 자아가 처리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위대한 중보 기도자 리즈 하윌즈가 아프리카 선교를 나설 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런던으로 떠나기 전날이면 반드시 돈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마지막 우체부가 왔지만 돈은 없었다. 우리가 탈 기차는 이튿날 아침, 즉 우체부가 다시 오기 전에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차역 플랫폼에서 돈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기차가 떠날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남아 잇는 일이라곤 한 가지뿐이었다. 우리 손에 아직 10실링이 있으니 그것으로 최대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이 힘이 다하면 그때야말로 하나님이 개입하실 것이다.
우리는 집에서 약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레인리 역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했는데, 다음 기차가 올 때까지 두 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일단 거기까지만 가려고 표를 끊었다. 레인리 여기까지 사람들이 동행했다. 드디어 다음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 그때 성령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너에게 돈이 있다면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 "매표소에 가서 줄을 서겠습니다." "너는 사람들에게 나의 약속은 곧 손안에 돈이 쥐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교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지금 가서 줄을 서도록 해라." 순종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내 앞에는 몇 명의 남은 사람이 서 있었다. 마귀는 쉬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네 앞에는 몇 명 남지 않았다. 네 차례가 와도 너는 그냥 지나갈 도리밖에 없다. 앞으로는 홍해, 뒤로는 애굽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던 모세에 대해서는 설교를 잘도 하더니만 이제 네가 그 꼴이 되었구나." 나는 대답했다. "그래! 나는 에워싸여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 역시 모세처럼 영광스럽게 통과하도록 하실 것이다."
내 앞에 두 명밖에 남지 않았을 때였다. 어떤 사람이 무리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작별 인사를 하면서 "더 기다려 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가게를 열 시간이 되어 가 봐야만 합니다." 하며 내 손에 30실링을 쥐여주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주님이 아프리카에서 하실 일에 대한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순종하기만 하면 그분은 얼마든지 그런 일을 행하실 수 있다. 표를 사고 나자 우리를 전송하러 기차역에 나온 사람들이 그제야 우리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다. 주님은 우리가 시간을 통과할 때까지 그들을 저지하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는 런던까지 가는 동안 쉬지 않고 그분을 찬양했다. 런던에 도착하자 헤드 시는 다음 날 아침식사를 함께하자고 우리를 초청했다. 그는 거기서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께 드리려고 50파운드를 준비했는데 그만 부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경험이 있다면 써봅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리즈 하일즈'와 같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 위의 성경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모두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친구와 사귈 때,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내 이야기만 한다면 그 친구와 친해질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친해진다는 것은 서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한복음 15:15).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친구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앞으로도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은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열심'이 너무 강해서입니다. 두 번째는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음성을 듣는다는 것'에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열심' 때문입니다. 열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열심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못 듣게 됩니다. 우리의 열심은 예수님의 의를 드러내기보다는 자기의 노력과 공로와 성과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로마서 10:2, 3). 예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예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면서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교제는 소홀히 했습니다. 주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했을 때 그의 열심에서 드러난 것은 오히려 자신의 자아였습니다. 예수님을 위한다고 했지만 동생을 향해 불평하고 결국 예수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아의 특성입니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38-42).
초대교회 안에서도 주님과 만나는 시간을 소홀히 여기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구제를 하는 일 때문에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초대교회 안에는 헬라 지역에서 살다 온 헬라파 유대인, 계속해서 유대 땅에서만 살았던 히브리파 유대인이 있었는데, 이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사도행전 6:1-6).
구제하는 일 봉사하는 일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하지만 "자기의" 때문에 구제와 봉사가 시험 거리가 됩니다. 그것은 초대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공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험을 통해서 초대교회는 더 견고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이 시험을 통해서 주님이 정말 원하는 것이 주님과의 친밀함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여호와께서 웃사의 몸을 찢으셨으므로 다윗이 노하여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그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르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다윗이 궤를 옮겨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메어들이지 못하고 그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역대상 13:7-13).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역대상 15:2).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하게 하고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역대상 15:12-15).
여호와의 법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 오려는 '다윗의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실패하였습니다. 법궤를 옮기고자 하는 열심만 있고, 법궤를 옮길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하나님 말씀은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법궤를 옮길 수 있는 사람은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들로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고, 법궤를 옮길 때는 반드시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열심이 앞선 나머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방법을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은 잘 모르고 열심만 있는 경우 오히려 큰 시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나의 열심을 가지고 뭔가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나 크게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게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면 누구나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수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자아'가 늘 앞서기 때문에 주님에게 묻지 않습니다. 마르다도, 초대교회 때의 싸움도, 다윗도 자신들 안에 열심만 있었지 하나님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열심보다 순종이 필요합니다.
하루를 살면서 심지어는 단 한 번도 예수님에게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자기가 알아서, 자기 의지대로 공부도 하고, 여러 가지 일도 하고, 놀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신다고 믿으면서도 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에게 한 번도 묻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이사야서 55:3). 오늘 하루 동안 하나님에게 무엇을 불어봤습니까? 지금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하길 원하세요?"라고 물어봅시다. 그리고 적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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