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후원 사역†/복음 이야기

죽은 후에도 구원을 받을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림의집 2017. 10. 26. 14:24

죽은 후에도 구원을 받을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혹 죽은후에도 구원받을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있을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은후에는 구원받을 기회는 전혀 없기 때문입니 다.이 세상에서 살아있을때 믿음의 결과에 따라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 증한바니(히브리서2장3절)" 구원을 등한히 하면 안됩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이란 ,보호,안전,보존이란 뜻으로 죄와 사망과 마귀와 세상과 지옥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출하여 아무런 위험이 없도록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적 사랑을 이름입니다. 곧 영적 사망에서 구출되고 이 세상의 악한 생활에서 구출되고 내세의 지옥과 마귀로부터 구출받아 부활 영생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일컬어 구원이라 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 중요한 것이 많습니다만, 그 중에서 건강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명예와 부귀, 지위, 모든 것이 다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구원입니다. 이땅에서 아무리 건강하고 부자로 잘살고 남부럽지 않는 생활을 한다고 하여도 구원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가장 불쌍한 인생이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등한히 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증세가 있게 되는데 구원을 등한이 하는 병도 증세가 있습니다. 먼저는 복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도덕과 철학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설교자가 설교를 할 때도 농담과 세상 상식을 이야기 하면 아주 좋아하다가, 십자가 이야기를 하면 표정이 달라집니다. '십자가 설교'하는 것을 불편해 하며, 복음 전하기를 싫어하는 증세가 있다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질병에 나도 모르게 걸린 겁니다. 
다음으로는 다른 사람의 영혼에 무관심합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던 절에 다니던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병에 걸리게 되면 사람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어집니다. 교회가 이렇게 되면 하나의 사회단체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다음으로 현실에 집착하게 됩니다 관심이 늘 땅의 것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할까 해서 모이면 생식에 관해, 물과 비타민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이런 이야기 해야 하는것이지만, 그것만 이야기 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감격을 나누고, 일주일 동안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승리하신 간증을 나누어야 하는데, 만나면 물질 이야기하고 관심이 늘 사업에 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승진할 것이며, 하나님 앞에 무엇을 드리면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갈 것인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렇게 관심이 땅에 있을 때, 이것은 내가 질병에 걸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기회가 마지막일수 있다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구원과 멸망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다는 말씀을 볼수 있습니다. 첫째 이 구렁은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즉 움직일수 없다는 것과 영원하다는 것입니다.아무도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갈수가 없다는 것입니다.구원받지 못한채 죽으면 영원히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남아있게 됩니다.사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에게 반딧불 같은 작은 희망이라도 주는 말씀을 찾을수 없습니다. 무덤 저편에는 결코 희망이란 없고 구원받을 두 번째 기회는 더더욱 없습니다.혹 이땅에서 살아있을 동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수차례 거절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고 재차재차 구원의 기회를 주실것입니다.

그러나 끋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이땅에서 죽는다면 다시는 그리스도를 믿을기회가 없고 구원받을 기회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라고 복음을 전하면 다음에 믿겠다고 미루곤 합니다. 그러나 잠언27장1절을 보면 “너는 내일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수 없음이니라”하였습니다.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구원의 문제는 내일이란 있을수 없습니다.그러므로 오늘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구원을 받으셔야 합니다. 언제 생명의 부르심을 받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언제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언제 구원의 문이 닫힐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교훈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심판의 기준은 이땅에서 사는동안 예수님을 믿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부자는 천국갈 기회가 많았습니다. 또 재물을 통해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할 여건도 있었습니다. 재물을 통해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많이 가지 것이 복이요 특권이기도 했지만 제대로 쓰지 못해서 부자된 것이 재앙이 되고 말았습니다.결국 지옥형별을 받아 그곳에서 후회함이 막심하였습니다.
그 고통의 내용을 보면 소원대로 되지 않는 고통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천국! 아브라함의 품을 보고도 갈 수 없는 고통입니다.(눅16:23), 불꽃 중에 타는 듯한 목마름의 고통입니다.(눅16:24-25),죽고 싶어도 죽을 권리가 박탈당한 곳입니다. 아무리 자기 집 대문 앞에서 자기가 던져 주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던 거지같은 사람이라도 결코 지옥 간 부자의 심부름꾼이 될 수 없었습니다.              
지옥은 하나님께 영원 전부터 불순종하고 거역하거나 믿지 아니하는 자를 가두시기 위해서 준비하신 처소를 말합니다. 더욱이 그곳! 지옥은 예수 믿지 못한 후회감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러운 곳입니다.(눅 16:27-30) 그리고 이러한 모든 고통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땅에 살아 있을 때에 예수 믿지 못한 자기 자신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습니다. 남들 그렇게 교회에 가고, 신앙 생활하고 예수 믿으라고 권함을 받았을 때에!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산으로 들로만 가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낙으로 알고 예수 믿지 못한 자신이 그렇게 원망스럽고 미울 수가 없습니다. 
그때 부자에게  뼈저리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자기 골육형제였습니다. 이것이 지옥 간 부자의 소원,, 간절한 소원, 큰 소원이라고 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구하오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 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16:27-28) 정말 기막힌 소원입니다. 지옥 간 부자의 애타는 소원입니다. 아니 절규의 소원입니다. 나는 이 지옥에 믿지 못하여 왔을지라도! 그래서 이제는 후회하여도 다른 방법이 없지만 저 세상에(금세) 있는 자기 형제 다섯만은 자기가 고통받고 있는 지옥에 오지 않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옥의 고통을 맛본 한 부자의 전도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을 마칠때 나는 어디로 갈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이에 대한 대답은 이땅에서 살아있을때 분명히 해야 하는 답입니다. 인간은 사후에도 영영히 그 존재가 존속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옷과 같은 것입니다. 여름 옷을 벗어버리고 가을 옷을 갈아 입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없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육신의 옷을 벗어버리고 가을 옷을 갈아 입었다고 해서 그 속사람이 사라진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확실한 사실 하나는 우리 모두 다 예외 없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일 살아 있을 것이라는 것도 하나의 가정일뿐, 사실은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 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확실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집,곧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의 기회는 없습니다.지금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을 소망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