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성경,말씀,설교,묵상

의의 도를 안 후에 범하는 죄

예림의집 2019. 2. 18. 11:30

의의 도를 안 후에 범하는 죄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베드로후서 2:20-22).


본문 20절과 21절 말씀은 대단히 심각한 말씀으로 교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성경 구절이 되기도 합니다. 2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저희라고 말한 대상은 거짓 선생들이나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 이미 거짓 진리에 미혹되어 진리에서 떠난 자들을 가리킵니다.


1. 처음보다 더 심한 나중 형편

이 말씀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저희가’라고 하는 특정한 대상자를 둔 것으로 이들의 경우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희가 우리 주되 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란 말씀은 거짓 선생들이나 이들에게 미혹 받은 자들의 미혹 받기 이전의 처음 신앙 상태를 가리킨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말씀하신 내용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믿음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지식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교회에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많이 가지고 있어도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신앙적 열매에 대해 ‘세상의 더러움을 피했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갔다는 뜻이 아니라 더러움을 피해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의 열매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회개를 가리킨 말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히 6:4-8절에 나오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용을 겉으로 살펴보면 이들은 마치 중생한 자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 전체에 흐르는 맥과 구원과 심판에 관련된 연관 구절을 연결해 해석을 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중생에 이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겼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마귀에게도 있습니다. 진리에 서지 아니한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처음 얼마간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진실하게 살아보려고 힘썼습니다. 물론 중생하기 이전입니다. 사람이 중생하지 않아도 성령의 인도하심이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과 연결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계속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며 진리의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중생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2. 의의 도를 안 후에 범한 죄

그런데 이 사람들은 중생에 이르기 이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인 것입니다. 얽매었다는 말은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 받아 죄의 종의 자리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생의 생명이 없이 양심의 감동이나 교육의 영향으로 출발한 신앙생활은 생명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하며 진실한 회개의 결실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구원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원했을는지는 모르지만 원한다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찾아 나온 부자 청년의 경우, 생명에 이르기를 원하기는 했지만 그의 재물이 생명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그의 길을 막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시는 경종은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심하다는 말은 그 죄가 더 중하다, 그 죄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신앙촌의 박태선은 남대문 교회 장로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형편이 점점 나빠져 그의 임종 시에는 정신병자처럼 예수님을 자기 제자라고 망언을 하고 욕설을 퍼붓는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는 자기 죄에서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예수에 대한 깨달음이 있은 후에 배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죄 가운데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더러움에 대하여 22절에서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다’고 했습니다. 개는 더러운 것을 모릅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토했던 것을 다시 찾아가 먹기도 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되어 진리를 버리고 이단을 좇는 일은 마치 개처럼 지난날의 행실을 다시 행하는 일과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론

중국의 어느 임금이 돼지를 방 안에서 깨끗하게 키우고 좋은 옷을 만들어 입히는 등, 새로운 모습으로 꾸몄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돼지를 데리고 밖에 나갔는데 더러운 시궁창을 지나가니 얼른 그 시궁창을 찾아 들어가 몸을 둥글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혹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미혹의 무리들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