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승리의 삶
①죽는 것은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것이 승리한 것입니다.
②죄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 것이기 때문입니다.
③죽음을 통과해야 성겨의 모든 말씀이 무거운 율법이 아닌 놀라운 약속이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참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래서 '내가 죽어야지!'라는 것을 억울한 상황에서 '끙'하면서 견디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죽었다'는 말은 놀라운 승리의 고백입니다.
한 전도사님이 젊은이교회 청년들과 함께 모란에 있는 모텔촌으로 전도를 나갔습니다. 가서 음란 전단지를 줍고, 모텔 건물에 손을 대고 음란함을 대적하는 기도를 하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추위에 일하시는 분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타 드리는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도사님이 인터넷으로 야한 것을 본 것입니다. 음란함에 무너졌던 날이었습니다. 너무 큰 죄책감이 들면서 스스로에게 큰 실망이었습니다. 자신을 용서 못할 정도였습니다. 예배 때에도 이 마음이 해결 안 됏습니다.
그래서 성령집회가 끝나고 나서 '아무도 연락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음란한 땅에 가서 음란함과 싸우는데, 제가 음란한 것을 봤으니 너무 부끄러운 겁니다. 그런데 성령집회 후에 청년들에게서 전도를 가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가기 민망한데, 모텔촌 전도를 갔습니다.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처음 찬양이 <예수 우리 왕이여>였습니다.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셔서 보좌로 주여 임하사 찬야을 받아주소서 주님을 찬양하오니 주님을 경배하오니 왕이신 예수여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그때 이 찬양을 통해 뜨겁게 고백하였습니다. "내 더러운 마음에 왕으로 오셔서 주님! 다스려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큰 소리로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 나는 죽었습니다. 내 안에 주님만 사십니다! 예수님, 나는 죽었습니다. 내 안에 오직 주님만 사십니다!"
그 고백과 동시에 다시 하나님의 기쁨이 부어지고, 죄사함의 확신이 들고, 너무 큰 감격이 솟아났습니다. 그 후 전도사님 안에 깨달아진 것이 있었습니다. "나는 죽었지. 그래 나는 죽었지. 나는 죽었고, 내 안에 예수님만 살아 계시지.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죄를 사해 주셨지. 이미 죄를 이기셨지. 사탄아! 약오르지. 내가 오늘도 내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승리하여 이곳에 왔다. 사탕아! 약오르지?"
죄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나의 다짐도, 나의 확신도 아닙니다. 오직 단 하나뿐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로마서 6:13, 표준새번역).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 이라는 말이 곧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은 죄 앞에서 불의의 연장에서 의의 연장으로 바뀐 사람입니다. 죄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나의 다짐도, 나의 확신도 아닙니다. 오직 단 하나뿐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삶 가운데 죽음을 받아들이고 순종함으로써 죄에 승리한 경험이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삽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를 만족시키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가지지 못한 열등감, 박탈감에 마음 아파합니다. 그런데 정말 웃긴 것은 그 열등감 속에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를 얻으면 우리는 곧 허무해 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된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전부는 '가지지 못했을 때의 박탈감, 가졌을 때의 허무감'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은 '내 삶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은 우리에게 내 삶이 바뀐 축복을 주는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내가 죽었다!'는 말은 놀라운 승리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할 것도 없고,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신실하신 목사님 가정이 있습니다. 한 기도 모임에서 이 부부가 함께 간증을 하였습니다. 이분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는데, 셋째 아이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겁니다. 몸이 아파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고, 오래 살아도 40세를 넘기기 어렵다고 합니다. 먼저 목사님이 간증했습니다.
이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알고, 목사님은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었다고 합니다. 밥도 못 먹겠고, 아무것도 못하겠더랍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내가 지금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했구나. 이 일에 나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아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죽었습니다. 주님이 내 삶에 주인입니다. 이 아이는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기도를 하는데, 주님이 이런 마음을 주셨다고 합니다.
"아들아, 너에게 보낸 이 아이가 만약 다른 가정에 태어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라 알았으니 유산시켰겠지요." "그래,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 이 아이도 사랑한단다. 그래서 이 아이를 향한 나의 계획이 잇단다. 그런데 너희 가정 외에는 믿을 만한 가정이 없구나." 주님이 주신 음성이 목사님의 마음에 박혔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통곡을 하면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주님이 나를 어찌 어떻게 생각해 주십니까?"라고 감사의 기도를 하였답니다.
이어서 사모님의 간증을 하였습니다. 사모님은 자신이 낳았다는 것 때문에 올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말을 시작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꾹꾹 참고 있다가 어느 날 하나님 앞에서 소리지르듯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것이 저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신가요?"
