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사역†/하나님이기뻐하시는찬양

찬송은 믿음의 꽃③

예림의집 2018. 6. 7. 09:44

찬송은 믿음의 꽃③


이제는 비슷한 것 같지만 반대의 상황에 놓인 마리아의 반응을 한번 보도록 합시다. 누가복음 1장 26절에서 38절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가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0, 32)”

당시 마리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녀는 처녀였습니다! 요셉과 결혼까지 약속한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다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전혀 남자를 경험해 보지 않은 동정녀에게 수태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 

많은 이단이나 적그리스도들이 이 부분에서 "마리아가 동정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라는 말로 진리의 말씀을 깎아 내리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그 주장은 가장 중요하고 근본인 믿음을 배제하고 그저 이성적인 잣대로 성경을 그들의 주장에 짜 맞추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많은 증인들이,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우리로 하여금 마리아가 동정녀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동정녀의 수태는 당장 돌에 맞아 죽을 운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잉태 소식은 마리아가 전혀 바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중 자매들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혹은 나와 약혼한 사랑하는 여자가 어느 날 배가 불러와서 "난 다른 사람과 동침한 적이 없는데 저절로 아이를 가졌어!"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제 마리아의 반응을 봅시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눅 1:38)”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동정녀가 아이를 낳는 것과 나이든 부부에게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믿기 어려울까요? 인류 역사상 동정녀를 통한 출산은 마리아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든 부부에게서 아이가 태어나는 일은 종종 있어 왔고, 지금도 가끔 일어나고 있는 일입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를 통해 그 전례를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스라엘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되어 제사장 사가랴의 입을 통해 증거 되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방응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아이를 낳는다."라는 같은 사건 안에서,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 볼 때, 사가랴에게는 축복이고 마리아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정 반대입니다. 당연히 찬송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던 사가랴의 입은 의심의 자물쇠로 굳게 잠겨 10개월 동안 벙어리가 되었고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라고 매달릴 것만 같은 소박한 시골 처녀 마리아의 입에서는 기막힌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녀의 놀라운 고백을 함께 묵상해 봅시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잇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시리로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를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눅1:46~55)”

이 마리아의 찬가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봅시다. 우리의 찬양이 되어야할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윗의 여러 찬송을 좋아하나 그것들 보다 더욱 이 찬가를 좋아합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오늘 우리들에게 주님이 주신 교훈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은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에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믿음이라는 토양 위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찬송의 꽃이 피어납니다. 그래서 “찬송은 믿음의 꽃”이라는 말입니다. 

예배 중에서야 누구인들 찬송을 못하겠습니까? 생활이 풍요할 때, 잘 될 때야 누구든 감사치 못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욥의 경우처럼 엄청난 환난 가운데 놓였다면 그래도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을까요? 아마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욥을 보십시오. 그 처절한 고난의 수렁 속에서 찬란한 찬송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1:21)” 찬송이야말로 보이는 믿음이요, 가장 객관적인 믿음의 가늠자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수시로 자신의 삶 가운데 찬송이 있는가를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찬송이라는 믿음의 꽃이 활짝 피어나고, 풍성한 열매 맺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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