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선교신학

선교 학자들의 선교의 개념:

예림의집 2014. 9. 20. 16:23

 

선교 학자들의 선교의 개념:

 

1. Peter Beyerhaus:

"선교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하면,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사복음서의 마지막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참조 마 28:18-20, 막 16:15, 눅 24:46-49, 요 20:21, 행 1:8)들을 단순하게 이해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입장에서는 선교를 이해할 때 사회적 구원에 역점을 둔다. 즉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운동과 고통으로부터 사회를 구원하는 활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중요한 세 가지 요소들, 즉 1) 현 상황에 대한 사회 정치적인 분석 (a socio-political analysis of the present situation), 2) 가능한 한 참여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 (a good intention to get as involved as possible), 3) 기술적인 노하우 (technical know-how)가 절실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이 세상이 그 자체의 깊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삶과 사역에서 선교의 방향을 찾을 수 있고,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마태복음 9장과 10장을 보면,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예수의 해답에 대해 네 가지의 특징들을 볼 수 있다.

첫째로, 예수는 온 성과 촌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치유사역을 하였다(마 9:35). 그것은 그의 사명과 사랑, 무엇보다도 승리하는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고통하는 세상에 임하게 하는 것이었다.

둘째로, 우리는 최초로 세상의 진정한 필요인 예수님의 긍휼을 본다(마 9:36). 그의 긍휼은 목자없이 유리하고 방황하는 양무리 들의 절망적인 모습을 추수할 많은 곡식으로 덮혀 있는 소망의 들판의 비젼으로 변화시킨다. 이 세상의 이러한 필요들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승리를 얻기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 고통 받는 세상은 예수님의 역동적인 구원의 능력 앞에 항상 열려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선교사역을 위해 자원 할 것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군을 보내어 주시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마 9:38).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의 계획을 위해서 스스로 선택한 종들을 불러 세우고 계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넷째로, 예수님은 그의 사역을 위해서 그의 제자들 가운데서 열두 제자를 선택하여 사도로 세우시고, 그가 행하셨던 동일한 사역을 수행하도록 파송하셨다(마 10:1-5).

Peter Beyerhaus는 다음과 같이 선교의 개념을 말하고 있다.

첫째, 선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A Mission which Glorifies God).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의 구원의 역사를 온 세상에 증거 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았다. 선교의 우선적인 관심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 자신인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사실이 종종 간과되고 있고, 때때로 부정까지도 되고 있다. 선교는 세상의 대변인이 되는 것이 아니요,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구약성경에서 우주 종말적인 비젼의 극치는 모든 열방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그의 사역을 요약하여, “내가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다”(요 17:4)고 말씀하셨고, 그는 임박한 죽음과 부활을 앞두고,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라고 기도하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의 사명대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고, 이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며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8-11)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통치는 모든 원수들이 다 예수님께 복종한 후에 라야 온전히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선교의 전체 역사는 시편 110:1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의 말씀의 점진적인 성취라고 요약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선교는 영원한 구속을 주는 것이다 (A Mission which Brings Eternal Redemption).

Thesis 2: We are called and sent to save all men from the eternal and temporal consequences of their apotasy from God. 이 명제는 선교신학 형성에 있어서 비 인간화의 경향에 대해서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예수님의 존엄한 명칭가운데 하나가 구세주(Soter; Savior)이다. 그의 사역의 목표는 구원한다는 동사나 구원이라는 명사로 더 자주 묘사되고 있다. 에큐메니칼 선교학자들은 “오늘의 선교(Salvation Today)"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은 때때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샬롬(Shalom)이란 말을 지금 현세에서의 평화, 조화, 번영의 실현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사람들이 간절히 소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소망의 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도록 허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인식하면서, 신약성경에 더 중요한 다른 차원에서 구원의 개념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두 단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 첫 번째 단어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의 구원과 관계된 Soteria 이다. 다른 단어는 하나님의 진노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eirene (peace) 인데,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으심만이 죄인들로 하여금 이 진노를 피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선교는 악한 마귀를 내쫒는 것이다 (A Mission which Exorcizes Demons).

Thesis 3: We are called and sent in the power of Christ's victory to disarm the evil one.

예수그리스도의 지상최대의 명령의 또 다른 면은 사람의 영적, 사회적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쫒는 권능을 주셨다. 사복음서에서도 상당부분 귀신을 쫒는 예수님의 사역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예수님의 사역에 임한 것을 볼 수 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교는 마귀를 그 권좌에서 축출하는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도 강신술(Occultism)과 교령술(Spiritualism)이 성행한다. 이방인을 회개시킨다는 것은 많은 경우귀신을 내어 쫓음으로 된다. 요한은 마귀를 세상의 권세 잡은자(the prince of this world)로 불렀다. 인간 사회구조가 귀신화(demonized)되는 경우에는 사회, 경제의 구조적인 개혁만으로는 변화와 개혁이 가능하지 않다. 거기에는 제식(制式)과 율례와 타부(taboo)가 존재하고 조상신으로 우글거린다. 그래서 비귀신화(dedemonization)가 요구된다 (고후 10:3-5).

