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은 믿음의 꽃
지난 시간에는 "찬송은 성도의 의무"라는 비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믿음의 열매인 찬송에 대한 비밀을 밝혀 보겠습니다. "찬송은 믿음의 꽃"입니다. 열매는 열매로되 계절을 가리지 않는 꽃.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환경을 가리지 않는 꽃. 그 열매의 달콤함이 온 세상을 놀라게 하고 하나미의 보자에까지 이르는 꽃. 십자가 위에서 가장 크고 풍성하고 완전하게 맺어진 꽃. 고난과 훈련과 시련 속에서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맺어지는 꽃. 그리스도를 처음 영접하여 첫 번째로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소중한 꽃. 그것은 바로 찬송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답고 탐스러운 꽃을 맺고 가꾸는 데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라는 토양이 있어야 하고 평안이라는 수분과 감사라는 거름이 항상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 열매의 씨앗은 결코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떠한 권세나 권력을 이용해서 빼앗을 방법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요, 축복일 따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 속에 무엇보다 이 열매가 활짝 맺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믿음의 유, 무를 가리는 척도요 영생의 푸른 신호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의 유. 무를 가리는 시비에 휩싸여 때로는 판단 자가 될 때도 있고, 그 판단의 대상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내린 판단의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요? 헌금 잘 하고 교회 봉사 잘 하면 대개는 일등 신자 칭호를 받습니다. 젊은 나이에 권사, 장로가 되면 신앙의 우등생으로 인정받습니다. 이런 근거가 모두 틀리다는 말은 아닙니다. 누구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자가 헌신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헌신의 척도를 봐서 직분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예외가 있습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한번 보십시오. 사랑이나 헌신과는 아무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바치고 충성합니까? 그런 그들도 그 집단에서는 물론 일등 신자 칭호를 받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내렸던 그 수많은 판단의 기준들이 너무나 인간적이요 세상적인 시각 이었다는 말입니다. 계시록 3장 1절의 "내가 네 행위를 아나니 네가 살았다고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결코 사데 교회만을 향해 하신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는 이런 책망을 받아 마땅한 교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는 결코 어떠한 직분이나 성도라는 구별된 명칭이 곧 믿음의 표요, 영생의 요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성적인 자로 결코 잴 수가 없는 이 믿음의 분량은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을까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찬송"입니다. 왜냐하면 생활 속의 찬송은 그것이 곧 믿음의 유. 무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엉뚱한 강변이냐"고 묻고 싶으십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을 때, 기쁨이 없을 때, 감사가 없을 때, 바로 그때에 여러분 입술에 과연 찬송이 있었던가요?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찬송은 믿음의 여러 요소들로 인한 증세이지 믿음의 요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해하기 어렵나요? 믿음의 증세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믿음의 요인이란 그것이 때문에 믿음이 생겨났다는 이야깁니다. 찬송이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고 타인이 지시하거나 제어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누가복은 1장 5절에서 20절까지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보신대로 천사 가브리엘이 제사장 사가랴에게 세례요한의 출생을 예고한 내용입니다. 이 글에는 당시 최고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의 신앙 상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감히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었던 종교 지도자의 믿음의 허상이 낱낱이 들어 납니다. 제사장 사가랴는 매우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부족함이 있다면 그들이 그토록 간구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자신들의 형편으로는 더 이상 자녀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가랴 앞에 선 천사 가브리엘의 말입니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위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14~17)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입니까? 스가랴의 오랜 기도에 응답을 해주시는 내용입니다. 이름까지 지어주셨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도 그의 출생을 기뻐한다 하였습니다. 나실인으로 구별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들을 주심만도 감사한데 그가 할 일까지 말씀해 주십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가장 존경받던 선지자 엘리야! 아들을 낳는다는 소식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데 거기다 그의 존귀함이 어느 정도이며 그의 출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울러 그가 감당해야 할 거룩한 사명이 과연 어떤 것인지 까지 아주 자세히 일러 주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혹시 이러한 경험이 있습니까? 아마 현실이 아니라 꿈에서라도 이런 경험을 했다면 자다 말고 할렐루야를 외치며 찬송할 것입니다. 감사헌금을 갑자기 10배 이상으로 넉넉히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스가랴에게는 꿈이 아니요, 현실이며 그것도 사사로운 장소가 아닌 성소에서 분향 중에 체험한 일이건만 그 입술에서 할렐루야가 나오기는커녕 가장 불신앙적인 투정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저런, 저 말이 제사장에게서 나올 말입니까?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반응입니다. 그가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삭의 내용을 모를까요? 제사장이? 사가랴의 이런 불 신앙적 반응은 감히 상상도 못할 놀라운 것입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망신스럽습니다. 그 결과를 한번 보십시오.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사랑의 하나님은 너무나 관대하십니다. 저 같으면, 제가 하나님이라면 당장 죽여 버리고 말 것입니다.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사장의 입에서 나온 가장 불신앙적인 반응의 말. 잘 보십시오.
