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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전신갑주이다

예림의집 2018. 6. 2. 20:46

예배는 전신갑주이다


①우리가 예배자로 사는 것을 마귀는 가장 싫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하여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②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이 모든 것이 예수님입니다. 곧 전신갑주는 예수님입니다.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예배입니다. 마귀는 자신이 예배를 받고 싶어서 하나님을 대항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는 늘 마귀의 방해가 있습니다.

한 학생이 학교에서 기도 모임을 하고 싶어서 교회 전도사님과 함께 학교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학교는 불교 재단이라서 학교에서는 예배를 드리는 것도 기도를 하는 것도 거의 없었습니다. 운동장에서 학생과 전도사님이 함께 기도를 하는데 마음에 두려움이 들고 힘들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영적인 전쟁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예배가 없던 곳에 예배가 세워지고 기도가 시작되니 영적인 공격이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주일 예배 때에도 졸립게 하고, 지루하게 만들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 모두 마귀의 일입니다. 내 마음이 주님을 향하려고 하여도 끊임없이 세상의 염려, 술취함, 방탕함, 음란함, 시기, 분노, 미움, 외로움, 우울함, 세상 뉴스, 스포츠에 대한 지나친 열정, 연애인에 대한 환상을 던져 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마귀가 며칠을 굶어서 우는 사자와 같이 삼켜 먹을 자를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에게 예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모릅니다. 알아채지 못합니다. 늘 마귀가 넘어뜨리면 넘어진 채로 살아갑니다. 나중에는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한 학생이 수련회 때 너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전도사님에게 와서 자신이 너무 불안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다면 담대해져야 하는데,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지난번에도 은혜 엄청 받았는데, 집에 가서 금방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은혜 받은 후에 가장 처음 드는 마음이 '마귀에게 곧 지겠다!"라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삶이 마귀에게 진 상태로 사는 삶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만질 수도 없고, 우리는 마귀를 능히 대적할 수 있는 자녀 됨(요한복음 1:12)의 권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게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한일서 5:1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야고보서 4:7). 

또한 예수니므이 제자들 중에 칠십 명을 보내어 예배하게 하고 전도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 흥분된 마음으로 예수님과 이렇게 대화하였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17-20).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권능을 사용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깨어 있으면 됩니다(베드로전서 5:8). 제자들은 전도의 길에서 깨어 있었기 때문에 원수를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예배소서 6:12). 문제는 '깨어 있는가?'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늘 원수 마귀가 우리 마음을 삼킬 드싱 바라보고 있음을 알고 깨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싸워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마귀이며, 마귀의 목표는 늘 우리의 마음입니다. 어둠 속에서 우리를 지배하여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향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 때 마음이 분산되고, 삶 가운데서 온통 다른 마음이 가득하다면 "또 당했다."하며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대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신갑주를 입고 있는 군인이 잠들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에베소서 6:13). 하나님의 전심갑주는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입니다.

①진리의 허리띠.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에베소서 6:14 상). 진리의 허리띠를 띠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어도 체험이나 감정에 의지하지 말고 진리에 의하여 예수니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체험이나 감정에 의지하는 사람은 마귀가 사자처럼 삼킬 수 있지만, 진리로 무장한 성도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 앞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이 꼼짝 못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여기서 진리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②의의 호심경.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에베소서 6:14 하). 호심경은 전쟁 때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입는 갑옷입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은 "예수님의 의"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죄에 넘어지거나, 무너졌을 때 "너는 죄인이야! 너는 이제 끝났어! 하나님이 또 죄 지은 너를 용서하실 것 같아?"라며 불화살을 쏩니다. 그때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 "예수님의 의"입니다. 예수님의 의는 예수님이 우리를 십자가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연약할 때에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죄책감에 더 무너지게 하여서 영원히 하나님을 떠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때 의의 호심경이 있음을 믿는다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탄이 여러분 안에 "너는 죄인이야! 너는 이제 끝났어! 하나님이 또 죄 지은 너를 용서하실 것 같아?" 하고 공격할 때가 있었습니까? 만약 사탄이 또 공격해 온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③평안의 신발. "형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에베소서 6: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을 신는 것도 예수님입니다. 신발은 우리가 걸을 때 늘 우리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신발을 신고 우리는 위험한 곳을 가야 할 때도 있고, 두려운 곳을 갸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때 평안의 복음이 준비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평안의 복음은 예수님입니다.