넷째, 선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다 (A Mission which Prepares Christ's Return). Thesis 4: The Church of Christ as the bridgehead of His universal reign is called and sent to witness to the Gospel before all mankind in preparation for the return of our Lord..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라고 하셨다.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세계복음화가 다 이루어지면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는 의미이다. 예수께서 마지막 유언처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마 28:19)라는 지상 최대의 위임명령을 교회에 주셨다. 이 지상 최대의 위임명령의 성취를 위하여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와 선교의 교두보인 교회가 부르심을 받았고 보내어 졌다, Raymond Lull, Francis Xavier, Ludwig Nomminsen, Hudson Taylor, C. T. Studd 같은 선교의 선구자들은 이 예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그들이 성취해 놓은 일에 대해 결코 만족하지 않고, 거룩한 성급함(Holy Impatience)을 가지고 아직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미전도 지역을 향하여 박차를 가하며 나아 갔다.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는 총력을 집중하여 세계복음화에 힘써야 할 것이다. 아멘!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계 22:20).

-지상명령(복음 전해서 영혼 구원), 교회 개척이 우선순위이지만

-사회봉사(사회 기여), 고아원, 병원, 호스피스 봉사 등에 참여에 요청을 받는다.

-다양한 사람들의 계층에 다양한 선교를 하는 다양한 선교체가 필요하다.

-전략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좋은 전도자, 좋은 목회자

 

2. Orlando E. Costas:

올란도 코스타스는 그의 저서 “The Integrity of Mission"에서 선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선포(proclamation)로서의 선교:

교회의 중요한 사명 중에 하나가 복음선포이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케리그마)을 성실히 모든 사람에게 전하여 주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막 16:15, 눅15장 참조). 바울에 의하면 신자의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 지는 데, 성경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는다고 말했다(딤후 3:15). 또한 그는 믿음이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의 선포로 말미암는다고 하였다(롬 10:17). 그러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함.

2)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함.

3) 하나님의 은혜의 때를 선포함.

 

2. 제자 양성으로서의 선교:

크리스천 사역의 중심적 추진력으로서 제자 양성의 개념의 재출현은 신약성서의 기본 관심의 재발견이다. 복음에 대한 가장 간결하고 강력한 선포의 언급이 있는 곳에 또한 가르침의 사역에 대한 즉각적인 언급이 있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못된다. 만약 복음을 선포하기만 하고 그것을 제자 삼는 일에 연결시키지 않는 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1) 사람들을 예수를 따르도록 인도한다는 것을 의미 함.

2) 예수의 선교에 참여 하게 함.

3) 모든 것에 있어서 예수께 복종하게 함.

 

3. 활성화로서의 선교:

목회적 사역에 속한 모든 임무들 가운데서 성도들을 전도하도록 활성화시키는 것보다 더 포괄적이고 중요한 것이 없다. 그들을 전도하도록 활성화 시키는 것은 신학적으로 필연적인 것이다. Kenneth Strachan은 “어떤 운동의 확장은 그 전체 회원들로 하여금 그 신앙을 계속적으로 전파하도록 활성화 하는데 성공하는 곳과 정비례 한다”고 말했다. 성령을 따라 하는 이 노력의 성패의 열쇠는 목회적 리더십이다.

 

가. 활성화의 정의:

첫째로, 활성화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극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활성화 한다는 것은 모집하는 것이다.

셋째로, 전도의 활성화는 조직화를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활성화 한다는 것은 관리한다는 것이다.

 

나. 활성화의 과정에 대한 이해:

1) 의식화 (Conscientization): 활성화의 과정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전도자적 양심을 깨우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활성화 되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그들의 선교적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2) 분석 (Analysis): 활성화의 둘째 단계는 신도들이 그 속에서 그들 자신들을 발견하는 구체적 현실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회중과 회중이 속한 사회에 대한 분석을 포함하고 있다.

3) 계획 (Planning): 효과적인 활성화는 관찰하고 분석한 것을 토대로 하여 계획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전도의 활성화에 있어서는 분석을 통해 견고하고 대담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면 그것은 쓸모없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4) 조정 (Coordination): 효과적인 활성화는 또한 통합적 노력 하에서 계획된 것을 행동에 옮겨 놓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기능적이고 융통성 있고 변경 가능한 프로그램을 요구한다.

