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창조적 이어야만 하는 이유
선교현장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역들이 다 그렇겠지만 선교하는 일 만큼 창의력이 요구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타 문화권 선교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문화 형태로 포장된 복음을 또 다른 문화 속에 전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오늘의 선교적 상황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힘들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선교현장 상황이 바꿨다. 반 세기 전만해도 소위 말하는 대부분의 선교지인 2/3세계는 선교사 파송국인 1세계 국가들에 대해 종속관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역학관계는 최소한 외부적으론 일부 통제된 국가를 제외하고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발을 드려 놓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었다. 그러나 2000년 오늘의 선교지 상황은 더 이상 종속관계에 있지 않다. 몰론 정보화 등으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종속관계가 형성되고 있기는 하지만, 각 국가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더 이상 종속관계에 있지 않으므로 어디에서(from), 어디로(to), 혹은 보내는 자(senders)와 받는 자(receivers)로 구분되던 과거의 선교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세계는 한 쪽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쌍방이 동등하게 같은 위치에서 서로를 주고 받게 된 것이다. 따라서 과연 어떻게 복음을 아직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그들이 받는 자의 종속적 위치가 아니라 복음의 위대함을 주체자로서 경험하게 도울 수 있는가의 과제가 우리 앞에 있다. 이 과제를 위해 선교지를 향한 창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오늘날의 사회가 바꿨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의 이데올로기는 다원주의이다. 문화적으로 뿐만 아니라 종교적 다원주의를 인정해야만 하는 분위기이다. 이러한 다원주의적 사고는 1980년대 이후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무너진 다음 더 적극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더 이상 한 개 혹은 한 쌍의 대립되는 절대적인 가치나 이데올로기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문화적으로 절대적인 한 현상 만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결국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를 부인하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한가지 형태의 애정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남녀간의 애정관계라는 문화적 가치는, 남자와 남자 혹은 여자와 여자와의 애정관계도 인정해야 하는 다양한 가치 패러다임으로 바꿨다. 이제는 더 이상 "절대적"이란 말은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절대적 가치, 절대적 순결, 절대적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절대적 가치이며 모두가 절대적 종교 혹은 그 모든 것이 합하여 절대적 가치를 보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이다. 이런 다원주의 문화는 결국 종교적 다원주의를 진리로 인정하게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어 가고 있다. 여기서 선교라는 과제를 앞에 놓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난관에 봉착한다. 그리스도인 선교를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분명한 명제 때문이다. 그것은 "천하에 예수 외에는 구원 받은 자"가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의 구원하시는 복음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국가나 종족이 있다면 그들에게 가야 한다는 확신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과제는 다원주의 문화 안에서 복음의 유일성, 즉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 이심을 어떻게 선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다원주의 문화 안에서 유일성을 주장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최고의 창의력이 요구 된다.
삶을 드릴 때 가장 창조적일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창의력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의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셔서 인간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 올 것을 촉구하셨다. 그러나 인간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자신 스스로가 인간이 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법을 사용하셨다. 그리고 결국 인간을 구원하셨다. 창의력을 들어낸다는 것은 단지 신나고 머리 팽팽 돌아가는 일만은 아니다. 그것은 때로는 자기 자신 전체를 드리는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가장 어리석었을 것 같았던 하나님의 성육신 하심은 하나님의 가장 뛰어난 창의적 접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드리는 희생을 치르는 것으로 가능했다.
요즘 선교하겠다는 젊은이들에게 창의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아니 모든 선교하는 사람들이 창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창의적 접근, 창조적 전략, 창조적 선교훈련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그러나 때론 이것은 단순히 아이디어나 전략이 아닐 수 있다. 가장 창조적인 것은, 삶을 부대끼고,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릴 때 가장 잘 들어 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
'†선교후원 사역† > 선교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인 0.03%가 선교사로 활동 (0) | 2017.08.15 |
---|---|
마르쿠스와 나르시사 휫트만 부부(Marcus and Narcissa Whitman) (0) | 2017.08.13 |
로잔운동 등을 중심으로 한 최근 세계선교운동의 방향 (0) | 2017.08.06 |
지상 명령 성취를 위한 교회의 동참 (0) | 2017.08.05 |
미국 최초의 선교사 -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 (0) | 2017.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