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교회 사역...♡з/교회학교 멘토링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중요성

예림의집 2016. 11. 19. 12:47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중요성  


종교개혁 때부터 개신교회는 교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똑 같은 성경을 가지고도 다른 내용을 믿는 가톨릭 때문이었다. 그들은 중세 천년 동안 점점 성경의 진리에서 멀어졌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개혁가들을 보내셔서 교회 개혁을 이루셨다. 사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종교개혁’이라는 말보다는 ‘교회개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 교회개혁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교회가 초대교회 이후 잘못 걸어간 길에서 다시 돌이켜 회개하고 본래 모습을 회복하려 한 것이었다. 
    

개혁가들은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했다. 당시 보통 성도는 성경을 모국어로 읽을 수 없었다. 성경은 라틴어로 쓰인 것 밖에 없었기에 성직자들만 읽을 수 있었다. 성도는 성경을 읽지 못하니 성상이나 상징을 통해 신앙을 유지했는데 이로 인해 잘못된 미신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개혁가들은 로마교회의 어긋나고 잘못된 교리를 바로 잡는 일을 했다.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바르게 정리해 성도에게 가르쳤다. 성경을 요약해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성경에 대해 잘 알아야 했다. 또한 초대교회 영적 지도자들이 성경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공부했다. 본래 성경이 쓰여 졌던 구약 히브리어 성경과 신약 헬라어 성경을 직접 읽으며 기도하며 연구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 진 것이 개신교회의 ‘교리’이다. 이 교리는 신앙고백 혹은 요리문답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중세 천년 동안 암흑 속에 살던 성도는 성경의 복음을 요약해 설명해 주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진리를 듣고 깨달아 믿음으로 구원을 확신하고 기뻐했다. 국가 권력을 등에 업은 로마교회는 개신교회를 핍박했다. 고문과 투옥과 화형의 위협에도 진리의 말씀으로 자유를 누린 성도는 담대히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수많은 성도가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순교했다. 이 시대에 성경과 교리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요 은혜였다. 개혁가들은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서를 많이 만들었다. 루터는 어린이를 위한 소요리문답서를 만들었다. 칼뱅도 요리문답서를 만들었으며, 『기독교강요』라는 훌륭한 책을 썼다. 츠빙글리도 신앙고백서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개신교회가 만든 신앙고백이나 교리서는 64개 정도 된다고 한다. 
    

요즈음은 안타깝게도 이렇게 좋은 신앙고백서나 교리서들이 잘 나오지 않는다. 옛날보다 바쁘기 때문일까? 사실 이미 좋은 신앙고백서나 교리들이 많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삼스럽게 또 다른 것을 만들 필요가 없기도 하다. 그러나 처음 교리를 만들었을 때와 지금 우리 사이에는 시간적, 문화적, 정서적 차이가 있다. 이 간극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현대 신학자들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요즘 교회는 교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나 또한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교리라고 배운 것은 소요리문답 제 1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ε♡з교회 사역...♡з > 교회학교 멘토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직 성경   (0) 2016.11.24
복음주의와 교리교육   (0) 2016.11.22
교리교육의 방향 제시  (0) 2016.11.14
교리교육의 실제적인 유익   (0) 2016.11.08
교리교육의 현주소  (0) 2016.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