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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맺는 삶으로서의 예배

예림의집 2018. 6. 2. 14:37

열매 맺는 삶으로서의 예배


①하나님의 진짜 관심은 예배자에 있습니다.

②삶으로 예배하는 것이며,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③매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여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관심은 예배에도 있지만, 진자 관심은 "예배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주일 예배나 교회,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를 드리는 일도 무척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배 시간에만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 아니기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24시간 365일 함께 하십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년 8,760시간 중에 주일 예배 2시간만 주님을 만난다면 104시간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이유는 늘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계시록 3:20). 위의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와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밥 먹는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은 학교에서 누구와 함께 밥을 먹습니까? 그 친구와 밥을 먹을때 느끼는 기분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 하여도, 하루에 한 번 같이 밥 먹기도 어렵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여도 하루에 한 번 정도 같이 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와 늘 함께 밥 먹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 어느 사람보다도 친밀한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배 때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마음에 오신 예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 마음에 오신 예수님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예수님이 오셔서 나의 마음 밭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는 삶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예배입니다. 교회에서 모이는 예배는 받는 시간이 아니라 드리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오신 그 주님에게 나의 찬송을 드리고 헌금을 드리고, 고백을 드리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청소년이 수련회 때 큰 은혜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 은혜를 곧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수련회가 시작될 때, "사랑을 회복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 제목을 말합니다. 하지만 내 안에 오신 예수님을 정말 믿는다면 이것처럼 서운한 말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살다가 어느 날 아내에게 분위기를 잡고 "여보! 우리 사랑을 회복하자!"라고 한다면 아내는 감동하겠습니까? 실망하겠습니까? 당연히 실망하게 됩니다. 연예를 하고 사랑이 깊어지고, 그래서 결혼까지 했는데 다시 사랑을 회복하자고 하면 너무 서운한 말입니다. 사랑은 갈수록 깊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나와 깊은 사랑을 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으면 내 마음과 생각을 예수님에게 드림으로써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믿음은 마치 전원 버튼을 누루면 컴퓨터가 켜진다는 믿음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물에 대한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믿음은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세상 다른 것보다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은 것입니다. 내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24시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1, 2).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 영적 예배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삶 속에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아침에 더 잠자는 걸 내려놓고 말씀 앞에 나아갔다. 요즘 말씀 보는 것이 너무 좋다. 옛날에는 큐티할 때 의무감이 더 컸었는데 이젠 시키지 않아도 누가 막아도 묵상 시간을 지키고 싶다. 말씀을 보기 전에도, 보면서도 너무 행복하다.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울려 퍼지는 것 같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오늘 계속 찬양이 맴돌았다. 어제 저녁 자기 전에 갑자기 생각난 찬양이 있었는데 <목마른 사슴이>라는 곡이었다. 예전부터 알던 찬양이었는데 오늘따라 가사가 너무 은혜가 되었다.

"세상에 줄 수 없는 사랑 내 맘 고동치게 하네 주 곁에 날 이끄소서! 주님 보기를 만져 보기를 주님 푼에 안겨 보기를 나 이제 평생 사는 동안 주님만 사랑하며 살리 멋 훗날 주 앞에 서는 날 주께 말하리 사는 날 동안에 주님만 사랑했다고." 계속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찬양을 생각하면서 도서관을 향했다.

점심 때 갑자기 말씀이 너무 보고 싶어졌다. 밥이고 뭐고 당장 말씀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점점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느껴졌다. 내가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하나님이 묵상이 되었다. 그분의 함께하심이 느껴졌다. 너무 행복했다. 다른 생각은 들어도 금방 사라져 버렸다. 계속해서 찬양이 멤돌았고, 말씀이 너누 보고 싶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 하나님을 찾게 되고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커서 가는 느낌이 들었다. 벅차도록 행복했다. 어떤 부흥회를 다녀오고, 집회를 마친 후 이런 일이 생긴 것이었다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을 텐데, 잔잔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강하게 느껴져서 너무 감사하고 신기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읽었던 일상적인 삶 속에서의 임제하심에 대한 그링 생각났다. 감사, 또 감사!(고3 영성일기)> 여러분의 이번 주 삶의 예배를 통해서 어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발견하였습니까?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에스겔서 36:26).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고 하루 종일 성적 걱정, 돈 걱정, 화나는 일, 재밋거리, 먹을거리, 드라마나 세상 소식, 게임 생각, 스포츠 생각을 하면서 삽니다. 우리 마음에 온갖 세상 것들과 염려와 두려움으로 꽉 차 있어서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고 삽니다.

여러분의 방에 모르는 사람이 와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잘못 왔나 보네요."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당장 소리를 지르고, 경찰을 불러서 그 살마을 쫓아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라는 방에 악한 생각, 죄 된 생각, 쓰레기 같은 생각이 들어와도 "제가 잘못왔네 보네요."하면서 삽니다. 일주일 동안 예수님을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까? 그 나머지 시간에는 내 마음에 어떤 생각드링 있었습니까?

마귀의 일은 우리의 마음을 미혹하는 것입니다(고린도후서 4:4).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려지면 아무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신 그 놀라운 영광을 내 삶 속에서 누릴 수 없습니다. 

삶의 예배는 곧 마음을 가꾸는 것입니다. 예배자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마음의 밭이 있는 사람입니다. 내 마음에 다른 것이 없게 해서 온전히 예수님과의 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1-30절에 네 가지 마음이 나옵니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땅입니다. 마음이 돌밭같은 사람은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환난이나 박해 때에 넘어집니다. 마음이 길가와 같은 사람의 문제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았습니다. 마음이 갈시떨기와 같은 사람의 문제는 세사으이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결실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마음의 돌과 가시떨기는 정리되었습니까? 마음이 길 가처럼 딱딱하지는 않습니까? 좋은 마음의 밭이 되었습니까? 중요한 것은 마음을 가꾸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온전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브리서 12:2).


사도 바울과 베드로도 마음을 가꾸는 것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에베소서 3:16).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베드로전서 3:4). 속 사람, 우리 마음에 숨은 사람, 모두 마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내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훈련된 사람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전부를 드린 삶의 예배입니다. 마음을 드린 것이야말로 전부를 드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예수님을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12:33). 우리가 마음을 주님에게 드렸을 때,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시니 예수님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 5:22-24).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우리에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이 몯느 약속의 말씀은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곧 '마음에 예수님을 모신 사람"에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과 친밀함 가운데 자신의 삶 속에서 교제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