④믿음의 방패.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에베소서 6:16). 마귀는 단순히 성도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게 한 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교회에 실망하게 한 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공격을 감당하려면 믿음의 방패를 들어야 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은 언제나 변함없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나의 영적 상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였다. 죄 된 본성은 꿈틀꿈틀 일어나고, 주님에게 죄의 쓴 뿌리들을 맡겨드리지도 못한 채 세상의 열매들은 내 마음속에 열매 맺고 있었다. 나태해진 마음은 주님을 찾지 않게 되었고, 세상적인 정욕만이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죄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수련회 뒤로 '내가 이 죄만큼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장담했던 여러 죄에서 나는 무너졌고,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나태함이 나를 집어삼켰고, 담대함도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죄에 대한 처절한 회개가 없었기 때문에 주님과의 장벽은 더 쌓이는 것만 같았고, 학교에서 나는 참담하게 무너졌다. 그런 상태로 오늘 예배에 갔다.

오늘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시는데,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장면이 설교 본문이었다. 이중벽이었던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정말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았던 여리고,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여리고는 무너졌다. 하지만 여리고를 무너뜨린 후 여리고에 비해 정말 비교도 안 되는 작은 아이 성을 공격할 때,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 자신들의 뜻을 내세운 이스라엘 민족은 대패를 당했다. 찬양 가사가 너무나 은혜로웠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중약) 거룩한 손을 올려 기도할 때 주님이 나를 통해 비로소 역사하실 수 있음을 보게 되었다(고3 영성 일기)>


⑤구원의 투구. "구우너의 투구와(에베소서 6:17 상). 마귀는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의심하게 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 군인들은 모두 방탄 헬멧을 쓰게 합니다. 방탄 헬멧 없이는 험한 길을 갈 수도 없고, 위험한 곳에 잠시도 있을 수 없습니다. 구원의 투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의 투구 없이는 험한 세상을 믿음으로 살 수도 없고, 위험한 세상 속에 잠시도 살 수 없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한 한 학생이 만만치 않은 등록금으로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불평불만이 생기고, 원망하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귀가 원하는 대로 원망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널 합격하게 한 이도 나이고 보내는 이도 나인데 어찌하여 염려하느냐?" 

자신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이 믿어졌습니다. 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정말 2학기 때 장학금을 받고 싶으면 오늘부터 영어 공부를 해라! 나도 열심히 일할테니 너도 열심히 일하고 있거라!" 입학 후 신학생으로서 성실히 공부했고, 2학기 때는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만약 마귀가 주는 생각대로만 했다면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⑥성령의 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에베소서 6:17 하). 예수님도 마귀에게 사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였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유능한 장수가 검을 사용하는 것처럼 말씀을 사용할 수 있어야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이 무기가 되려면 순종을 통해서 말씀의 검을 더 예리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새벽에 갑자기 마귀의 유혹이 있었다. 이렇게 공격한 건 오래간만인데 후훗. 음란한 생각이 나게 하려고 했다. 그때 비몽사몽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무릎 꿇고 기도했다. 어와나에서 외운 말씀 에베소서 6:17 "구우너의 투구와 성려으이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가 생각나서 성경책을 읽었다. 로마서 6:15-23을 읽고 유혹을 이길 힘을 얻는 느낌? 역시 하나님!

요즘 들어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 같아서 하나님에게 감사하다. 내가 하루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써 있다. 학교에서도 말씀을 읽는다. 성경책, 아! 왜 눈에 엄청 튀는 펄 노랑색을 사 가지고 ... (중3 영성 일기)> 예배에 승리하기 위해서 나에게 지금 필요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무엇입니까? 이유를 적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