계속 이 말만 하면서 우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순간에 과거의 한 장면을 기억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 장면은 어느 날 여섯 살 된 딸에게 선물을 사다 주었는데, 그것을 뜯어 보더니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내던지며 화를 내고 울던 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딸을 보면서 느꼈던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서 들리더랍니다.
딸이 얄밉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을 여전히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 정말 딸을 생각해서 선물을 주었는데, 그것을 내던지는 딸을 보면서, '언젠가 어머니인 나의 마음을 이는 날이 오겠지.'라면서 호히려 기대를 했던 바로 자신의 모습과 말을 기억나게 하신 것입니다. "아, 나는 하나님의 선물 앞에 그것을 내던지면서 울고 있는 내 딸의 모습이구나."라고 깨달아졌답니다. 그 순간 슬픔과 고통 대신 그 아이를 이 땅에 보내신 주인 되신 하나님의 계획이 깨달아지고 믿어지며 너무 감사하더랍니다.
나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주인 되시면 이 세상에 두려울 일도, 염려할 일도 없습니다. 이제 내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이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4),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위의 두 성경구절에서 가끔씩 기뻐하라고 하였습니까? 상황에 따라서 기뻐하라고 하였습니까?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라고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나'로서는 완전히 불가능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주인이 바뀌면 "아멘' 되어지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믿습니까? 지금 이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삶 가운데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바뀐 일들을 생각해 봅시다.
<오늘 아침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일어나서 시험 보러 갈 준비를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큐티하고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시험장으로 갔다. "우아아앙 떨려 떨려!" 하면서 시험을 봤다. 거의 네 사간 동안 시험을 봤다. 시험을 보면서 "으악! 주님!"이라고 혼자 외치기도 하면서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딱 끝나고 나오는데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내가 자했나?' 싶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을 타러 갔다. 지하철을 타서 찬양을 들으면서 창밖을 보는데 비가 오면서 푸른 하늘을 보며 갑자기 너무나 감사했다. '내가 눠 때문에 이렇게 감사하지?'라고 돌아보며 생각했다. 그때 딱 알게 되었다.
내가 시험을 잘 보든 못 보든 내가 대학을 가든, 못 가든, 내가 한국에 있든 외국에 있든 주님이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은 변하지 않으며 내가 하나님의 딸이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고 주님이 나를 사용하실 것이라도 믿음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에 너무나 감사해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언제 내가 이렇게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나 감사해서 혼자 막 실실거리면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이 사실들이 너무나 확실하게 믿어졌다. 주님 짱! 완전 감사해요! 정말 어떠한 상화에서도 주님을 찬양하고 싶다는 고백이 이루어지는 것 같어서 더 감사하다.(고3 영성 일기)>
시험 결과에 상관없이 대학에 합격하든, 떨어지든 상관없이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학생 삶의 주인이 예수님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게 되는 삶'은 우리가 경험하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 최고의 축복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자신을 감추거나 억누르지 않고, 자신에게 거짓 가면을 안 씌우고 살게 됩니다.
감추고 싶은 죄, 두려움, 무지함, 욕심, 믿음 없음, 불순종, 부모님, 상처, 외모 콤플렉스까지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것에 문제르 ㄹ삼던 '내'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을 깨달으면 자신을 억누르지 않고 드러내고 또 드러냅니다.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두려워함도 없고 문제로 여기는 마음도 사라집니다. 이것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을 믿는 사람이 누리는 진정한 자유요, 최고의 축복이요, 놀라운 승리입니다. 당신은 온통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을 통해서 위의 친구처럼 자유함을 경험하였습니까?
복음은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 '존재적 죄인'인지를 깨닫고, 그 죄인을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믿는 겁니다. 그 십자가에 죄된 생명인 나의 옛자아도 함께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이제 예수 생명으로 다시 우리가 새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할 때 우리 안에 성령님이 오셔서 이 모든 말씀을 완성시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저는 육신적으로 힘드록, 실망스러운 제 자신의 모습으로 힘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가득할 때, 4월 고난주간이었습니다. 고난주간 큐티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4절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절규와 같이 외치신 말씀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 말씀을 계속 묵상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것은 예수님이 하실 말씀이 아니라 제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했어야 할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눈이 시리더니, 눈에서 눈무링 핑 돌고 감당이 안 되게 눈물이 큐티 공책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내 펑펑 울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왜 십자가에서 그 말을 했는지 아니? 원래는 네가 내 앞에서 했어야 했던 말이란다. 그 말을 내가 대신한 거란다. 네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했어야 하는 말을 내가 대신 한 거란다. 내가 너에게 행한 일이 이것이다." '내가 죽었다!'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분명하게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이후로는 '힘들다!'라는 말조차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너무나 큰 기쁨 속에서 사역했습니다. 상황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제 죽음이 분명히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을 다시 고백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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