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오후예배 20191201
주일 오후예배 20191201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hwp
본문: 요한복음 1:1-5, 9-14
제목: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한복음 1:1-5).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9-14).
사도 요한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독자들에게 요한복음을 기록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설명해 줍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입니다. 사도 요한이 살았던 시대에는 예수에 대한 소문이 끝없이 돌고 돌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였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를 협잡꾼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잘못된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요한복음의 서두에서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을 다루면서 요한복음 전체 내용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시작합니다.
서두의 몇 구절에서 우리는 “말씀”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되는데, 여기서 “말씀”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말씀“이란 단어를 잘 살펴보면,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으로 상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말씀“이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는데 지금부터 예수를 알아가는 그의 여정에 우리도 동참하도록 합시다.
태초부터 존재하신 예수님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구절로 시작됩니다.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 즉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예수님은 다른 삼위 즉 성부 하나님, 성령님과 함께 그곳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존재가 언제 시작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유한한 머리로는 시작과 끝이 없는 존재를 이해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시작과 끝이 없이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인간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간들 속에 섞여 사셨으며 십자가 위에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사도 요한도 다른 여느 사도들과 같이 그분의 생애를 생생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 이 세상에 존재하셨던 유한한 생명체로만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그분은 아기의 모습을 입고 말구유에서 태어나시기 전부터 존재하셨던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형성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셨던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미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셨음을 알리면서 그분이 신이심, 즉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를 신의 존재로 믿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의 신성에 관한 문제는 예수가 생존하시던 때에도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그토록 민감한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요한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로 소개하면서도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임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시는 존재이시며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가지심과 동시에 하나님과 혼연일체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존재에 중요성
사도 요한은 세상의 모든 것이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지어졌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시라면 어떠한 만물도 창조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창조에 대해 말할 때 예수님을 향한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세상을 창조하신 조물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 예수님도 함께 하셨음을 확실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
요한복음 1장 4절을 함께 읽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이미 앞 절에서 우리는 인간의 육체가 하나님과 함께 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신 것은 육체만이 아닙니다. 그분은 영적인 생명도 함께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주신 영적인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을 얻었다 해도 인간은 공허하고 메마른 내면의 소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난을 통해 인류에게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후, 인간은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인간은 죄 가운데서 헤맬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과 분리된 채 축복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바로 이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 안에 거해야만 풍성한 영적인 삶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세상에 빛이신 예수님
그런데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은 빛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주신 생명인 빛이 아니고서는 여전히 죄의 어둠 속에 갇힌 채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존재인지도 모르고, 또 영원한 어둠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목숨조차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우리 눈은 열렸고 새 생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은 영원히 소유하는 것입니다. 용서의 문을 통과하여 하나님과의 화평한 관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 거하시면서 내적인 세계를 급격히 변화시킵니다. 모든 것이 바뀝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이전과 동일한 존재가 아닙니다. 거친 성품은 변화를 거듭하면서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어두운 세상을 비추러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외면하고, 등 돌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 벌레 잡기를 좋아했는데 돌멩이 밑을 뒤지면 영락없이 벌레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내가 벌레를 잡으려고 돌멩이를 들추면 벌레들은 숨을 곳을 찾아 앞다투어 도망합니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대부터 벌레들은 어두움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벌레들은 환한 것을 싫어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그려내고 있는 인간세계가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빛을 비추자 놀란 벌레처럼 숨을 곳을 찾아 어둠 속으로 달려갑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빛을 피해 어두운 곳으로 달아나는 것이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공급하시는 광명한 빛 아래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생명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백성들과 함께 거하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았습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심장이 박동치는 순간마다 창조주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닫게 되면 그러지 않을 텐데 사람들은 요지부동입니다. 주님이 손수 창조하신 백성들로부터 외면당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으로 오셔서 유대인으로 자라시고 택하신 백성들의 마을에서 함께 지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형제, 자매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이처럼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나, 이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서 자동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13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인간적 혈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분명히 못 박고 있습니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났던 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신을 입고 태어나야 하지만 천국에 들어가려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요한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오직 말씀이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의 생명을 얻는 길은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믿고, 죄 용서함을 받아 참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진정한 생명을 얻는 거듭남의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옷을 입으시고 인간과 함께 거하셨다는 사실을 14절에서 다시 한번 언급하며 요한복음 서문을 마무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머무시는 동안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에게서 은혜와 진리가 넘쳐났습니다. 은혜란 죄인을 향해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은혜로 가득 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고 싶어 하셨고, 우리를 가까이 부르셔서 하늘의 빛을 깨닫고 경험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은혜로 가득한 분이셨던 동시에 진리가 충만한 분이셨습니다. 온전히 신뢰할 만한 분이며, 완전한 분이셔서 믿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무엇이든 성취될 것이므로 그분을 믿으면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사도 요한의 뇌리에 박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창조주이시며 생명을 붙들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요한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며 죄를 용서해주실 뿐 아니라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깊이 생각하기
①현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②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③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④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 증거는 무엇인가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기도하기
①하나님의 빛을 비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감사드립시다.
②죄를 사하시고 영적인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③아직까지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는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들을 위해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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