5) 평가 (Evaluation): 적절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평가가 요청된다. 만약 평가의 구조 장치가 처음부터 도입되지 않으면, 활성화의 과정은 실패와 무효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관리, 목표점검, 계속적인 양육의 불충분함 때문에 해를 입을 것이며, 복음의 진척에 있어서 좌절과 퇴보를 초래할 것이다.

 

다. 효과적인 활성화를 위한 조건에 주의를 기울임:

효과적인 활성화의 과정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본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1) 정신적 변화 (Mental Transformation): 첫째로 마음의 변화를 체험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활성화는 여러 가지 전통적인 생각들을 깨뜨리는 데 달려 있다. 성직자 위주의 교회 개념은 평신도 위주의 활성화의 본성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된다.

2) 희생적 행동 (Sacrificial Action): 교회의 활성화를 위한 두 번째 조건은 기꺼이 희생하는 존재-- 준비와, 사역과, 평가에 바치는-- 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교회의 통합적 성장을 위해 봉사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자원과 다른 자원들을 기꺼이 바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3) 포괄적 신앙 (Comprehensive Faith): 포괄적 신앙이 없이는 어떠한 활성화도 불가능하다. 그런 신앙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서 그를 만물의 주로 삼은 하나님을 믿는 입장이다. 그 하나님은 “예로부터 인간에 구원을 베푸시고 계시다”(시 74:12). 그 하나님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교회를 불렀다. 그 하나님은 세상 끝 날까지 교회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다(마 28:19-20).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는가?

 

라. 활성화에 있어서 설교와 가르침의 역할을 강조함:

우리는 우리의 의무의 핵심 부분에 와 있다. 활성화의 과정에 있어서 무엇이 “말씀의 사역”의 역할인가? 혹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성직자의 설교와 가르침의 사역이 교회의 활성화를 자극하고, 권장하고, 강화시킬 수 있을까?

1) 동기부여의 힘으로서의 말씀: 우리는 실제적 말씀의 사역에 관해, 무엇보다도 활성화의 과정에 있어서 동기부여의 힘으로서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설교의 선포와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여자들과 남자들, 젊은이들, 심지어 어린이들까지도 봉사하도록 불을 붙일 수 있다.

2) 보충의 자원으로서의 말씀: 말씀의 사역은 활성화 과정에 있어서 단지 자극을 주는 힘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유력한 보충자원이다. 말씀의 사역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받은 도전에 대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3) 현실의 해석으로서의 말씀: 말씀의 사역은 현실을 해석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교회의 활성화는 신앙 공동체의 내적 상황과 전도가 일어나는 사회 역사적인 배경 모두를 이해 할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 이해가 교회의 전도 노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라면, 그 분석의 결과를 회중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4) 프로그램 촉진제로서의 말씀: 말씀의 사역은 효과적인 활성화 프로그램의 촉진제가 될 수 있다. 말씀의 사역은 그것의 다양한 국면들을 성서적이고 신학적인 요소로 단단하게 묶을 수 있다. 그것은 교인들로 하여금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그것을 후원하도록 설득하고 격려할 수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열정의 분위기와 기대하는 소망의 분위기를 창조 할 수 있다.

 

4. 통합적 성장으로서의 선교:

Emil Brunner는 “불은 탐으로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에 의해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성서에서 불의 이미지는 성령의 역동적인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 성령의 활동은 항상 교회의 성장을 위한 활동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가 자라기를 원하시고 또한 기대하신다. 이 장에서는 교회 성장의 이러한 세 가지 측면들을 다루고자 한다.

1) 넓이의 성장: 교회의 숫자적 성장을 의미하며, 이것은 특히 교회의 사도적 성격과 관계가 있다. 사도(Apostle)란 말은 선교적 기동성 및 확장의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교회는 복음의 씨앗을 세계의 정원 속에 뿌려야 하며, 파종, 경작, 전지, 추수의 과정을 거치면서 넓이의 성장을 한다.

2) 깊이에 있어서의 성장: 교회는 내적으로 자라야 할 필요가 있는 기관이다.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고 사람들을 회개로 부르는 전도적 확장에 있어서 성장해야 할 뿐 아니라 응답하는 자들을 통합하고 그들을 신앙 안에서 성숙하게 해 줌으로써, 깊이에 있어서도 성장해야 한다.

3) 높이에 있어서의 성장: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계속 성장하는 삶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생활 양식에 있어서 계속적인 성장을 경험해야 한다.

 

5. 해방으로서의 선교:

누가는 예수께서 자라시던 나사렛 마을의 회당을 택하여 선교의 본질적 개요(outline)를 다음과 같이 나타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16-21).