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고 예수는 살고
①죽는 것은 어떤 느낌이 아니라 죽은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여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②그러기 위해서 사망선고, 사망선언이 필요합니다.
③최를 처리하려면 나를 처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복음을 통해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산' 믿음을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수련회에서 한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신학교에 온 이유가 다름이 아니라, 군목이 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준비를 잘해서 군목으로 선발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기도대로,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이루어지려는 순간에 큰 좌절을 겪었습니다. 군목 훈련을 받다가 급성당뇨로 인한 쇼크로 훈련을 받지 못하고, 면제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당뇨가 심해서 군목으로 군 생활은 고사하고 일반병으로도 군 생활을 못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제껏 삶의 소망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꿈이 사라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정상적으로 사역도 할 수 없었고, 아무도 그런 목사님과 만나주지도, 결혼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고난 중에 신학교 때 자신을 조하하던 자매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함녀서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충격적인 일이 생깁니다. 당뇨병을 알게 된 지 15년이 되는 해에 만성신부전증이라는 판정을 받습니다. 정확히 결혼한지 10면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 후로 일주일에 세 번을 혈액투석을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친형이 너무 안타까워서 신장을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맞았지만, 의사는 신장만 아뿨서는 후에 어차피 또 만성신부전증에 걸릴 거라서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말하는 것은 너무 절망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당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뇌사자의 췌장과 신장을 동시에 이식받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기다려야 받을 수 있습니까?" "최장 대기자만 2,000명이 넘습니다."
원망과 절마으이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가 지나지 않아서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뇌사자의 가족이 장기기증을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앞에 2,000명이 다 조직이 맞지 않다는 겁니다. 정말 기적적으로 모든 조직이 맞아서 이식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처음으로 소변을 볼 때였다고 합니다. 소변을 보면서 감격하여 펑펑 울었습니다. 신부전증을 앓고 나서 4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힘으로 소변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장기기증에는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조직이 맞아도, 다른 장기에 의한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나의 몸이 다른 사람의 장기를 공격한다든지, 다른 사람의 장기가 나의 다른 장기를 공격합니다. 이 기간이 완전히 지나야 장기기증은 성공합니다. 그래서 이식 장기가 자기 몸에 완전히 적응을 할 때까지 "면역억제제"를 먹습니다.
면역억제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면역체계가 형성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약입니다. 다른 사람의 췌장과 신장이 내 안에서 정상적인 기능을 하려면, 나머지 모든 면역체계를 다 죽여야 한다는 겁니다. 유일하게 자신을 살릴 은혜로 받은 다른 사람의 장기가 내 안에서 제 기능을 하려면, 자긴의 면역성이 철저하게 죽어야 자기 몸이 장기를 거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당히 오랜 기간 이 약을 먹어야 합니다. 그 목사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나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것을 너무나도 절실히 느꼈습니다." 여러분은 이 간증을 들으며 어떤 느낀점이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마음에 영접할 때 이미 죽었습니다. 마귀와 죄의 종노릇하던 우리의 옛 자아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장례식을 치르고 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로마서 6:11).
중요한 것은 "여기서 사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죽어야 하는 삶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미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처럼 우리가 할 것은 이미 우리가 죽은 자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사망 선고를 지금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따라해 봅시다. "나 000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니제 000는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000의 생명이시고, 000의 전부이십니다!"
우리 자신에게 사망 선고를 해야 합니다. 죽음이 실제가 되어야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 되시고 주인 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십자가 앞에서 내가 죽었음을 인정하고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죽음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오직 죽음으로만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우리 안에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졋음이라"(골로새서 3:3). 우리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이미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기도의 사도'라는 별명을 가진 존 하이드가 인도 선교사로 헌신하기 위해 배를 타고 인도로 갈 때였습니다. 그 순간까지 존은 자신을 대견하게 여겼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어머니 역시 신앙심이 깊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선교사로 헌신했고, 아주 훌륭한 선교사, 위대한 선배 선교사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인도어를 열심히 공부하면서 위대한 선교사가 되는 데 장애가 될 만한 것들은 무엇이든 용인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결심했습니다.
그가 배에 올랐을 때, 선실에는 아버지의 친구인 어느 목사님이 보낸 편지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뜯어서 읽었는데, 편지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짤막한 몇 마디 때문에 그의 자존심은 잿더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맹렬한 분노가 마음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존! 네가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너를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존은 화가 치밀어 올라 편지를 구깃구깃 구겨서 선실 바닥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분을 주체할 수 없어서 갑판 위로 올라갔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가지!" 이 말은 그가 지금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다는 의미를 함축했습니다. 그는 갑판을 거닐며 혼잣말을 했습니다. '나는 선교사로 인도에 가고 있어. 그저 그런 선교사가 아니라 회고의 선교사가 되기 위해 가는 중이라고. 그렇다면 당연히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아니겠어? 그런데도 내가 성령 충만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다니 정말 어처구니없고 주제넘은 말이잖아.' 그렇게 한동안 갑판 위를 하염없이 오락가락했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맹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아버지 친구를 정말 사랑했고 도 그분이 평생 신령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선실로 내려가 구깃구깃 구겨져 던져 버린 편지를 집어 편지지를 곧게 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괴로웠지만, 그 목사님이 옳다는 것과 자신이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절망의 구덩텅이에 내려가 자신을 성령으로 채워 달라고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는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자신의 실체와 그가 이기적인 야망을 품은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는 주를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밑바닥에는 흉물스러운 자아의 추구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더욱 간절히 기도하여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배가 항구에 당도하기 전에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령 충만해지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인도에서 보게 될 언어 시험에서 낙방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봉사하는 무명의 선교사가 되어도 좋으니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주세요." 이 영적 몸부림은 항해가 끝날 때가지 계속되었습니다. 존 하이드 선교사는 믿음으로 자아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때가 바로 존 하이드 선교사가 십자가 복음 앞에 진실로 서는 순간이었고, 위대한 선교사로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죄를 처리하려면 나를 처리해야 합니다. 죄는 존재의 문제입니다. 존재가 바뀌지 않으면 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나의 복음을 나눔으로써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여기면, 이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온전히 역사히실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여러분도 자아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고백해 봅시다. 아래의 내용을 참고해서 작성하면 됩니다. 나에 대한 완전한 사망 선고입니다.
①죄의 종노릇하던 과거의 자신 모습
②아직 내 삶에 나타난 죄는 아니지만, 언제든 상황과 조건 그리고 용기만 주어지면 내 삶에 나타날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자아의 문제들(교만, 자기의, 분노, 미움, 음란, 시기, 탐욕, 자기 연민, 자기애, 자살의 마음 등)
③죄된 나로 일어난 수많은 문제
④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음을 고백
⑤예수님이 생명되시는 새로운 삶에 대한 결단과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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