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은 소중한 예물②
셋째로, '엠프만능주의'입니다. 일부 찬양사역자나 부흥사들의 경우 필요 이상의 큰 고성능 앰프 시스템을 가지고 다니면서 소리의 크기를 최고로 높여 지붕이 들썩들썩할 지경에 이르게 합니다. 그들은 찬송의 소리는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이 아니냐는 단순한 생각에서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성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간의 귀는 일정 수준 이상의 소리를 들으면 고통과 불쾌감을 느끼고 마침내 내용과는 상관없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히려 찬양과 예배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많은 찬양사역자와 부흥사들이 소리의 크기와 영성이 비례한다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도 많이 드렀을 것입니다. "아멘 소리가 작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다"라든지, "더욱 더 크게 불러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라고 합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 말은 거짓입니다. 결코 소리의 크기로 믿음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조용히, 혼자서, 따로 떨어져서 하나님을 만나셨습니다.
넷째로, '성가곡 청문회'입니다. 어떤 교회 장로님은 주일날 성가대원들의 공포의 대상입니다. 자신이 무슨 심사위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늘 평가해서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만약 한 곳이라도 틀리는 날에는 성가대원들에게 왜 죽을 쑤었냐고 책망을 합니다. 아마 그 장로님은 틀리지 않고 제대로 하는 찬송은 밥이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죽이나 누룽지가 되는가 봅니다.
그러나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성가대원들조차 대개 그 장로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찬소잉 끝난 후 성도들이 아멘으로 힘차게 화답하면 흐뭇해하고, 별 반응이 없으면 속으로 '오늘도 죽 쑤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은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생각하지 않고, 다만 예배의 분위기를 위해서, 또는 성도들의 반응을 의식하며 선곡했고, 연습했고, 불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젊은이들에게 발견되는 '자기 취양대로'입니다. 대개 찬송을 자신의 음악적 취향에 따라 선택하고 즐기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찬송을 주님께 에물로 드린다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정서를 위해 선곡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찬송을 받고싶어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취향만을 우선하는 경우입니다. 이 역시 찬소잉 예물입을 모르기 때문에 이러나는 현상입니다.
제가 어느 날 한 모임에서 찬양을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함께 주님을 찬양합니다. <목마른 사삼이>를 부르겠습니다"라고 하니까 한 자매임이 손을 번쩍 들고 대뜸 말합니다. "목사민, 그 찬양 이제 그만 좀 불러요. 너무 불러서 지겹습니다." 이것은 약과입니다. 심지어 일부 찬양사역자라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에는 경쾌한 곡을 선사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찬양곡을 불러 드리겠습니다!"누가 누그를 위하여 무엇을 부른단 말입니까? 이 순간 하나님은 어떠한 표정을 짓고 계실까요? 이는 찬송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대상이 누구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촉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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