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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 어설프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예림의집 2018. 9. 12. 16:46

프레젠테이션: 어설프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K대 학교 공과대학의 김영경 교수와 박우진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 유수의 IT기업 행사에 최신 기술 동향이나 연구 성과들을 발표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김영경 교수를 불러주지 않는다. 반대로 박우진 교수는 여러 곳의 초청을 받으며 몸값 높은 단골 프리젠터로 활약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만들어주는 확실한 발표자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프레젠테이션의 결과는 발표 자체의 평가로 끝나지 않고, 발표자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단 한 번의 발표가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프레젠테이션이 직업인 경우는 없다. 다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할 기회가 생긴다.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준비된 사람은 그 기회를 잘 활용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하지만 준비가 안 되어 있을 경우에는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 차라리 낫다. 어설픈 프레젠테이션 한 번으로 파생되는 부정적 영향이 매우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의 명운을 쥔 장수처럼 임하라

젊은 시절, 프레젠테이션을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게 참 좋았다. 한 번은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선배 한 분이 술에 취해 나타나 청중이 되어주겠다며 회의실에 앉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고,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 “발표는 참 잘하네. 그런데 내일 프레젠테이션의 목적을 잘 이해하지는 못한 거 같네. 발표는 아주 긴 전쟁 중의 작은 전투일 뿐이야. 싸우라고 해서 그냥 싸우면 안 돼. 한 명의 병사가 아니라 전쟁을 지휘하는 장수의 심정으로 생각해 봐. 긴 호흡으로 전체를 봐야 해.” 

선배의 취기 도는 말에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무언가 확 파고드는 것이 있었다. 당시 나는 프레젠테이션 자체에만 집중, 즉 발표 자세, 목소리, 유머, 제스처 등 ‘발표 잘하는 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프레젠테이션의 궁극적인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한편 『손자병법』에서 이르길 장수의 자질이 승리를 결정짓는다고 했다. 모든 프레젠테이션이 전쟁과 같다고 한다면 발표자는 전체를 보는 장수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손자는 천, 도, 지, 장, 법을 장수의 기본 자질이라 했다. 이를 프레젠테이션에 임하는 발표자의 자세에 다음과 같이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 

① 도(道): (발표자를 중심으로) 한마음이 되어야 승리할 수 있다. 적어도 프레젠테이션에 관한 한 그 책무는 발표자에게 있다. 팀워크를 만들어내고 화합하여 한마음으로 준비하도록 하는 것은 발표자가 해야 할 일이다. 어떤 경우에 팀워크에 해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제외하는 일도 발표자의 몫이다. 

② 천(天): 하늘(청중)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젊은 시절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부탁을 했다. “A 기업에 우리 회사의 제품에 대해 발표해 주십시오.” 그런데 이렇게 요청하는 사람도 하수이고 그 말대로 준비하는 사람도 하수다. 당시 의뢰받은 프레젠테이션의 목적은 딜레이 전략(연기 전략)의 일환이었다. 고객의 경쟁 제품 구매 결정을 우리가 준비될 때까지 연기해 달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앞뒤 상황을 살피지 않고 준비를 한다면 결코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발표자는 장수의 마음으로 프레젠테이션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어야 한다. 

③ 지(地): 땅(경쟁자)의 형태를 살펴야 한다. 만약 경쟁 프레젠테이션 상황이라면 경쟁사의 발표자가 누구인지도 파악해야 하고 경쟁자가 어떤 시나리오로 발표할지 예측도 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도와줄 청중 내의 아군, 적군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도 장수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즉, 현상적으로 벌어질 외부적 요인들에 대한 분석과 예측, 그리고 승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긍정적 요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④ 장(將):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감을 주는) 장수여야 한다. 프레젠테이션의 발표자는 청중들을 설득하기 전에 그럴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발표자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면 설득력이 강해지게 마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어진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해야 하고 실제로 그 주제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⑤ 법(法): (업무 분장으로) 조직력을 갖추어야 한다. 싸움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프레젠테이션의 경우도 무엇보다 조직적인 움직임과 역할을 잘 살피고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발표자가 신경을 써야 한다. 작게는 발표 당일 팀원들의 역할을 점검하고, 크게는 전체 앞뒤의 흐름에서 팀원들의 역할을 점검해야 한다. 준비단계에서 업무를 분장하고, 발표 현장에서의 역할을 규정해 주며, 발표가 끝난 다음의 후속 조치로서의 역할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