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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결과와 심판

예림의집 2019. 7. 11. 16:34

죄의 결과와 심판


①죄의 결과로 인해서 하나님을 떠난 모든 죄인은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②또한 영적으로 죽어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③그러나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가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로 지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하나님 대신 '나'를 숭배하며, 자아의 만족 자아의 추구, 자아의 기쁨을 위해서만 살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 찾아온 것은 사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 5:12),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로마서 6:23).

이 사망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실제로 죄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곳에 죄인이 함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고, 심판 이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곳에 함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없는 곳은 곧 지옥입니다. 죄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갈라디아서 5:21).

둘째 이 사망은 우리가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영은 왜 죽었을까요? 성경은 분명히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영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마귀, 천사, 천국, 지옥, 영적인 것 등 아무것도 모르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에서 '죽었던'이란 말은 무엇이 죽었다는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영이 죽어서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없음, 곧 하나님에 대하여 죽었음을 말합니다. 다음은 학생들이 세례를 받으면서 한 간증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교회를 찬양 시간에는 멀뚱멀뚱 가만히 있다가 말씀 듣는 시간에는 졸다가 예배가 끝나면 밥 먹는 곳으로 다녔었습니다. 주일예배를 아무런 생각 없이 다니다가 수련회에 간다고 하면 가서 놀다가 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저히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고1 남학생).

"저는 죄가 당연하게 느껴졌고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수많은 죄를 지으며 살았습니다"(고3 남학생).

저는 기독교 학교에 다닙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험담이나 욕이 많이 나왔습니다. 저 역시 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험담을 많이 했습니다. 그중 어떤 아이가 계속 이상한 행동을 하기에 '재가 왜 저러냐? 장애인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이상 행동을 하던 그 아이는 왕따가 되고 말았습니다"(중1 여학생).

영이 죽었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예배를 대충 드려도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존재적 죄인, 죄지을 수밖에 없는 '나', 지독한 자아 중독증에 걸려서 하나님마저 거북한 '나', 열매 맺는 것은 음란, 미움, 시기, 질투, 분노, 불효, 판단, 왕따, 정죄뿐인 '나', '죄 곧 나, 나 곧 죄',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원수 된 '나' 이런 나는 심판 앞에 놓인 죄인입니다. 내가 죄인인 것이 믿어지면 지옥이 믿어집니다. 나같이 끔찍한 죄인이 도저히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 깨달아지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놓인 죄인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그들 가운데서 모두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바라는 대로 행하여,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에베소서 2:3, 새 번역).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심판을 받는 것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죄인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한복음 3:17, 18),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요한복음 12:47).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나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한일서 4:9, 10).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6-8).

어느 전도사님은 중학교 때 예수님을 만나고 신학교까지 갔습니다. 교회에서 회개하라고 할 때 회개도 했지만, 여전히 죄인이었습니다. 죄의 열매가 맺힐 때마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 회개했을 뿐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있을 때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고,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은 자기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연약함'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신학생들을 엄청 정죄하였습니다. 술을 먹거나 경건하지 못한 말을 하면 마음속으로 무시하고 깔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존재적으로 죄인이라는 것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학사 장교를 입대해 소대장으로 격오지에서 근무하는데,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라는 핑계로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정죄했던 모습들을 자신이 하고 있었고,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신학생, 사역자라는 조건도 없어지고, 직업 군인이라는 조건과 '이 사람들은 여기서 잠깐 보고 말 것이야."라는 상황이 주어지자, 정말 절망스러운 '죄 자체인 자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진짜 자신이었고, 마음속으로 사람들을 판단했던 모습이 진짜 자신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것은 모두 상황과 조건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는 용기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대를 하면서 목회를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죄 된 자신의 모습을 보니 절대로 목회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심판이 아니라 구원임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나 없이 산다는 것이 비참한 것을 알았다면 그걸로 되었다. 그것만 전하는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 없이 사는 삶은 정말 비참했습니다. 하루를 기쁘게 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밤새 TV도 보고, 마음껏 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며 유흥가도 다녔는데 하루를 기쁘게 사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만나고 사는 삶은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전도사님은 고백했습니다. "정말 주의 길을 가겠습니다!"

성만찬 때 영광의 손을 기억하는 것이 아닌, 디베랴 바닷가에 베드로를 먹이시고, 제자들을 먹이시던 찢기고, 상하고 못 자국이 선명한 그 예수님의 손을 기억하겠다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겸손함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영혼들, 가난하고 어려운 살마들을 섬기는 사람으로 자신의 삶을 드리겠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너무 큰 감격과 기쁨 속에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당신이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