찬송해야 할 때 찬송하지 않으면 이처럼 영적 벙어리가 됩니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밑줄을 100번 그으십시오. 사람들 앞에서 아무리 말을 잘 한다 해도 기도하지 못하고 찬송하지 못하는 성도의 입은 결국 벙어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벙어리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이 마치 영광의 면류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을 자랑하기에만 급급할 뿐 정작 그 심령은 불신앙으로 가득 차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주님이 교회를 이끌려고 하면 냉소를 보내고 세속적인 명분을 내세워 거부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입니다. 찬양사역을 하면서 가장 많이 부딪히고 싸우고 반대하고 핍박하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대부분이 교회 장로요, 권사요, 안수집사요, 그 교회에서 몇 십 년씩 몸담은 토박이 신자였다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소위 말하는 그들이 그어 놓은 경건이라는 잣대를 이용해서. 그들만의 경건!
자, 이제는 똑같은 아니 비슷하지만 반대의 상황에 놓인 마리아의 반응을을 한번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장 26절에서 38절을 읽으십시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가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당시 마리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녀는 처녀였습니다! 요셉과 결혼까지 약속한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다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전혀 남자를 경험해 보지 않은 동정녀에게 수태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 많은 이단이나 반 그리스도 교도들이 이 부분에서 "마리아가 동정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라는 말로 진리의 말씀을 깎아 내리려고 시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그 주장은 가장 중요하고 근본인 "믿음"을 배제하고 그저 이성적인 잣대로 성경을 그들의 주장에 마추어 짜 마추는 것이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많은 증인들이, 그리고 우리의 양심의 중심이 되시는 성령님이 우리고 하여금 마리아가 동정녀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동정녀의 수태는 당장 돌에 맞아 죽을 운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잉태는 마리아가 전혀 바라는 소식이 아닙니다.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자매님들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혹은 나와 약혼한 사랑하는 여자가어느 날 배가 불러와서 "난 다른 사람과 동침한 적이 없는데 저절로 아이를 가렸다."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제 마리아의 반응을 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동정녀가 아이를 낳는 것과 나이든 부부에게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 이 두 가지경우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믿기 어려울까요? 인류 역사상 동정녀를 통한 출산은 마리아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든 부부에게서 아이가 태어나는 일은 종종 있어 왔고, 지금도 가끔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를 통해 그 전례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스라엘의 자랑스런 역사가 되어 제사장 사가랴의 입을 통해 증거 되어 온 사실입니다. 이 두 사람의 방응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아이를 낳는다."라는 같은 사건 안에서, 그 의미는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 볼 때 사가랴에게는 축복이고 마리아에게는 제앙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정 반대입니다. 당연히 찬송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던 사가랴의 입은 의심의 자물쇠로 굳게 잠겨 10개월 동안 벙어리가 되었고 "차라리 저를 죽여 주십시오"라고 매달릴 것만 같은 소박한 시골 처녀 마리아의 입에서는 기막힌 찬송이 터져 나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잇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시리로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를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눅1:46~55) 이 마리아의 찬가를 10번을 반복해서 읽으십시오. 우리의 찬양이 되어야할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개인적으로 다윗의 여러 찬송을 좋아하나 그것들 보다 더욱 이 찬가를 좋아합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오늘 우리들에게 주님이 주신 교훈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은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에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믿음이라는 토양 위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찬송의 꽃이 피어나는데, 그래서 찬송은 바로 믿음의 꽃이라는 말입니다.
예배 중에서야 누구인들 찬송을 못하겠습니까? 생활이 풍요할 때야, 잘 될 때야 누구든 감사치 못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용의 경우처럼 엄청난 환난 가운데 놓였다면 그래도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을까요? 아마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 조차도! 그렇지만 용을 보십시오. 그 처절한 실패의 터전 위에서 찬란한 찬송의 노래를 피우고 있습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1:21) 때문에 찬송이야말로 보이는 믿음이요, 가장 객관적인 믿음의 가늠자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수시로 자신의 삶 가운데 찬송이 있는가를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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